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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용 Nov 07. 2023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리뷰

이 영화의 여러 인물들은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의 투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애니메이션 영화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서전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자서전은 본인이 본인의 일대기를 적은 책이다. 아직 죽지 않은 인물이 죽기 전 자신의 이야기를 쓴게 자서전이다. 사후 제 3자가 저술한 평전과 다른 부분이다.


 사후에 저술되는 평전과 달리 자서전은 자신의 인생 전부를 담지 못 한다. 그런데 하야오의 이 자서전은 82세의 고령으로 볼때 하야오의 인생 거의 전부를 담고 있다. 자서전이기도 한 동시에 어찌보면 죽기 전에 남겨놓는 마지막 메세지, 즉 유서의 형태를 담고 있다고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영화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개성있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인물들 사이에 스토리의 전개에 대한 설명이 투박하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원래 이런 부분이 있으면 그냥 잘라내고 흐름에 맞춰서 다른 이야기를 덧붙이는게 맞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죽기 전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부 풀어놓는게 이 영화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야오는 영화에 다양한 대리인을 풀어놓는다. 그 대리인을 통해,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3자에 대한 묘사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로 풀어놓는다.


주인공 마히토


 주인공인 마히토는 당연히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이다. 41년생인 본인의 출생년도를 생각할 때 영화의 배경이 태평양전쟁 직후인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도쿄 폭격과 어머니의 죽음이 전쟁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사실이 굳이 탑에서의 이야기와 연결되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군수물자 납품으로 크게 돈을 버는 아버지의 모습도 본인의 아버지 모습과 겹친다.


우측이 왜가리. 여기서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메인 조역으로 나오는 왜가리는 하야오의 친구인 지브리의 대표이사, 스즈키 토시오라고 알려졌다. 실제로 스즈키 토시오의 인터뷰에서 언급된 내용이다. 하지만 왜가리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의 투영이다. 극 중에서 왜가리가 거짓말을 잘 친다고 했는데, 미야자키 하야오도 이전에 은퇴선언을 번복하는 등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친 것은 아주 유명하다. 영화는 픽션이고 어떻게 보면 이야기를 꾸며낸 것이기 때문에 모든 영화 감독이 거짓말쟁이라고 해도 말이 된다. 1941년생인 본인이 도쿄대공습이 있었던 1945년에 10대 소년으로 묘사되는 것도 어찌보면 거짓말 아닌가.


 또 왜가리는 마히토를 탑의 세계로 데려오는데, 탑은 하야오가 생각하는 저승 세계를 의미한다. 저승은 불가사의한 존재다. 인간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영원히 풀 수 없는 미스테리다. 탑 주변에서 알 수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도 인간의 탄생과 죽음이 미스테리인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런 저승 세계의 세계관으로 마히토를 안내하는 것도 왜가리인데, 이는 감독인 하야오 본인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작품 세계로 관객들을 안내한 것과 일치한다.


 영화의 제목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도 결국은 하야오가 관객에게 묻는 질문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은 결국 대사다. 그렇다면 그 대사를 뱉는 등장인물도 반드시 포스터에 함께 나와야한다. 그런데 '어떻게 살 것이냐'며 질문을 뱉는 사람은 결국 관객들을 작품세계로 인도한 하야오 본인, 왜가리다. 그렇기 때문에 포스터에 나오는 단 하나의 등장인물이 반드시 왜가리여야 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 'The boy and the Heron'일 정도로 왜가리가 중요한 인물인 이유기도 하다.



마히토의 큰외할아버지.



 엄마의 큰외할아버지가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인 것은 그의 필모그래피를 조금만 봐도 알 수 있다. 작 중 세계관을 떠받치는 13개의 돌조각은 하야오 본인이 만든 13개의 작품을 의미한다. 13개의 돌조각을 다루는 큰외할아버지는 지브리 세계관의 설계자인 하야오 본인이다. 큰외할아버지가 마히토에게 자신을 계승하고 설계자가 될 것을 요구하는 장면 역시 지브리의 대표인 본인과 애니메이션 후계를 잇는 자신의 아들로 비교 할 수 있다.



키리코 할머니. 출처 : Kiriko boy and the Heron by ErikMia04 on DeviantArt


 마지막으로 하야오가 자신을 투영한 인물은 바로 키리코 할머니다. 그동안 하야오의 작품들에는 다양한 할머니들이 나왔는데 이 영화에서는 할머니가 객체가 아닌 몰입의 대상으로 나온다.


 하야오는 작품이 나온 현재 인간의 평균수명에 가까운 82살이다. 인생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생각할 나이다. 자기보다 나이가 많았던 모든 사람들도 죽기 전에는 80대인 자신의 또래였다. 그렇기에 자기보다 손위였던 누나, 아주머니, 할머니였던 노인들이 이제는 자신의 또래이자 자기 자신처럼 느껴지게 된 것이다.


머리에 상처? 그거 나도 있는데. 젊은 시절의 키리코 할머니.


 그러다보니 키리코 할머니가 저승세계에서는 젊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늙어보이는 저 할머니도 옛날에는 나처럼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서 설정된 장치다. 현재의 모습과 과거의 모습이 두 가지가 모두 생동감 있게 묘사된 등장인물은 키리코 할머니가 유일하다. 죽음을 앞둔 할머니도 젊은 시절이 있었고, 여기에 노인이 된 하야오가 강한 동질감을 느낀 것이다. 마히토가 가진 머리의 상처를 젊은 키리코 할머니도 똑같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하야오가 할머니를 본인의 인생과 동일시 하고 싶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히토의 어머니 히미.


 같은 차원에서 볼 때, 마히토의 엄마인 히미가 어린시절의 모습으로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를 낳아준 어머니는 나보다 나이가 많을 수 밖에 없다. 사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하야오의 어머니는 이미 사망했고 살아있는 하야오의 나이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의 나이보다 많다.(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머니는 73세에 사망했다)


 만약 저승세계가 있어서 하야오가 죽은 뒤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면 그 어머니는 82세의 하야오보다 어릴 것이다. 그걸 감안하면 마히토의 어머니인 히미가 탑의 세계에서는 사망 당시의 나이가 아닌 마히토만큼 어린 나이로 묘사되어야 했던 것이다. 고령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도 사후 어머니와의 재회를 꿈꿀 정도로 어머니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저승세계에서 나왔던 '사람'들은 어머니와 관계된 히미와 나츠코를 제외한 전부가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의 투영이다. 주인공인 마히토부터 동물이지만 인간의 얼굴을 가진 왜가리, 외증조할아버지 마지막으로 키리코 할머니까지.


 영화가 일반 대중에게는 난해하다는 평을 듣지만 평론가들은 입을 모아 극찬한다. 이 영화는 감독이 왜 이렇게 했을까 생각하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하는건지 당췌 알 수가 없다. 반면 감독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했을까 생각하면서 보면 볼거리가 굉장히 많아진다. 평론가들은 영화 볼때 기본적으로 감독의 의도를 읽으며 본다. 그래서 평론가들이 입을 모아서 이 영화를 극찬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서전이자 일종의 유서다. 감독 본인이 죽기 전에 하고싶은 말 전부 다 담아놔서 중간중간 개연성이 떨어지고 난해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볼 때,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82세의 거장이 인생을 마치기 전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가 바로 이것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감상하면 큰 감동이 느껴진다.


 마히토가 모험을 마치고 탑에서 나올 때, 우리는 마침내 영화가 감독의 자서전이자 관객에게 묻는 질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관객들을 탑으로 안내한 왜가리가 우리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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