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누군가가 남아있다면, 그 사람을 떨쳐내고 누군가를 사랑하기는 참 쉽지 않다.
누군가는 이미 스쳐 지나가버렸고, 본인이 그 사람에게 후회되는 행동을 하고 헤어져버렸다면, 그것은 후회를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은 이미 마음을 닫았다.
내가 몇 년 간 정신이 아플 때, 내 곁을 지켜줬던 사람이 있었다. 내 기둥은 나 자신이 아니라 그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사랑했다고 생각했지만, 알고보면 집착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에 대한 집착이 떨어져 나가고, 그 사이에는 가족과도 같은 돈독감이 자리잡혀 있었다. 누군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진정한 사랑과 우정같은 느낌이었고, 어떠한 관계로 정의내리기 힘든 소중한 관계였다.
하지만 그 관계는 어느 순간, 끊을 수 없는 짐같이도 느껴졌다. 내 행동 범위가 그 사람의 행동 범위와 맞추어 지면서 나는 스스로의 자유를 갈망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 꿈이 그 사람의 꿈과 비슷해지고, 누군가를 사랑하는데에도 한계에 부딪혔다. 나 스스로가 원하는 삶은 아니었지만, 그 사람의 기대에 부흥하고 싶다는 마음이 내 안에서 꿈틀대고 있었나보다. 나는 그 마음을 끊어버리고 자발적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이제 내 안의 기둥은 다시 꼿꼿하게 섰으며, 아팠던 마음들은 그 사람의 도움으로 치유가 되고, 상처받아 제대로 걷지 못했던 다리는 이제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걸을 수 있었다. 나는 혼자 날고 싶었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대로 나는 그 사람에게 상처되는 말을 한 뒤 떠나버렸다. 우리 둘 은 각자의 사정은 있었지만,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그대로 어정쩡하게 끝이 나 버렸다.
그리고 그 후로 몇달이 지나도 그 사람은 내 마음 속에 있었다. 관계가 끝이 나도 끝난 게 아니었다.
나는 그 사람을 떠난 게 후회가 되지는 않는다. 어차피 떠났어야 하는 사건 중 하나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의 상처와 그 사람에 대한 기억, 그리고 고마움과 미안함, 그런 건 너무 커다랗게 남아 있었다. 좋거나 나쁜 것, 슬프거나 사랑스러웠던 기억들이 간간이 생각의 형태로 떠올랐기에, 그것들을 어떻게하면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해오다가 어느 날, 그것들을 전부 종이에 적은 뒤, 모든 지나가버린 고통과 행복감들을 직면하고 찢어버렸다. 완전한 후련함은 없었지만, 서서히 그것들이 주춤거리는 모양새가 있는 것 같다.
누군가와 헤어진 뒤, 그것을 후회하고 상대방은 나를 생각하려나? 라는 생각의 형태는 부질없다. 이미 과거는 지나가버렸고, 그 사람이 나를 생각하건 말건 이미 사건은 지나가버린 것이다. 그 사람에게 준 상처를 후회해봤자 소용 없는 일이다. 후회하는 것도 내 마음 속의 일이다. 그것을 떨쳐내고 다시 현재를 사는 것도 내 마음의 일이다.
그리고 오늘 새벽, 오 년 전 내가 가장 순수하게 좋아했던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그 사람을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했고, 온 마음을 다하여 표현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고 떠났을 때, 나는 핸드폰을 잃어버렸고,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기억과 감정도 그걸로 끝이었다. 그 때에는 비극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삶에게 고마운 사건이었다. 나는 실연도 당했고 핸드폰도 잃어버렸고, 그 사람이 떠났다는 상실감에 밤새도록 술을 마시다가 다음 날 좋은 기회로 잡았던 약속까지 파투나버렸다. 나에게 너무나 큰 상처와 슬픔이었지만 그것을 떨쳐내고자 삼청동을 걸으러 갔다. 정처없이 걸었다가 그 길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행복감에 빠졌다. 그것이 바로 현존의 행복인 것이다. 삶은 나에게 그런 방식으로 위로를 건넸다.
그리고 삶은 누군가를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고, 누군가를 말끔하게 잊는다는 것 또한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게 후회가 되었는지 해마다 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럴 때마다 당황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 그 사람에게 연락이 왔고, 내가 보고싶다고 그 사람은 말했다. 너무 당황스러운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전화를 끊은 뒤 그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기억 속에 있는 나를 잊고, 다른 사람을 마음껏 사랑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보냈다. 신기했다.
누군가는 나 스스로에 대한 거울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기에.
순수하게 사랑했던 그 사람은 나에 대한 거울이 되었다. 나의 기둥이었던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모두 떨쳐버리고, 다른 사람을 마음껏 사랑하라는 삶의 메시지이다.
이미 많은 것들은 지나가 버렸고, 우리 본질인 사랑은 다른 모습으로 둔갑하여 이성에게 나타난다. 그리고 거기에서 연인간의 사랑이 발견되고, 우리가 상대에게 어떻게 행하는가를 가르쳐 준다. 그것이 바로 삶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