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우리로 스며든다면
“어떠한 명확한 주제를 가지고 붓을 드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행위들의 단서들을 이어간다. 그러다보면 무엇이 중요한지를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특정한 사건이나 풍경, 색상 등이 작업 행위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되면 그 속에서 나의 관심취향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항상 무엇을 그릴지, 어떤 의미를 표현할지 고민하였지만 그것보다도 ‘어떻게’가 중요하다. 일단 캔버스를 마주하고 선을 그어본다. 선을 긋다보면 조형적인 단서들을 마주하는데 그 단서를 따라가다 보면 그 자체가 주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 김문근 작가 작업노트 中
한 개의 화병이 있다. 그것의 형태를 시각적으로 보았을 때는 명확하다. 하지만 그것을 주관적으로 표현하면 어떠할까? 예를 들어 한 화병의 형태가 매끄러운 유리병 모양일지라도 예술가는 작품을 통하여 그것을 울퉁불퉁한 표면으로 표현할 수 있고 정사각형의 모양으로 표현할 수 있으며 혹은 아예 찌그러진, 분간할 수 없는 형태로 표현할 수 있다. 김문근 작가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선 표현을 추구하고 있는 과정에 임하고 있다.
그의 작품 중 찌그러진 형태의 얼굴이 있다. 그것은 뭉개지고 짓이겨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있는 형태이다. 그의 그림을 보면 여러 물음이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단순한 외형의 재현으로 얼굴을 그리면 어떨까?’, ‘뒤엉킨 얼굴 속 물감표현은 불안한 감정을 표현하는 듯 보이지만 왜 배경색을 밝고 경쾌하게 사용하였을까?’ 라는 식으로 말이다. 다시 말하여 김문근 작가의 작품은 여러 물음을 유추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김문근 작가는 직접적인 표현 대신 은유적으로 자신의 작업에 임한다. 그는 사실적인 재현의 방식을 탈피한 뒤 인체 혹은 어떠한 사물, 나아가 현상에 대한 주관적인 표현방식을 작품에 담는다. 하지만 그가 원래부터 이러한 방식으로 작품을 그렸던 것은 아니다.
이전 그의 작품을 보면 ‘자신’에 대한 그림이 대부분이었다. 즉 그는 자신에 대한 사실적인 외형 묘사의 방식으로 작업을 하곤 하였다. 그의 과거 작품은 ‘자신’속에서 줄곧 머물곤 하였으며 표현 방식 또한 확장성이 부족하였다. 차별성 없는, 보이는 대로 그리는 재현이라는 표현방식은 예술가라면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소양이며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 등을 그림 속으로 투영하기에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는 이러한 한계를 깨닫고 자신만의 길을 나아갔다. 그는 작품의 조형성에 집중하였다.
흩뿌려진 물감들은 우연성을 통하여 저마다 다른 작용으로 여러 색감을 지니고 서로 어우러지며 한 개의 추상작업이라는 결과물이 탄생되었다. 그는 완성, 미완성이라는 이분법적인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러한 추상표현작업을 진행하다가 어느 순간 그는 자신이라는 개인을 뛰어넘은 조금 더 확장된 세계로 나아갔다. 그것은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운동성이었다.
김문근 작가에게는 어떠한 힘이 내제되어 있다. 그것은 그의 육신 본연의 힘일 수도, 혹은 자신의 정신에 내제되어 있는 불빛일 수도 있겠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 힘을 밖에서 찾았다. 자신과 비슷한 역동적인 운동성을 찾았던 것이다. 그는 풀이라는 소재에 자신의 힘과 운동성을 불어넣은 뒤 어디로 나아갈지 모르는 우연성을 빌려 풀의 운동성을 그려내었다. 이러한 그의 과정은 초반에는 경직되어 있다가 어느 순간 긴장이 풀린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화병에 담긴 꽃이다.
이전 그의 작품을 보면 ‘의도성’이 보인다. 역동적인 풀의 형태는 ‘구상’이라는 것에서 완연히 자유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조금은 경직돼 보이고 자유를 갈망하는 어떠한 움직임의 형태를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그가 작업을 진행할수록 이러한 의도성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전 작품을 보면 한 배경 안에 차례대로 물감이 레이어 처럼 쌓이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배경과 소재가 약간의 괴리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화병 안에 담긴 꽃들은 마치 동양화 중 채색화의 기법을 보는 듯 배경 속에 스며든다. 스며든 배경 속에서 그는 물감의 ‘결’을 찾고 그 결에 따라서 표현을 해 나간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떠한 결과를 향하여 나아가는 지 명확한 지표 대신 그는 우연성에 집중하였다. 하지만 우연성 안에 있는 ‘결’이라는 것은 그의 작업에서 방향을 이끌어 주었다.
그는 캔버스 앞에서 어떠한 ‘명확한’ 주제나 내용에 대한 의미부여를 생략한다. 그 이유는 작업을 하며 나아가는 방향 속 자연스레 설정될 수 있는 것이라는 그의 신념 때문이다. 즉 너무 많거나 명확한 작품의 설명은 관람객의 해석을 방해할 수 있고 편협한 해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어떠한 현상, 혹은 사물에 대한 의미부여 대신 작품의 조형성에 집중하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과거 자신에게 집중했던 것에서 조금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갔고 또한 조금은 경직되었던 형태에서 해방되어 자연스럽게 결에 따라 물감을 흩뿌리고 있다. 그의 작업 단계는 자기 자신과 주변의 세계를 보완하며 나아가고 있고 그는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 붓는 과정속의 작가이다.
사진, 글 - 박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