젖은 것도 아니고 과격하지도 않은 애매모호한 차창에서 처음으로 타인을 찍고 있었다. 애매모호한 색감에 애매모호한 포즈로 그는 내 앞으로 왔고 애매모호한 온도에 들끓고 싶다는 욕망이 일렁였다. 차라리 어떠한 과격한 욕망으로 그를 힘겨워했을 때가 더욱 격렬하게 살아있었던 나날이었다. 우리는 죽었지만 진정으로 죽지 못하고 진공 포장되어 있는 상태였다. 죽었지만 썩지는 못하는 그런 상태 말이다.
나는 저 하늘과 가깝게 맞닿아 있는 그를 바라보았고 언젠간 그와 함께 저 높은 곳에 도달해야지. 도달해야지. 희망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거꾸로 뒤집혀 함께 누워있는 우리를 상상하곤 했다. 야릇하면서 행복한 이상이었다.
언젠간 내가 높은 곳으로 향하는 그를 뒤따라갔을 때 또 다시 애매한 온도의 색감이 우리를 뒤덮었고 나는 또 다시 들끓기를 희망하였다. 그리고 차츰 멀어지는 타인을 바라보며 기억을 뒤집고 탈탈 털어버렸다. 내가 놓치기 싫어했던 그 순간들 말이다.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뒤덮었다.
하지만 아직도 나의 감정은 애매한 회색인 상태이다. 너무 차분하여 들끓고 싶다는 욕망이 다시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