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골절이 아니야"
" 야 이건 골절이라고 부르는게 아니야. 이런건 좆됐다고 하는거야 "
동아리 선배인, 정형외과 전문의 형의 반응이었다.
부러진 내 팔 엑스레이를 보더니 한 말이었다.
살살 웃으면서 말했었다.
'팔이 좀 부러졌어요. 수술도 했고요'라고.
동아리 선배 청첩장 모임이라 즐거운 자리였고,
굳이 얼굴 찡그리며 말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웃으면서 말하길래 별거 아닌줄 알았는데 심각한거였잖아!'
다들 똑같은 반응이었다.
개인적으로 하는 모임에서 행사를 준비 중이었다.
현수막을 달아야 하는데, 올라갈데가 없다보니 급한대로 의자에 올라갔었다.
바퀴달린 의자. 당연히 평소에는 조심하는데
잠깐하고 내려와야지 하는 마음으로 올라갔다가 봉변을 겪었다.
그게 내 인생 최악의 실수 중에 하나가 되었다.
정말이지 찰나의 순간이었다.
넘어지는데 하필이면 다리가 등받이에 걸려서 허공에서 몸이 더 돌았고,
(처음 느껴본 '크게 다치겠다'는 직감에 소리도 질렀다)
땅과 부딪히면서 팔꿈치에 '우지직' 느낌이 드는 순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골절이다'
같이 준비하던 동료들이 있어서 곧바로 내게로 왔고,
나는 골절같으니 119를 불러달라고 소리쳤다.
갑자기 다쳤으니 왠만해선 놀라서 안 아플만 한데도,
통증은 참기 힘들 정도로 심했다.
누운 자세 그대로 왼팔을 배 위에 올려놨는데 통증은 계속됐다.
후회는 일단 뒤로 미루자. 일단 가족들에게 알려야하겠지.
아내에게 우선 전화를 한다.
토요일이고 아직 근무시간이라 정신이 없는듯 했지만
팔 부러졌단 말을 하니 놀라며 알겠다 한다.
부모님은 조심하지 그랬냐고 알겠다고 하신다.
이송될 병원이 정해지지 않았으니, 정해지면 알려주겠다고 말하고 끊었다.
잠시 후 119가 건물 1층에 도착했다.
같이 있던 사람 중 누가 나와 동행할지 정하고
함께 1층으로 내려가서 119 차량에 탑승했다.
같이 동행한 친구는 사직 상태의 전공의였다.
정형외과는 아니었지만 응급실에서 외상환자를 많이 봤어서 나름 경험이 있었다.
'탈구일거 같은데요. 팔꿈치 탈구돼서 온 환자들 진짜 많이 봤어요'
이정도로 아픈게 과연 탈구일까?
근데 골절보다는 탈구인게 나으니까, 탈구가 맞겠거니 생각하기로 한다.
어차피 엑스레이 찍으면 다 나오니까.
그 때까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면 모두가 행복하잖아?
그래. 난 골절이 아니고 탈구다.
팔꿈치만 맞추면 바로 낫는 사람인거다!
살며시 기분이 좋아진다.
'20대 였으면 괜찮았을텐데, 30대라서 다친거 같네요'
넘어질 때 소리지르는 바람에 다들 놀랐을거 같아서,
다들 안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농을 던졌다.
넘어진게 문제라기 보다는 늙어버린 내 나이가 문제라고.
사실 30살보다는 40살에 가까운 30대기는 하다.
88년생, 생일도 지나 한국식 나이로는 38살이니까.
다른 사람들을 위한 농담이 아닌, 나를 위한 농담이었던 것도 같다.
119에 올라타고, 내 상태에 대한 질답이 오갔다.
사실 119 분들은 내가 의사인걸 대충 알고 있었다.
전화할 때 의사인 티 팍팍 내면서 질문에
의학용어 써가며 정확하고 자세하게 대답했기 때문이다.
'환자분 의사신거 같고요 - ' 라는 얘기도 들린다.
30분 전 fall down(낙상)으로 인한
elbow dislocation (팔꿈치 탈구)인 것 같고 다른데는 괜찮습니다.
past history(기저질환)는 없습니다.
LOC(loss of consciousness, 기절)도 없었고 어쩌구 저쩌구 ..
응급실 인턴 해본지 오래되지 않은 친구라 그런지 포맷대로 빠짐없이 대답을 잘 한다.
'의료인이세요?'
'네 의사예요'
다 알고 있으면서 확인차 물어보신다.
의사들 중에는 의사인거 티내기 꺼려하는 사람도 많다.
진상같다고.
하지만 나는 밝히는 편이다.
그냥 의산거 밝히고 자세히 설명들으면 좋으니까.
지금은 나름 응급상황이기도 하고.
'병원은 어레인지 되셨나요?'
'아뇨 어레인지 해야해요'
'요즘 전공의 없어서 어레인지 어렵지 않나요? 토요일이기도 하고요'
'그때 그때 달라요'
'몇시간 기다려야할 수도 있겠네요'
'...'
'빨리 어레인지 됐으면 좋겠네요. 아, 재촉하는건 아닙니다!'
2달 전이니까 전공의 사직사태가 마무리되지 않은
25년8월 현재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응급실 진료를 보는 전공의들이 대부분 사직하고 나와있는 상황.
'평일이면 그래도 괜찮았을거 같은데, 토요일이니까 오래 기다려야할 수도 있겠죠'
'너무 아파서, 일단 트리돌(가장 흔하게 쓰는 마약성 진통제)부터 맞고 싶네요'
이송 병원이 결정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
지금도 너무 아프지만, 머리로 떨어졌으면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매고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로는 아찔하고 한편으로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