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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행성 Nov 30. 2020

여행답지 않은 여행을 위하여 - 오버트라운

여행지가 아닌 곳을 여행해보고 싶었습니다


오버트라운에는 작은 자전거 가게가 하나 있습니다.


여행지가 아닌 곳을 여행하고 싶은 적이 있나요. 가장 여행답지 않은 여행을 계획해볼까요. 일상에서 벗어나 작은 일상을 살아보러 갈까요. 준비된 여행이 모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 이름 모르는 마을로 향하는 버스표를 즉석에서 끊어봅니다. 비가 쏟아져 날씨는 최악이더라도, 아무런 준비도 예상도 없더라도 일단 출발해볼까요. 


발 닿는 대로 아무렇게나 걸어볼까요. 철길이 잘 보이는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검색해보지 않은 식당을 맛집이라 믿고 들어가 봐요. 메뉴판의 글자는 못 읽어도 왠지 맛보고 싶은 음식들을 잘 골라볼까요. 동네 사람들 모두가 알고 지내는 작은 마을 오버트라운에서, 오늘만큼은 유일한 이방인이 되어 가로등 없는 길을 걸어볼까요. 새로 이사 온 동네 주민인 척을 하며 인사를 건네볼 수도 있겠어요.



오버트라운에는 작은 자전거 가게가 하나 있습니다.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개면 작은 가게에서 자전거를 빌려요. 기차도, 자동차도 아닌 꼭 자전거를 타고 옆 마을로 또 다른 여행을 떠나볼까요. 텃밭에 물을 주고 계시던 아주머니가 할슈타트까지 가는 에움길을 알려주면, 반짝이는 호수를 오른편에 두고 가을 오후의 해를 왼편에 두고 달려볼까요.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차창 너머만 쳐다보지 않아도 되잖아요. 온도, 날씨, 바람, 공기, 풀 냄새, 비포장도로의 질감, 돌, 터널, 언덕, 소음, 소리가 있는 풍경 안에 들어가 구석구석 스쳐봐요. 쉬다가, 달리다가, 지치지 않을 만큼만 마음껏.


그러다 할슈타트에 도착하면 잠시 앉아서 쉬다 갈까요. 지난번 왔을 때 못 봤던 것들만 눈에 담아 갈까요. 지붕의 무늬나, 물가의 돌멩이나, 나무의 색깔 같은 것들. 여행하러 올 땐 잘 보지 못하는 것들을. 


떠날 시간이 되면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면 돼요. 왔던 길 그대로, 이번엔 호수를 왼편에 두고서요. 살짝 노을 진 하늘의 색이 아까와는 다르니 다른 길을 두 번 달린 셈 칠까요.



오버트라운에는 작은 자전거 가게가 하나 있습니다.


다 살아도 다 가보지 못할 넓은 세상에서 내가 아는 자전거 가게가 하나 더 생겼다는 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요. 


여행지가 아닌 곳을 여행하고 싶었습니다만, 이제 보니 여행지가 아닌 곳은 없었던 것 같아요. 철길이 있던 작은 마을 오버트라운도, 트램이 있는 느린 도시 비엔나도, 지하철이 있는 익숙한 도시 서울도. 작은 일상에서 벗어나 일상을 살아보러 돌아갈까요.


20.10.3 Obertraun

오버트라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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