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물성과 인격신, 그리고 혐오
인간은 동물과 어떻게 다른가. 또, 인격신은 인간과 어떻게 다른가.
- 동물성과 인격신, 그리고 혐오
"일본군은 초식동물이다"
보급이 끊겨 아무것도 먹지 못해 굶주려있는 일본군에게 그들의 지휘관 무타구치 렌야가 한 말이다. 식물로 가득한 푸른 산에 둘러싸여 있으니 초식동물인 일본군에게는 식량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궤변과 함께 일본군은 미얀마 정글 한복판을 기아상태로 행군했고 결국 영국군에게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만다.
일본인은 초식동물이었는가? 일본인이 1800년대까지 고기를 거의 먹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타쿠 같은 부연을 덧붙이면 인간은 섬유질을 분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일본인을 초식동물이라고 하는것은 어불성설이긴 하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을 초식동물이라 비유하니 기분이 이상하다.
"자고 싶을때 자고, 먹고 싶을때 먹고, 싸고 싶을 때 싸면 그게 동물이랑 뭐가 다르냐?" 학창시절때 선생님들이 많이 하시던 말이다. 인간은 동물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을 동물과 다른 존재로 구분짓는다. 다윈의 진화론이 인간을 (동물과 구별되는) 신의 피조물에서 동물이 진화한 결과물로 그 위상을 격하시켰음에도, 여전히 우리는 인간을 동물과 구별되는 존재로 인식한다. 사람에게 인간은, 동물과 다른 것이다.
인간의 감정을 파헤친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혐오의 감정을 설명할 때 동물성을 언급했다. 혐오는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거나 그로 인한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콧물과 가래, 땀과 분비물, 피와 배설물과 같은 비위생, 늙음과 생명의 필멸적 특성이 그렇다.
인간은 죽음을 타자화한다. 자신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한다. 젊은이들은 자신은 늙지 않을것이라 생각하는지 늙은이의 주름을 얕잡아본다. 인간은 이러한 필멸적인 생명의 한계를 동물적인 것-동물성-으로 규정짓고, 역으로 동물성을 혐오하는데까지 나아간다.
인간은 혐오스러운 동물성을 인간에게서 배제하고자 노력한다. 더러운 것을 멀리하고 청결을 유지하려 한다. 의사소통을 통해 특정 행동을 통제하고자 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성관계 시 후배위를 동물 같다며 기피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인간은 생명의 필멸성을 동물적 특성으로 규정짓고 인간의 죽음을 동물의 죽음과 차별화한다. 우리는 인간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싶어하며 모든 종교는 예외없이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사후세계와 관련된 교리를 갖는다.
그러나 인간은 근본적으로 동물적인 존재다. 인간에게 동물성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인간은 인간에게서 혐오스러운 동물성을 완전히 배제한 존재를 가공해낸다. 바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과 같은 인격신이다.
인간이 창조해낸 신은 고결하다. 그들은 청결하고 아름다우며 유능하고 영원히 죽지 않는다. 더럽고 죽으면 시체가 되는 동물과 정반대에 위치하는 존재다. 그러니까 인간은, 신과 동물의 중간 어디엔가 있는 존재인 것이다.
이런 동물성에 대한 개념은, 인간이 반려동물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반려동물에게 학습을 통해 배변을 통제하게 하고, 수명이 다 해 시체가 된 동물의 장례식을 치러준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그들의 반려동물이 죽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사후 세계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일반적인 동물성을 지닌 가축이 사람에게 잡아먹힌 뒤에 사후세계로 갈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것과는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다.
여기서 제목을 넘어 신-인간-동물로 이어지는 3단계의 사이에 끼워넣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 바로 반인반신의 존재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거의 죽일 수 없는 아킬레스가 있으며 판타지 소설에는 엘프가 있다. 그들은 아름답고 유능하며 수명이 굉장히 길거나 살해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소설 해리포터의 교장 덤블도어는 정말 애매하게도 116살까지 살았다)
현대 SF에서는 반인반신에 해당하는 존재로 스타크래프트의 프로토스 종족을 고를 수 있을 듯 하다. 프로토스는 보통 천년에 달하는 수명과 인류에 비해 압도적으로 발달한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심지어 스타크래프트 세계관의 신(창조자)인 젤나가와 소통하고 물리적인 갈등을 겪을 정도로 신에 가까운 존재로 묘사된다.
같은 관점으로 보면 저그는 인간과 비교해 프로토스의 신적인 특성과 정반대에 위치해있다. 그들은 지상에 더러워보이는 점막을 깔고 원거리 공격을 할 때 침을 이용한다. 오버마인드의 조종을 받기에 이성적인 소통의 대상이 아니며 심지어 진화(일종의 품종개량)의 대상이기까지 하다. 동물성을 극단화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프로토스-테란-저그의 종족관은 신-인간-동물의 구도를 이용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극동아시아에서는 도교의 '신선'이 존재가 신과 비슷하다. 신선은 몸이 가볍고, 식사는 곡물 대신 과일만 먹는다는 묘사가 있다. 그들은 불로불사이기에 서양의 인격신과 유사한 특성을 가진다. 유교의 경우 '조상신' 등이 불멸의 존재며 소원을 이루고 벌을 주는 유능한 존재이기에 유사하다. 다만 그들은 죽음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 했기에 (어쨌든 죽음을 겪은 이들이니) 유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관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할때 동물성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남중남고를 나왔는데 남중남고의 남학생들에게는 여학생이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존재였다. 농담이긴 했지만 '여자는 똥을 싸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친구도 있었다. 여자를 신적 존재로 인식하다 보니 배변이라는 동물성이 제거된 것으로 묘사한 것이다. 유튜브 방송에서 여자도 똥 싸냐는 시청자의 질문에 '여자도 똥 싸요. 근데 핑크색이고 하트 모양이예요'라고 농담을 한 유튜버도 있었다.
반대로 비난할 때도 마찬가지로 동물성을 이용해 혐오의 감정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여성을 혐오할 때 생리를 가지고 남성과 차별한다던지 말이다. 2015년 트럼프가 "(여성 앵커의)눈에서 피가 나오는걸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다른 어딘가에서도 피가 나오고 있었을 것"이라고 발언해 크게 논란이 된 것이 대표적이다. 흔히 남자들이 여성을 비하할 때 비이성적이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부 여성들이 '남성혐오는 있을 수 없다'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나는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남성도 젠더 관점에서 상황에 따라 약자가 될 수 있으며 혐오의 대상도 충분히 될 수 있다. 여성이 혐오받는 것과 상당히 유사한 방식으로 혐오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은 2022년 한 고등학생이 학교에서 받은 성교육 수업이라며 인터넷에 업로드한 사진이다. 사진에서 성교육 강사는 한국남성의 동물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실제 통계와 비교해도 객관적으로 틀린 사실이기에 혐오(Disgust)의 감정을 이용한 전형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제도권 수준까지 올라온 사람들 중에서는 젠더이슈에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당장 중고등학교 교육 수준까지만 내려가도 필터링이 제대로 되지 않는듯 해보인다. (성교육은 학교 교사가 아닌 외부강사가 강의하도록 되어있다) 이런 현실이 젊은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를 갖게 만드는 요인이 아닌가 싶다. 마치 초등학생때 부모님이 사주던 값싼 보급형 갤럭시에 질려 더이상 갤럭시를 사지 않게된 20대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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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혐오와 수치심 (Hiding from humanity : disgust, shame, and the law)
- 마사 누스바움
타인에 대한 연민 (The monarchy of Fear)
- 마사 누스바움
* 마사 누스바움은 시카고대 철학과 교수로 미국철학회장을 역임했으며 정치철학자와 (자유주의)페미니즘철학자로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사 누스바움을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인 주디스 버틀러의 대척점에 서있는, 주디스 버틀러와 더불어 현대 페미니즘 이론의 양대 권위자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