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우리로 스며든다면]
"의식을 버리고 그리려 생각한다. 작업을 할 때 그 전에는 남에게 그림이 보여지는 것에 대한 생각과 나 자신의 강박에 갇혀 있었는데 거기에서 벗어나 내 스스로 가둔 틀을 깨버리고 싶었다. 무의식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도구로 사용하여 여과되고 정제되지않은 솔직한 모습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물론 온전히 벗어나는 것은 힘들겠지만 할 수있는 최대한 그렇게 하고싶었다." - 작가 인터뷰 내용 中
어떠한 것에 대한 집착은 강박이 되고 그것은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게 될 수 있다. 강경석 작가는 작품을 통하여 습관화 된 자신의 일상 속 틀을 깨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커다란 캔버스 앞에서 무엇을 그릴지 막막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작품을 구상하는 단계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여 그리면 너무 조잡한 작품이 나올 것이라는 걱정과 완성된 작품까지 잘 해야겠다는 강박이 떠오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작품을 누구에게 부끄럽지 않게 보여주고 싶기에 다른 사람을 완연히 배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강경석 작가도 이러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그의 그림을 보면 과감한 색감과 필선, 고통스러운 감정이 떠오른다. 누군가를 의식하지도, 잘 그리려 하지도 않은 작품이라는 그의 생각이 전달되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이렇게 과감한 작업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원래 디자인 전공이었던 그는 강박처럼 선이 삐져나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였고 주로 섬세한 작업을 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작품 속에 어떠한 내용을 넣을지에 대한 고민과 남들의 시선을 배제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번 작품을 하기 전 그는 자신의 이러한 틀을 깨뜨리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작업방식이 향후에도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현재의 작업들을 통하여 자신의 습관적인 틀을 ‘깨뜨려 버리고 싶다.’고 그는 말하였다.
자신의 습관적인 틀을 깨뜨리기 위하여 그는 한 가지의 완연한 작품을 그리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작은 드로잉부터 시작하였다. 드로잉이라는 것은 부담감 없이 작업을 과감히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살짝 단단하고 매끄러운 종이 위에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는 처음에 작은 종이에 인물부터 그리기 시작하였는데, 처음 인물을 표현할 때 어떠한 이미지를 보고 그리지 않고 일그러진 형태로 그렸다고 한다. 그 일그러진 형태의 인물은 위에서 아래로 하강하는, 혹은 아래에서 위로 상승하는 수직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마치 프랜시스 베이컨의 <교황 이노켄티우스 10세 초상 연작>이라는 작품이 연상 된다. 이 뿐만 아니라 강경석 작가의 작품 중 어느 것은 고흐의 <붓꽃>이라는 작품 또한 연상 된다. 그는 여러 작가의 작품을 참고하였고 그러기에 자연스레 자신의 작품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였다.
하지만 작가가 어느 순간 자신의 작품이 다른 작가의 작품에 동화가 된 모습을 발견한다면 어떠할까? 그는 이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을 내놓았다.
예를 들어 어떤 미술가가 ‘감정’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작품에 임하였다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자신과 비슷한 작품을 만드는 작가는 어디에든 있을 것이다. 또한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더라도 자기 자신의 독창적이고 차별성 있는 기법이나 표현방식이 있을 거라고 그는 말하였다. 추가적으로 만약 강경석 작가가 다른 작가에게 영향을 받는다 하더라도 다른 작가의 본질적인 생각 자체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닌, 강경석 작가가 영향 받을 것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화될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 즉 영향을 받는 사람의 신념 문제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특정 작가에게 동화될 위험조차 생각하지 않는 무의식에 도달하고 싶다고 하였다.
이처럼 그의 전체 작품의 방식은 ‘무의식’을 기반으로 임하고 있다. 하지만 이전의 ‘대상’자체를 없앤 채 무의식으로 작품을 해왔던 제 2차 세계대전 시대의 미국 중심 미술과는 다르게 강경석 작가의 작품에는 ‘대상’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어떠한 이미지조차 보고 그리지 않았던 미국 중심의 미술가들과는 다르게 그는 자신의 경험과 관련된 이미지를 통하여 자신의 감정을 분출한다. 그러한 감정은 그 이미지를 보고 바로 느껴지는 감정이나 혹은 음악을 들으며 느껴지는 감정, 혹은 포괄적이고 본질적인 감정상태일 수도 있겠다.
이처럼 뚜렷하고 완연한 목표 없이 과정과 무의식을 중시하는 그의 작업은 이전 작업과 비교해 보았을 때 과도기적인 특징을 지닌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하여 그는 오랫동안 한 상태에서 정제되어 있다가 그 정제된 것이 자기 자신을 억압하는 것임을 깨닫고 자기 자신의 울타리를 깨부수고자 하는 불안정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과도기적인 특징을 지녔다 하더라도 이러한 노력 자체가 그에게 의미 있지 않을까? 즉 이러한 그의 작업 방식은 불안한 방식으로 얽히고설켜 미래의 작업을 지지해 줄 단단한 받침대가 될 것이라는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 글 - 박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