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 그, 라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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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i

그는 딱딱하고 폐쇄적인 동시에 부드럽고 유쾌하다.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하며 항상 자신감을 지니지만 교만하지 않다. 자신의 꿈을 좇는 모습이 매력적이며 주변을 깔끔하고 말끔하게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자기 자신은 정돈하지 않는다. 더럽다는 소리가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놓아준다는 의미이다. 나는 그의 자연스러움이 좋고 그의 꿈꾸는 모습이 좋다. 그는 은은한 매력을 지니고 있으며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지 않는다. 그는 혼자 있는 자신을 좋아하며 어쩌면 많은 외로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자기 스스로 폐쇄적으로 사는 것 같다.

나는 그를 하루 그리고 약 다섯 시간 정도밖에 보질 못했지만 아직도 그의 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은은하고 멀리 퍼진다. 그의 조각들은 기억 속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으며 나는 그것을 잡지 못하여 아무런 형체가 없는-하지만 약간의 실루엣만 남아있는- 그의 품에 들어가 있는 상상을 한다. 너무 따뜻하며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들 때 그러한 상상을 하면 치유가 되는 기분이다.

한 달 만에 그에게 일적으로 연락을 하였는데 그는 여전히 딱딱하면서 동시에 부드러웠다. 공손한 표현을 썼으며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방어기제를 나에게 보여주었는데 그러한 모습이 나의 한 부분과 닮아있어 좋았다.

그에게 연락을 먼저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상상 속의 그를 깨 버리기 싫어 한동안 연락하지 않고 그의 모습을 상상하며 지냈다. 나는 그를 은은하게 내버려두고 싶었다. 은은한 비누 향 위에 향수를 뿌리기 싫었다는 것이다. 본능대로 그에게 다가가고 싶지도 않겠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싶었고 남들과 똑같이 그의 메시지를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기계화라는 것 속에 우리를 집어넣고 싶지 않았고 그와 거리감을 내며 그와 함께 있는 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보고 싶지만 강렬하게 보고 싶은 것 또한 아니어서 그저 그의 향을 상상한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갈수록 그의 실루엣마저 너무 흐릿해지고 있다. 아주 오랜 후에는 그의 실루엣조차 없어지고 그 날의 색깔만 보고 있을 것 같기는 하다. 나는 그가 좋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그를 맞닥뜨리기 두렵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기에는 아직 너무 좁고 너무 예민하다. 현실 속에서 이상 속의 그를 깨뜨려 버리고 싶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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