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
글 - 박하리
세상은 동그랗다. 길은 이어져 있고, 세상에 있는 대다수의 것들은 돌고 돈다. 완벽한 성공도, 완벽한 실패도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무엇을 이루기 위하여 사는 것이 목적일 수도, 성공을 하는 것이 목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그리고 더 넓게 나아가 생명으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영화는 실패와 성공, 그리고 삶과 사랑에 대한 영화이다. 올리브의 가족은 서로가 뭉쳐지지 않는, 아주 개성이 뚜렷한 콩가루 집안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들 집안의 막내인 올리브는 미인 대회인 ‘미스 리틀 선샤인’에 나가게 된다. 영화는 이 대회에 출전하기 위하여 겪은 과정들에 대한 내용이다.
리차드는 성공에 대한 책을 팔려고 하지만 실패하게 되고, 쉐릴은 이러한 남편과 잦은 싸움을 벌인다. 할아버지는 헤로인 복용으로 인하여 대회장에 가는 길에 사망하게 된다. 15살의 드웨인은 모든 사람들을 증오하여 9개월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외삼촌 프랭크는 게이에게 차여 자살시도를 한다. 올리브는 조금은 통통한 몸매에도 불구하고 미인대회에 나가기를 원한다.
어찌 보면 완벽하진 않지만 사랑스러운 이 가족들은, 올리브를 위하여 서로 뭉쳐, 노란색 폭스바겐 차에 탄다. 그들이 대회장에 가는 여정은 마치 실패와 고난의 여정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호텔에서 그는 질까봐 두려워하는 손녀에게 말한다.
“진짜 패배자는 질까봐 시도도 하지 않는 사람이란다. 그럼 너는 패배자가 아니야. 신날거야. 알겠지?”
이 대목에서 우리는, 우리가 성공을 하는 것 자체가 목표가 아닌, 성공이든 실패이든, 그 여정 속에서 길을 걷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성공과 실패를 다 겪는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여정에 있다. 그 여정이 얼마나 즐거웠는가, 그 여정의 순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느꼈는가,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다. 우리가 죽으면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돈? 명예? 가족? 하물며 우리가 죽어서 우리 자신의 몸도 가져갈 수 없는데, 무엇을 소유한다는 것, 무엇을 성취한다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
지구는 둥글다. 둥근 지구 안에서 불완전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생명들이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이다. 우리는 누구와 비교할 필요 없이 존재 자체로 독창적이고 존재 자체로 소중하며, 존재 자체로 절대적이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개성이다. 우리는 누구와 경쟁을 하도록 태어난 존재가 아닌, 생을 기쁘고, 때로는 고독하고 힘들며, 그것을 느끼며 또 다시 일어서는 존재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생 자체를 사랑하며 느끼는 것이고, 서로에게 다가가 서로의 존재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태어나서 살아가는 목적이다.
이 영화에서는 미인 대회의 역설을 보여준다. 누가 더 아름다워서 1등을 하느냐, 그것이 우리가 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일까? 세상에 절대적으로 누구에게나 진리로 여겨지는 ‘이것이 옳고, 이것이 그르다.’라는 법칙과 규칙, 원리 원칙이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누군가를 밟고 일등을 하고, 승자와 패자로 나누고, 그것 자체가 우리가 가진 개성을 무시하는 행위가 아닐까?
이 영화는 우리의 본연의 모습에 대하여 제시하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선택은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깨닫는 것이고, 자기 자신에게 옳은 길이 남에게 옳은 길이 아닐 수 있다. 그것 자체가 ‘다름’이라는 것이다. 지구는 둥글고, 길이 멀고 험하든, 혹은 매끄럽고 아름답건, 길은 이어져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길을 가든, 자기 자신이 선택한, 본인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 또한 남의 길을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지혜이며 동시에 남을 존중하는 사랑의 방식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삼촌은 드웨인에게 프루스트에 대하여 말한다.
“프루스트는 말년의 삶을 돌아보며
힘들었던 시기들이 삶에서 가장 좋은 시기라고 했다.
그게 자신을 만들었으니까.“
삶이란, 이런 고난 자체도 우리의 전체 속 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며, 고난조차 사랑하는 것, 그것이 ‘삶 자체’ 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