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그럼 대표는 누가 하지? 분위기는 대체로 비슷했다. 대표를 맡을 수 있는 연차들 중에서 여자가 아닌 남자 중 몇 명을 쳐다보는 것으로. 왜인지는 나도 모른다. 나의 대학교 학창시절의 풍경은 그랬다. 여학생이 대표를 맡은 경우도 그렇게까지 드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어쨌거나 분명히 예외적인 상황에 한했다.
2023년 6월, 유엔개발계획이 발표한 젠더사회규범지수에서 한국의 성차별 인식 수치가 매우 나쁘게 나왔다. 심지어 성평등 인식이 가장 후퇴한 나라 중 하나로 언급되기까지 했다. 왜 또 이런 수치가 나왔을까? 남편들이 가사노동을 안 도와줘서? 생리휴가에 반대해서? 여성 대상 범죄율이 높아서?
아니다. 유엔의 성차별 인식 조사에 나온 질문은 이거다. 남성과 비교했을 때 여성이 회사 중역이 되기에 적절한가? 정치인으로서 여성이라는 성별이 적절한가?
유엔이 던진 질문은 여성이 남성과 대등한 수준으로 사회의 리더로서 활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서구 선진국은 여성이 사회, 경제적 리더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답변한 비율이 30% 수준이었지만, 한국은 거의 90%가 여성은 리더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답변했다. 남성이 93%, 여성이 86%로 남녀 수치도 거의 비슷해 성차별적 인식이 있는 것은 한국여성도 한국남성과 다를바 없었다는 의미다.
한국인의 성차별적 인식은 남성 93%, 여성 86%로 남녀가 서로 거기서 거기다.
한국의 성차별 인식 수치가 나쁘다는 결과만 듣고 또 엉터리 통계가 나왔다고 발끈하던 내 친구가 설명을 듣더니 이내 수긍했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다면서. 여성이 리더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건 본인도 보고서에 나온 평균적인 한국인과 다를바 없다고.
통계는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자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왜 이렇게 된걸까? 나는 대한민국 여성정책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을 약자로 규정하고 거기에 맞춰서 여성을 우대하는 정책만 나왔다. 근거도 여성은 약자이기 때문이라고. Girls can do anything? Actually those Girls needed support of anyone.
이제는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Girls can do anything. 에이핑크 멤버 손나은이 올린 이 사진은 논란이 되자 삭제되었다.
2010년대 후반 2030 여성들의 정치적 성향은 극단적으로 한쪽으로 기울어졌었다. 18대 대선에서 2030 여성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69%, 65%였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인 30%, 34%의 2배에 육박한 수치다. 이 수치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인 19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즉, 대부분의 2030 여성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워마드 등 일부 웹페미는 같은 2030 여성임에도 정치적 성향이 상반되었었다.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한국의 낮은 여성인권 때문이라며, 박 대통령의 탄핵이 여성인권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했다. 인과, 선후관계가 바뀌긴 했지만 그러한 시각도 어떻게 보면 이해가 간다. 역시 여자는 대통령을 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드문드문 보였던게 당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여성은 정치인으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시각은 이 때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실제로 성평등인식에 대한 통계도 일치한다. 2012년과 비교해서 2022년의 한국인들이 여성이 정치에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성평등 인식 개선추이. 우리나라는 퇴보했고 심지어 뒤에서 2위다. 참고로 2022년 한국의 성평등인식 순위는 91개국 중 38위. 나름 괜찮은 순위인데 이걸 언급한 언론은 없었다.
여성은 회사의 중역, 그리고 정치 지도자로서 적합하지 않은가? 우리 사회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학생 단계에서 여성은 그룹의 리더로 활동할 경험을 얻지 못한다. 리더로서의 활동은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한다. 리더는 본인의 시간과 노력의 불필요한 투자, 불필요한 비난을 각오해야한다. 그래서 리더 역할은 보통 꺼려지는 자리다. 여성은 여기에서 '배려받아야 하는 존재'로 인식되며 리더의 자리를 강요받지 않는다. 리더가 될 소양도 길러지지 않는다.
여기에서 남성이 배제된 사회의 필요성을, 나는 느낀다. 나는 이대목동병원에서 전공의로 근무했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여대 의과대학의 대학병원이다. 2020년 파업의 우여곡절 와중에 전공의대표가 되었는데, 아무래도 2020년이 의사들에게 다사다난했던 해이다 보니 전공의 대표로서 이례적으로 이화여대 의과대학 동문회와 컨택할 일이 생겼다. 그 전에는 이대목동병원의 전공의 대표가 동문회와 컨택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단순히 컨택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동문회 모임에 초대받았다.
모임에는 이대목동에서 근무하는 여자 전공의 선생님과 참석했다. 그리고 20여명이 넘는 이화의대 동문들로 가득찬 방에서 남자는 나 혼자였다. 총무도 여자 선생님, 전임회장도 여선생님, 새회장도 여선생님, 부회장도 여선생님, 모든 이들이 여성이었다.
그러나 내 눈에 비춰진 이 동문회는 구성원 중 남성은 단 한명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남성인 나는 구성원이 아닌 방문객이었으니) 품위있고 짜임새있는 모습으로 정상적인 작동을 하고 있었다. 순간 여전사들로만 이루어진 아마존, 그리고 매드맥스가 생각났다. 남성이 없이도 온전히 작동하는 여성들의 사회가. 그 곳에서는 리더마저도 여성이며 여성이 이끄는 사회도 온전히 작동한다!
2015년 최고의 페미니즘 블록버스터로 꼽힌 매드맥스
물론 남성이 완전히 배제된 사회는 작동할 수 없다. 남성은 위험하고, 심지어 목숨을 걸어야하는 일에 주로 종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성이 배제된 집단에서, 여성은 리더로 성장할 수 있다. 특히나 리더는 당연히 남자가 해야한다는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여성만으로 구성된 사회의 필요성은 더욱 더 그랬다.
여성으로만 구성된 의과대학, 약학대학, 로스쿨 논란이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주장이 존재했지만 나는 이 주제에 대해서는 여대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다만 약학대학의 경우에는 서울 소재 약학대학의 대부분이 여대라는 논란이 있다. 남성이 서울에서 약학교육받을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은 문제라는 논리이며 여기에는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특히 의과대학의 경우 40개 의대 중 여대의대는 단 1개 뿐으로 남성에 대한 기회의 평등 침해로 보기보다는 여대의대가 존재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이득에 초점을 맞추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최근 여대 동아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본다. 이는 '여대'의 '페미니즘' 동아리라는 특성상 조직 구성에 남성이 완전히 배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직 구조에서 남성의 의견은 자연스럽게 완전히 차단되며 여성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의견만 존중받을 수 있다. 이는 찬반 토론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의견이 한쪽으로만 기울어는 결과를 낳는다.
여대 페미니즘 동아리의 분위기가 극단으로 몰리며, 남자친구를 사귄 여학생이 페미니즘 담론에서 배제되어야 하는지를 토론 해야하는 단계에까지 다다르면, 여대 페미니즘 동아리의 담론의 수준은 결국 '순수한' 여성들로 이루어진 내부 구성원의 단합대회 정도로 추락하게 된다.
이화의대 동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보구녀관
사실 이화의대 동문회 선생님들과 함께한 자리에서도 특유의 여성서사와 페미니즘사상을 못 느꼈던 것은 아니다. 보구녀관을 복원한 이대서울병원 박물관에서 시니어 선생님의 이야기야말로 여성서사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함께 듣는 과정에서 나는 남성이라고 배제되지 않았다.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고, 심지어 아무리 형식적일 지라도 후배라고까지 호칭해주시는 부분에서 포용과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trans 여성까지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대 페미니즘 동아리는 이 정도의 포용력이 있는가?
100명의 여성이 있다면 100개의 페미니즘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아마도 Standpoint theory를 쉽게 설명한 내용 같은데, Standpoint theory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한명 한명의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페미니즘 이론은 여기에서 약자들을 여성이라고 보았지만 나는 이를 여성에 국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을 논할 때 남성의 목소리는 반드시 포함되어야한다. 그래야 주장을 더 정교한 논리로 발전시킬 수 있다.
나 또한 젠더이슈에 대해서 더 정교한 주장을 하고싶다. 나의 주장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 뿐 아니라 UNDP GSNI보고서, WEF 글로벌 성격차 보고서 등 남성들에게 왜곡된 통계라고 비난받는 보고서까지도 근거로 삼을 것이다.
그리고 UNDP GSNI 보고서와 내 학창시절과 여대병원 전공의대표를 하며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볼 때, 남성이 배제된 사회 - 대표적으로 여자대학과 같은- 는 아직 필요하다. 아직 한국사회는 여성 리더를 배출하기에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으며, 여대는 여성 리더 양성의 요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