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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용 Sep 13. 2023

한남들의 반페미는 백래시도, 안티페미니즘도 아니다(2)

드라마 이상한변호사우영우를 정치철학과 페미니즘이론으로 비판하기

HanNam(abbreviation of Korean male, meaning South Korean incel)'s phenomenon of anti-feminism is not backlash but pro-feminism

-Critique on "Extraordinary Attorney Woo" based on political philosophy and feminist theory




1. 정치철학자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로 보는 권민우의 강자 발언

2. 페미니즘 이론가 도로시 E. 스미스의 '관점이론'으로 보는 2030 남성의 약자성

1. Attorney Woo might be 'the strong' - the idea of 'veil of ignorance' designed by John Rawls.

2. Dorothy E. Smith's concept of 'Standpoint theory' and marginalized young-adult-male in South Korea.





2. 페미니즘 이론가 도로시 E. 스미스의 '관점이론'으로 보는 2030 남성의 약자성


세상의 지식 중에는 특권계급은 결코 알 수 없는 지식이 있다. 그 지식은 피억압 계급에 의해서만 접근된다.

People from an oppressed class have special access to knowledge that is not available to those from a privileged class.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은 막시즘의 특권계급과 피억압계급 관계를 남성과 여성에 치환한 연구를 진행했다. 거기에서 많은 이론들이 나왔다. 관점이론Standpoint theory도 그 중 하나였다. 관점이론의 요지는, 그동안 사회와 과학을 발전시킨 특권층이 아닌 억압계층만이 획득할 수 있는 지식이 있고 마찬가지로 남성이 아닌 여성들에 의해서만 접근될 수 있는 지식, 이론이 있다는 것이다.


도로시 E. 스미스는 요점은 아래와 같은 3가지였다.


1. 완벽하고 객관적인 지식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2. 어떤 사람도 완벽하게 똑같은 관점을 가질 수 없다

3. 발언이 허락된 사람의 관점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안 된다.


대신 그것을 인식하고 반대하고 문제삼아야한다.

We must recognize it, be reflexive about it, and problematize it.


나는 이 이론에 동의한다. 중요한 회의를 할 때면 회의와 의사결정 과정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경청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목소리는 나의 목소리와 같지 않음에도 그들의 목소리는 내 목소리마저 대변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발언권이 있는 사람의 발언권도 중요하지만 발언권이 없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발언도 있다.


이번 대선에서 이대남의 변심이 주목받으며 그들의 생각이 주목받았다. 하지만 동시에 낮은 투표율로 인해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과대평가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정치권이 이대남의 목소리에 경청하는 것이 일시적일 수 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대신 스미스가 말한 '발언이 허락된 사람'은 누구이고 '허락되지 않은 사람'이 누구인지 언급하고 싶다.


현대사회에서 누군가가 시민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 발화의 기회는 단순한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나 능력이 아니다. 이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일종의 권력이다. 발화권력이라는 용어가 이를 설명한다.


발화권력은 담론을 형성하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관철시킬 수 있는 권력이다. 언론활동이 그 중 첫번째이며 출판이 두번째 시민단체 등 사회활동이 세번째라고 생각한다. 커뮤니티를 통한 여론 형성도 발화권력으로 볼 수 있겠으나 영향력은 미미하다고 본다.


이러한 권력을 가진 사람의 발화는 결국 정치인에 의한 입법에 반영되고 해당 이슈와 관련된 사람이 제도권 정치에 편입되기까지 하면서 본격적인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헌법 제21조에서는 모든 국민이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지도록 한다. 왜냐하면 이런 행동들이 탄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동시에 정치적인 힘을 갖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헌법으로 보장된 자유에도 불구하고 20대 남성들은 구조주의적으로 억압받고 소외되어있는 상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은 이윤이다. 2019년 교보문고 기준 구매자 성비의 경우 여성이 60%로 남성의 40%에 비해 압도적 우위를 차지했다. 여기서 가장 많은 소비자는 30대 여성이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당시의 출판가에는 페미니즘 서적이 쏟아져나왔다. 2019년 한 해만 페미니즘 키워드로 출간된 도서 수가 134종이다. 출판계에서 젊은 남성에 의한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젊은 남성은 출판에서 소외되어 있다.


남성은 일반적으로 여성보다 돈을 많이 버는 직종에 근무해야 한다는 구조주의적인 억압에 시달린다. 일부 여성의 경우에는 이와 관련된 의견을 공개적으로 발화하는 편이며 (이런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의견은 여성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결국 남자들이 취직할 수 있는 직종과 이를 위해 소요되는 일련의 사회활동은 극히 제한되게 된다. 이를 벗어난 남성은 소위 루저로 취급되어 발화권의 크게 약화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시민단체 활동에서 20대 남성은 철저하게 배제된다. 취직이나 준비할 놈이 길거리 쏘다니면서 구호 외치는 모습을 생각해보라. 자기 일 못 챙기는 한심한 모습이 떠오르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하지만 여성에게는 그런 비판적인 시선이 덜하다. 사실상 20대 남성은 집회의 자유에서 배제된 상태인 것이다.


나같은 경우에도 중학생, 고등학생때 남자라면 자고로 취직이 잘 되는 과로 가야한다는 시선이 팽배했다. 남자가 문사철이나 예능 계열에 진학한다면 정신 못차린 애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았다. 2019년 대학 학과별 성비에서 취직이 어려운 언어, 인문학의 경우 남여의 비가 41대 59, 예능의 경우 응용예술, 미술 등의 경우 35대 65, 23대77 등이었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는 학과에만 있는게 아니다. 정치적인 발화권에 있어서 거주지의 문제는 결정적이다. 대부분의 영향력 있는 언론사가 서울에 위치해있고, 사회운동의 경우에도 담론이 형성되는 서울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거주지가 서울이냐 아니냐는 발화권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경우도 남녀의 성비는 여성이 서울에서 유일하게 높다. 2017년 기준 20~29세 성비가 약 114로 남성이 많다. 하지만 서울은 성비가 98정도로 여성이 많다. 


또한 남성이 2년여간의 군복무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남성은 20대의 10년 중 1.5~3년반을 군복무에 소요한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정치적 발언마저 금지되는 2년간의 시간은 20대 남성의 정치적인 발화를 그만큼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취직 시점이 늦어지며 발화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은 덤이다.


내가 '드라마 우영우'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던 것도 그렇다. 방송권력의 경우 대부분이 여성작가의 영향력이 강하다. 시나리오도 그렇고, 20대 남성의 경우는 이런 부분에서 영향력을 가질 수 없다. 2016년 방송작가 직군의 여성 비율이 94.6%다. 해당 성별의 목소리가 압도적이기에 남성은 공감하기 힘든 목소리가 드라마로 흘러나오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시청자도 여성 위주로 구성되며 이는 서로를 강화시키는 되먹임 효과를 일으킨다.


도로시 E. 스미스는 발화권력이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 발화권력이 가장 없는 집단, 발언이 허락되지 않은 집단을 꼽자면 단연 20대 남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20대 남성들의 목소리가 외면받는다는 주장에는 '책도 사지 않는 집단' '사회적으로 목소리 내지 않는 집단' 등으로 비판받으며 묵살당하기 일쑤다. 하지만 20대, 30대 남성들의 사회적 약자성은 지속적으로 주장되고 있는 부분이다. 특히 취직 전의 20대 남성의 발화권은 철저히 소외되고 있는게 작금의 현실이다.


다른 이론을 근거로 본게 아니다. 페미니즘 이론을 근거로 봤을때에도 20대 남성의 발언권은 소외된 상태이며, 그들의 목소리는 존중받아야 한다. 젊은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비판적인 것은 페미니즘 이론을 몰라서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페미니즘 이론으로 젊은 남성을 옹호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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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페미니즘은 미국의 그것과 궤를 달리한다.


한국의 페미니즘이야말로 백래시이며 안티페미니즘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퀴어이론의 창시자이며 현대 페미니즘에서 가장 권위있는 주디스 버틀러에게 비판받은 것과 같이 숙명여대생들의 트랜스젠더 입학 반대 움직임은 '만들어진 성'인 젠더gender를 부정함으로서 3세대 페미니즘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반페미니즘 스러운 것이었다. 어머니가 아닌, 모성이 없는, 임신을 할 수 없는 여성도 여성이라는게 페미니즘인데 생물학적 여성만 여성이라는 그들의 주장이야말로 백래시이고 안티페미니즘이다.


또한 '여자라서 죽었다'는 강남역 시위는 어떠한 대안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반자유주의적이었고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인 마사누스바움의 논지에 정면으로 반했다. 마사 누스바움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이성적인 판단을 저해시키고 두려움의 대상을 제거하고 양립 자체를 거부함으로 인해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요소로 보았다. 하지만 강남역 시위는 두려움이라는 감정만을 강조하며 남성의 발화를 막고 오히려 해결책 도모를 방해함으로서 분노와 혐오를 조장한 것이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볼 때에도 강남역시위는 반페미니즘적 요소가 있다.


페미니즘 이론 자체가 여성의 약자성을 학문적으로 해부한 것이기에, 이론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약자를 대변하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페미니즘 이론을 공부하면 할수록 2대남등 젊은 남성의 약자성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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