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은 때로 재미있는 순간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습니다
이 책의 처음 제목은 '우연히, 빈'이었습니다.
비엔나에 관한 글들을 쓰게 된 건,
우연에 우연이 겹쳐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죠.
첫 번째 우연,
처음 교환학생을 가고 싶었던 곳은 비엔나가 아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었습니다.
하지만 암스테르담은 교환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 경쟁이 치열했고,
성적순에서 떨어진 저는 아무렇게나 2순위로 골랐던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가게 되었어요.
'놀기 좋다'기 보다는 '조용하다'는 평을 듣는, 교환학생지로 그리 인기 많은 도시는 아니었죠.
두 번째 우연,
하필이면 2020년 9월, 유럽에 코로나가 한참 심하던 시기였습니다.
같은 학교로 파견된 한국 학생 중 저를 빼고 모두가 교환학기를 취소했고,
졸지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유럽에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외딴섬처럼 뚝 떨어졌어요.
혼자 떠나야 하는 16시간짜리 비행을 앞두고 공항에서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최악의 교환학기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식당, 카페, 박물관 모든 곳이 락다운(Lock-down)에 들어갔고,
국경이 막혀 근처 유럽 도시들의 여행도 불가능했죠.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동안 락다운이 풀리면 하루를 빼곡 채워서 돌아다니고, 파티나 모임이 없는 대신 기숙사 방에서 혼자 비엔나를 기록했습니다. 다시 락다운이 시작돼 실내 출입이 안되면 트램, 길거리 음식, 러닝에 대해 글을 썼죠. 해외여행이 안되니 가이드북에도 나오지 않는 오스트리아 도시들을 여행했습니다.
아마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면 재미있는 것 투성이인 유럽에서 시간을 들여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비엔나의 독일어 이름은 '빈(Wien)'입니다.
독일어를 쓰는 나라이니, 원래 이름인 '빈'으로 불러주는 게 더 맞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현지인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를 하다 보니 '비엔나(Vienna)'라는 영어식 이름에 익숙해졌고, 무엇보다 이 편지를 받는 분들에겐 '비엔나'가 더 친근할 것 같습니다. '우연히, 비엔나'는 왠지 어감이 맘에 들지 않아 지금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직장인이 되었지만, 비엔나의 기록들을 다시금 톺아보면 마음이 방방 뜁니다.
남들에겐 흔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저에게는 꽤 신기한 우연들이거든요.
여러분이 한국 어딘가의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 든 것도, 어쩌면 꽤 신기한 우연이겠죠.
우연은 때로 재미있는 순간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습니다. 이 편지를 다 읽고 나면 여러분의 우연에 대해서도 들려주세요. 서울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