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답답해서 컴퓨터를 켰다. 이 글은 오롯이 나 스스로의 진심에서 나온 글이기를 바란다.
분출되지 않은 무엇인가가 위 언저리에 자리잡혀 있다. 파란색 불빛이 빠져나오지 않는 그런 것. 이것은 내가 어떠한 행위로 풀어주어야 하는 답답함이다.
왜 일까, 라는 질문보다는 지금 내 상황을 더욱 주목하고 싶다. 지금은 밀폐된 공간에 있다. 건물이라는 곳은 창문이 꼭 커야하고 시원한 바람들이 솔솔 들어와야 한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는 너무나도 민감한 감각을 지니고 있고, 나 스스로가 자연이라는 사실을 직시하므로, 서로 무엇인가와 온전하게 교감을 하지 않게 되면 나는 스스로의 구덩이에 빠져버리기 마련이다.
그래도 지금은 구덩이에 빠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것이 '구덩이'라는 것을 알고, 슬픔의 습관, 혹은 우울과 불안의 습관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정신' 그 자체이다.
답답한 이유는, 오늘 갤러리에 다녀와서 이다.
나는 그것을 그저 그대로 직시하고자 글을 쓰는 것이지, 이 답답함과 슬픔에 빠져들고자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림을 그린다. 진심의 정도가 있지만 다 내 안에서 나온 것들이다. 나는 대상을 본다. 현상을 느낀다. 삶의 신비를 느낀다. 삶에서 당연하다고 여기면 신비로움은 사라지고, 무거운 현실이 남는다. 현실은 본래 무거운 것이 아닌, 스스로가 무겁다고 느끼기 때문에 무거워지는 것이다. 어떠한 상황이더라도 중요한 것은, 내 상황을 바꿀 수는 있어도, 누구라도 내 정신 자체를 통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롯이 나 자체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노력해야 한다. 정신은 계속하여 흘러야 한다.
나는 그림을 그린다. 사람들은 내가 그리는 행위를 보지 못한다. 정신의 언저리만 바라볼 뿐, 사실 그것이 답답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정도 인정심리가 있기에 그런 것일수도 있다. 칭찬을 받으면 기쁜 것이 당연하므로.
하지만 그 칭찬에 매료되게 되면 자기 자신이 흔들리기 쉽다. 그래서 '나 스스로를 위한'그림을 그려야 한다. 정말로 순수한 열정으로, 나 스스로를 느끼며, 내 세계와 혹은 이 세계 자체를 느끼며 그려야 한다.
하지만 오늘 답답한 것은, '예쁘다.'라는 그 말 한 마디일 수도 있다.
뭐랄까, 그 말이 자꾸 머릿속에 맴도는 것 같다.
나는 예쁘려고 그린 것이 아니라 그리다 보니 누군가가 보면 예쁘게 보이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의도를 많이 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아름답게 그리고 싶었다.
예쁘다는 말 보다는 조금 더 본질적인 이미지를 그리고자 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느끼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말이 조금은 아팠나보다. 어쩔 수 없다. 누군가의 느낌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고 굳이 거기에 동조할 필요도 없고 거부할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그저 나다우면 된다.
조금 더 본질적인 것, 그리고 더욱 진심의 강도를 높여, 나 스스로 혹은 세계에 대한 진정성을 느끼고, 그 실재에 다가선 그림을 그리고 싶다.
사실 성공에는 의미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나에게 있어서 어떠한 것을 성취할 때의 기쁨은 너무나 넘치지만, 그 과정 속에 있는 행복감이 더욱 크다.
살아가면서 돈은 쌓을 수 있지만 죽을 때 가져갈 순 없다. 대신 나의 마지막 순간, 나 스스로는 자문할 것이다.
"많이 느꼈는가."
"얼마나 많이 느꼈는가."
어쩔 수 없다. 세상은 참 신비하고 신기하기에 어쩌면 조금은 아프면서도 아름다운 것 같다. 나는 앞으로도 나 스스로의 존재를 느끼고, 타인을 바라보며, 최대한 세계를 포용하며,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그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