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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용 Oct 15. 2023

신은 당연히 없는거잖아?

' 솔직히 신은 당연히 없는거잖아? 그렇지 않니? '


2018년 여름, 대학병원 신경외과 의국의 저녁 11시. 1년차 역할에 슬슬 적응해나가던 때였다. 레지던트 윗년차. 전날밤 나와 단 둘이 소주 여러병 먹고 노래방에서 어깨동무까지 했던 4년차 치프 선생님이 내게 한 질문이었다.


' 글쎄요 .. 영적인 체험 같은걸 데일리로(매일) 한다면 믿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도 그런 경험을 해보기는 했던지라 .. '


' 아니 그건 당연히 브레인에서 ~%%×+=해서 *&^>&한거고. (1년차 수준의 지식으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함) '


' 아 .. 근데 그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 '

.

.

.


사망선고는 1년차 레지던트의 일이다. 종종 1년차 대신 2년차가 할 때도 있는데 그건 1년차가 병원에 없을 때 뿐이다. 그래서 우리 과 환자 사망선언의 대부분은 내 몫이다. 저 세상으로 마중나가는 역할이다.


우리과는 대부분 환자가 곧 사망하리란 것을 몇시간 전에 미리 안다. 그래서 DNR 동의서도 미리 받아놓는다. Do Not Resuscitate. 심폐소생술 금지.


DNR. 바이탈이 흔들리는, 즉 생명줄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이 생겨도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죽음의 순간을 모면해봤자 적극적인 치료가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만 늘린다는 판단에서다. 환자의 심장이 정지하는 상황이 오면, 그 때가 되어야 담당의가 사망의 확인과 사망선고를 위해 환자에게로 간다.


지난주 일요일 저녁 6시에 출근해서 인계를 받았다. 윗년차 선생님이 환자에 대해서 쭉 얘기해준다. 


'A환자는 약은 이러이런걸 쓰고 있는데 위급한 상태가 될 수 있으니까 신경 많이 써야하고'

'B환자는 곧 가실것 같아서 보호자 병원에 오시라 해놨고, 아마 새벽쯤 가실거 같은데 사망선고만 하면 돼.'


B환자는 내가 며칠전 중환자실에서 보호자들에게 설명했던 환자다. 가망이 없다고 했던. 더이상 환자분 힘들게 하지 말자고. 가망이 없다는 설명에 배우자분께서는 남편이 고향이 그리울거라며 집이 대전이니 숨이 붙어있는 동안이라도 고향인 대전으로 전원가면 안 되냐고 질문했었다. 나는 딱 잘라 안된다고 대답했다. 이송하면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심장이 멈출 것이 분명하기에.


미안했던 기억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던 환자기도 했다. 설명할 때 말실수를 했었다. 부적절한 설명이었다. 상태가 워낙 위중하고 얼굴이 퉁퉁부어 엉망이라 60대 초반 남성을 80대 노인으로 순간 착각했었다.


80대 노인 환자의 사망은 부담이 덜하기에 한 실수였다. 고령의 환자들은 보통 보호자들도 어느정도 준비가 된 상태라 부담없이 환자 상태를 보호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상세하게 설명했었다. 그런데 왠걸, 손녀라고 생각했던 20대, 어린 여자 보호자가 이상할정도로 많이 울었다. 특히 가망 없다는 말을 할 때마다 소리를 내며 펑펑 우는 것이다. 두세번도 아니고 여러번을 계속해서 가망없다는 말을 할 때마다. 이상했다. 80대 할아버지가 가망이 없다는 말에 이정도로 우는 손녀는 내 경험상 없다.


뭔가 이상해서 관계가 어떻게 되냐고 여쭤보니 손녀가 아니라 딸이란다. 아, 실수했다. 딸에게 아버지가 가망이 없다고 말해버렸다. 이렇게 잔인한 설명을 하다니. 그것도 여러차례. 잠을 못 자니까 이런 실수를 하는구나.. 즉시 설명을 중단하고 50대 배우자와 형제들만 따로 불러서 다시 설명했다. 딸 앞에서 너무 자세히 설명한 것에 대해 정중히 사과부터하고 다시 아주 자세하게.


임종 직전에는 항상 그렇게 하듯 정말 상세하게 설명했다. 모든 질문에 하나하나 빠짐없이 전부 대답했다. 예를 들면, 뇌출혈이 발생하고 바로 병원에 왔으면 살 수 있었는지. (병원에 올 때까지 몇시간이 지체되었던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 출혈량이 너무 많아서 출혈이 발생한 그 즉시 가망은 없었다. 등등 .. 


치료를 위해서는 전혀 중요치 않으나 (의사들은 치료말고는 관심이 없으니까) 보호자들이 중요하게 설명하는 것까지 자세히 설명하였다. 보호자들이 죄책감을 많이 느끼는거 같아 환자에게 미안해할 필요가 전혀 없음까지 여러차례 설명했다. 설명 끝에 그들은 고개숙여 자세한 설명에 감사하다고 했다.


생각나는 기억이 많고 신경도 많이 쓰이던 그 환자다. 금방 갈것 같던 환자의 활력수치가 어느정도 버틴다 싶었지만 오래 지나지 않은 새벽 3시, 예상대로 사망했다는 연락이 온다. 한새벽 잠깐 누워쉬던 중이던 터라 힘겹게 몸을 일으켜 중환자실로 간다. 담당간호사에게 보호자들을 모두 불러달라 말하고, 오늘이 몇월 며칠인지, 시간은 몇시 몇분인지까지 확인한다. 실수하면 안 되니 소리내어 읽어본다. 2018년 7월 몇시 몇분 ㅇㅇㅇ환자분 ... 그러던 사이 보호자분들은 10명 넘는 가족들이 중환자실에 들어와 환자를 에워싼다. 맥을 짚던 손을 내려놓고 헛기침을 하자 모두가 나를 쳐다본다.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친 나는 차분히 묻는다. '이제 사망선고를 해도 괜찮을까요. 준비는 되셨을까요.'


'네' 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들 말없이 긴장한채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나도 다른 말없이 바로 사망선고를 한다. 2018년 7월 몇일 몇시 몇분 ..


'사망진단서는 빨리 작성 해드리겠습니다.' 사망선고를 마치고 진단서를 작성한뒤 중환자실에서 걸어나온다. 조용한 흐느낌의 속에서 한 명의 보호자가 따라나와 내게 묻는다. 망자의 형제분 같다.


'환자분이 실제로 사망은 15분 전에 한거 같은데 사망시간이 맞는건가요?'.

'법적인 사망시간은 제가 사망선고한 시간이 기준입니다'


처음이니까 모를 수도 있겠지 .. 

(사망시간은, 2018년도 의사협회 사례집에 따르면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결정하도록 되어있다)

이어서 중년의 여자분이 빠른 걸음으로 따라온다. 저번에 설명드렸던 배우자 분이다. 


'선생님 저 설명 들었던 ㅇㅇㅇ환자 배우자인데요 ..'


말씀 안 해도 알고 있다. 배우자분을 모를리가. 


'아 예 고생 많으셨습니다. 많이 힘드셨지요 ..'

'예 저번에 설명 자세히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번 느끼는거지만 사실 내가 환자에게 해준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이렇게 고맙다고 하는 분들이 많으시다. 나 덕분에 죽을 환자가 산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고마워들 하시는걸까 .. 해드린건 없었고 이제 해드릴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래도 위로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말을 덧붙인다.


'ㅇㅇㅇ님께서도 보호자분께 너무 감사해하실겁니다. 대전에서 이렇게 멀리까지 오셔서 너무 고생해주셨고요. 한두번도 아닌데 이렇게 새벽까지 병원으로 나오시는게 아무리 그래도 쉬운일은 아니니깐요. 배우자분께서 정말 고마우실겁니다. 아마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되시면 너무 고마우셨다고 웃어주실거예요'


내 얘기를 듣자 환자분을 다음에 다시 만나는 장면이 상상되신건지, 아니면 고인의 살아 생전 웃는 모습이 떠오르신건지 배우자분의 눈 주변이 빨개지셨다. 그리고 감사하다 하시며 여러차례 허리숙여 인사를 하셨다. 나도 송구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여러번 숙였다.


중환자실을 나와 엘레베이터를 타기 전에 문득 의문이 든다. 배우자분은 결국 내게 사후세계를 약속받은 것이다. 죽음 이후에 배우자를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내게 사후세계를 약속받아 마음의 위안을 받은 분이, 만약 사후세계가 없다면 충격이 얼마나 클까? 나도 부모님과 이별을 했는데 사후세계가 없다고 상상하면 소름이 돋는데. 내게 다음 세상에서의 재회를 약속받은 분께, 누군가가 사후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분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보호자분이 고마워하셔서 잘 위로드린거 같긴 한데. 하지만 사후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한건 아닐까. 배우자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한 위로였는데. 안 하는게 나은 위로였으려나 ..


난 솔직히 사후세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종교가 있지만 아버지처럼 독실하지는 않은거 같고 확신도 없는거 같다. 그래도 종교가 뭐냐는 질문에 무교라고 대답한적은 .. 없다. 종교란건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이겨낼 수 있게 하기 위해 절대로 사라질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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