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 위에 덧붙여진 푸른 푸른 푸름.

사근진해변

by hari

무채색 위에 덧붙여진 푸른 푸른 푸름. 사근진해변


글, 박하리


서울의 탁한 공기를 피해 5월 4일, 무작정 버스에 올랐다. 약 2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사근진 해변을 4시간에 걸쳐 도착하였다. 연휴가 겹쳐서 차가 밀리는 모양이다.


어떠한 계획도 없이 간 사근진 해변. 강릉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탔는데 택시 아저씨께서 문신한 사람들은 싫다고 하였기에 뜨끔 하였다. 팔의 타투를 어루만지며,


이전에 갔던 해변의 맑은 모습은 없고 희뿌연 대기가 우리를 덮었다. 거대한 수중기 속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햇빛이 거의 없어 가져왔던 모자를 가방에 두고 목적없이 걸었다. 나는 조개 줍는 여인이 된 마냥 조개를 실컷 주워 귀걸이로 만들기도 하였다.


IMG_8085.JPG 주워온 조개들. 은색의 빛을 내는 타원형의 조개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1.JPG 조개들이 널브러져 있다. 흰 색의 민무늬 조개, 삿갓모양의 조개, 작은 소라모양의 조개가 대부분이었다.

서울에서는 마주할 수 없는 여유였다. 연휴라 사람이 꽤 많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그들은 제각각 여유롭게 바다를 거닐 뿐 어떠한 소란도 없었다. 아주 차분하고 여유롭고 평온한 공기였다.

우리는 그저 걷기만 하였다. 일, 돈, 사랑, 사람, 스트레스를 다 내려놓고 그저 걸었다. 그것이 우리의 하루였다. 보람차지 않아도 되는,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 그저 무심코 흘려 보내는 것 같은 하루였지만 마음 속에 기록이 되는 그런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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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등불을 허공으로 올리며 저마다 자신들의 소원을 빌고 있었다. 무슨 소원을 빌까? 하며 나도 등불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다. 아주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다. 소위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일상의 성과를 꾸역꾸역 집어먹다가 탈이 나지 않게, 그저 작은 희망을 놓지 말라는 소원이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소원은 비밀이다 ㅎ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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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놀이를 살 지 사지 않을 지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옆에 있는 사람들이 불꽃놀이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등불도, 불꽃놀이도 사지 않고 그저 옆에서 바라만 보았다. 그것이 그저 우리의 행복이었다.

가족들끼리 온 사람들이 많았다. 혹은 커플. 우리는 가족 여행에 대하여 말하였다. 마지막으로 가족여행을 간 게 언제였더라? 아마 중학생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항상 강원도 계곡에 해마다 놀러갔었는데 아버지께 내가 계곡은 지겹다고 하였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우리는 여행을 가지 않았다. 조금은 속상하지만 예쁜 기억이었다. 처음 계곡에 갔을 때가 아마 5살 때였는데 그 때 나는 흰 색의 팬티만 입고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아버지는 당신의 표정이 얼굴에 새겨지기 전, 아주 젊은 모습을 하고 계셨다. 지금 아버지의 얼굴에는 세월의 표정이 진하게 새겨져 있다. 순하디 순한 인상이 억세게 변하셨다.

친구는 항상 가족여행을 갈 때마다 힘들었다고 한다. 텐트를 치고 바다 앞에서 잠을 잘 때면 항상 벌레가 습격하였다고 한다. 나는 "좋았을 것 같은데?"라 말하였지만 친구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는 가족과 커플들 틈으로 걸어다니며 우리들의 밤의 풍경을 즐겼다. 손에서 조개 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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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7930.jpg 하리예요


파란 색을 제일 좋아하는 나는 아주 짙은 사근진 해변의 밤에 매료되어 있었다. 사진도, 옷도, 입술도 다 푸른색과 보랏빛으로 빛났다.


회를 먹지 못하는 나 때문에 우리는 과자와 빵과 치킨을 실컷 먹었다. 서울에서 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지만 좋다고 신나서 음식들을 입에 물고 깔깔거리며 먹었다. 떠나기 전 바다를 조금 거닐다가 차 시간이 가까워지자 우리는 택시를 탔다. 유쾌한 택시기사님이셨다.

어린이날이어서 그런지 라디오에서는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이야기가 나왔다. 연인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아마 만남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였다. 어찌보면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소소한 흐름이 들렸다. 좋았다.

택시기사님은 그 라디오를 들으시며 우리에게 퀴즈를 내 주셨다.


"방정환 선생님의 호는 무엇일까요? 1번 소파, 2번 침대, 3번 의자!"


나는 장난스럽게 "2번 침대!"라고 외쳤고 택시 안 세 사람은 꺄르르 웃었다. 옛날 나이트 클럽에서 나올법 한 촌스러운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왔고 기사님은 볼륨을 올리셨다. 우리는 택시 안을 클럽이라 생각하고 춤을 추었다.


서울에 돌아오고 아주 정신없고 혼잡한 일상 속에 다시 들어왔다. 우리는 그날의 우리를 기억할 것이고 그날의 냄새와 그날의 웃음을 기억할 것 같다. 택시기사님이 싫어하신다는 바다 냄새를 기억할 것이고 조개를 줍는 나의 모습을 잊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진부할 수도 있는 사소한 일상 속 기억이 아닐까? 아주 좋은 꿈을 꾼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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