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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용 Nov 23. 2023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 서평

자유주의의 황혼은 종교의 귀환으로 이어지는가

" 사회주의는 노동의 문제 내지는 소위 제4계급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주로 무신론의 문제요 무신론의 현대적 구현의 문제이며 땅에서 하늘에 다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늘을 땅으로 끌어내리기 위한, 그야말로 신 없이 건설되는 바벨탑의 문제이다. "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도스토예프스키 著) 중에서


 종교의 자유를 억압받던 동유럽 공산권 국가의 주민들에게는 환상이 있었다. 서유럽의 국민들은 부유하고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가치관을 존중하고 종교의 자유 하에 독실한 국민들이 사회를 구성할 것이라는. 공산주의가 종교를 금지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긴 환상이다. 하지만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국경이 개방되며 서유럽 시민들이 독실한 신도들일 것이라는 동유럽 국민들의 환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져내렸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공산주의는 종교를 부정했고 소련은 러시아의 교회들을 파괴했다.


 공산주의와 자유주의는 현대사회에서 좌파의 이념 그리고 우파의 이념으로 인식된다. 서로 상반되는 두 이론에게 사실은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계몽주의의 자식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서로 서로 모순인것 같으면서도, 종교이념을 바탕에 둔 전통적인 국가들과 비교될 때는 계몽주의에 기반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계몽주의에서 비롯된 근대(모던) 합리주의는 무신론에 동의하며, 종교와 믿음과 또 그것으로 대표되는 전근대와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신을 부정하는 것은 가장 최근의 사상으로 생각되는 포스트모던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포함된 제1세계의 주 이념인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권리와 존엄, 사유재산권, 그리고 종교의 자유를 헌법에서 명시한다. 모두 계몽주의의 열매들이다.


 이런 제1세계의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두고, 이란의 신정헌법 제정을 이끈 종교지도자 호메이니는 '미국종교'라고 정의한다.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의 시민혁명, 미국 독립혁명으로 이어지며 1세계의 주류이념인 자유민주주의는 결국 종교를 부정하는 '무신교', 즉 '미국종교'라는 지적이다.

입헌군주제의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란을 이슬람 신정국가로 만든 호메이니. 그는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미국 종교'라고 지적했다. (Reuters)


 계몽주의의 적자로 살아남은 자유민주주의는 이론이 발전되며 PC주의와 퀴어이론을 낳았다. 그에 대한 반동은 트럼프라는 제도권 바깥에서 온 대통령을 낳았다. 민주당과 전통적 보수당의 맹비난을 받는 트럼프는 명백하게도 계몽주의의 후계자가 아니다.


 현재 젠더이론에서 남녀간의 생물학적 차이를 지적하는 것은 이단이다. 완전한 남녀의 평등 구현이 그들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트랜스젠더는 성전환 수술 없이도 다른 성으로 인정받아야하고 또 미국 공식단체들은 이들을 다른 성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이런 현실에 국민들은 괴리감을 느낀다. 소위 '배운 사람들'이 이들의 괴리감을 보고 '더 공부해라'라고 지적하는 모습은 덤이다.


 PC주의의 이론적 근간인 포스트모던에 이제 많은 사람들이 지쳐간다. 미국의 젊은 남성들에게 환호받는 조던피터슨은 종교의 가치에 대해서 그리고 영혼의 치유에 대해서 역설한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전통적인 가치의 소중함이다. 구미 선진국들의 일부 대안 우파들이 점점 이슬람에게 호의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어보인다.


 그리고 푸틴을 지도자로 인정한 러시아 국민들은, 공산주의도 자유민주주의도 아닌 전통주의적 가치관으로 국가관을 바꾸는데 동의하고 있으며 이는 이슬람 神정국가인 이란, 유교 기반 전체주의 국가인 중국과의 연대를 가능하게 만든다.

호주 멜버른의 공자학원 중의학학교 개교를 기념하는 시진핑 주석. 유교를 부정하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유교를 적극적으로 긍정한다. WILLIAM WEST/AFP/GETTY IMAGE


 저자는 자유민주주의와 전통주의적인 가치관 둘 중에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한다. 책 초반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역사의 자연스러운 귀결이 아닌 '간신히 지켜져왔던 가치'로 언급되는 부분에서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공산주의가 붕괴하며 근대 계몽주의의 적자로 인정받은 자유민주주의는 과연 역사의 종언인걸까 아니면 거쳐가는 과정인걸까. 자유주의의 황혼, 종교의 귀환은 결국 이루어질 것인가. 가장 최신의 사회현상에 대해 자세히 풀어 설명해준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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