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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행성 Nov 03. 2020

혼자 여행한다는 것의 의미 - 할슈타트

혼자라는 것의 장점은 대체 뭔가요?


할슈타트를 처음 만났을 때 동화 속 한 장면을 상상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영화 <겨울왕국>의 배경으로 유명하지만, 왜 이제서야 이 마을을 동화로 만들 생각을 했는지 유쾌한 의문이 들 정도로 낭만적이고 아기자기한 마을입니다.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야만 마을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어릴 적 상상했던 동심이 현실로 펼쳐지는 듯한 신비함도 더해집니다.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인 이 곳은, 한두 시간이면 전부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으면서도 걸음걸음마다 색다른 이야기를 조금씩 품고 있을 듯하네요. 9월의 끝에서, 저는 이곳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습니다.



친구들과 혼자 여행하는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면, 무조건 함께 여행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쪽이었습니다. 혼자인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혼자 여행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에요. 여행을 하면서 본 것과 느낀 것에 대해 누군가와 바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혼자 간직하는 것보다 익숙했죠. 그래서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너무 심심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낯선 나라 유럽에서 처음으로 떠난 여행이 '혼자 여행'이라니. 


영화 <비포 선라이즈>처럼 기차에서 운명적으로 동행을 만나는 상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현실이 영화와 다르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처음 가보는 비엔나 중앙역에서 탑승 플랫폼을 몰라 기차를 놓칠 뻔하고, 도난이 심한 유럽 기차 안에서 잠깐 화장실을 갈 때 캐리어를 봐줄 사람도 없어 혼자라는 게 서러워지기도 했죠. 혼자라는 것의 장점은 대체 뭔가요? 있기는 한 걸까요? 


하지만 한 번 혼자 여행하는 것의 재미를 발견하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매번 혼자서만 여행하고 싶어질 정도로 '혼자 여행'의 매력은 대단하다고 합니다. 대부분은 스케줄을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좋다고 말해요. 하지만 제가 할슈타트에서 느낀 '혼자 여행'의 의미는 조금 달랐습니다.



할슈타트에서 저는 '브로이가스트호프'라는 작고 오래된 숙소에서 머물렀습니다. '가스트호프(Gasthof)'는 오스트리아의 오래된 호텔을 부르는 이름이라고 하는데요. 무려 15세기 건물이었죠. 심지어 영어로 말해야 했기에 처음 체크인을 할 때는 살짝 떨렸지만, '당신을 위해 멋진 방을 준비했어요'라고 말하며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주인 아주머니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오래된 호텔답게 아날로그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묵직한 열쇠를 건네받을 때, 열쇠가 걸려있던 칠판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동행이 있었다면 서로 다 짐이 무겁다 보니 얼른 방으로 올라가 가방을 내려놓자고 했겠지만, 지금은 나뿐이니 얼마든지 칠판을 살펴봐도 될 것 같았습니다. 궁금한 시선을 느꼈는지 주인 아주머니께서 푸근하게 웃으며, 백여 년 전 할슈타트의 일꾼들이 이곳에서 맥주를 마시고 외상을 할 때 자신의 이름을 적었던 칠판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예약 때문에 칠판에 적힌 제 이름이, 마치 역사를 거슬러 쓰인 것처럼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잠시나마 할슈타트의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마을을 돌아다니다 길거리에서 사 먹었던 슈크림빵도 기억에 남아요. 아마도 맛 때문이 아니라 주인 아저씨 덕분인 것 같아요. 한국인들에게 꽤 유명해서 한국어 간판까지 있는 가게 사진을 멀리서 쭈뼛쭈뼛 찍고 있을 때, 어떻게 알았는지 포즈를 잡듯 함박미소를 짓던 아저씨 덕분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평소 같으면 말을 걸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텐데 왠지 모르게 대화를 시도하고 싶어졌습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요즘 관광객이 없어 장사가 잘 안된다며 금세 아쉬운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위로가 될 말은 찾지 못해 대신 '한국에서 이 빵이 진짜 유명해요!'라고 말씀드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좋아하시던 아저씨의 말투가 여전히 기억납니다. 


그 이후에도 할슈타트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가게 앞을 수없이 지나쳤지만, 아쉽게도 다른 직원분이 근무하고 계셔서 아저씨를 다시 볼 수는 없었어요. 만약에 다시 만나게 되었더라면, 처음에 아저씨가 그랬듯 나도 능청스럽게 웃으며 슈크림빵을 하나 더 샀을 것 같습니다.



할슈타트는 저녁 7시만 되면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습니다. 가게들의 불마저 하나 둘 꺼지면, 그제서야 할슈타트가 가로등도 드문 시골길이라는 사실이 실감납니다. 알프스 산속에 있는 9월의 할슈타트는 꽤 추워서 몸을 녹일 커피 한 잔이 필요했고,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선착장 근처 호텔 카페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혼자 앉아 멜랑지 한잔을 시키자 직원분께서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대화의 시작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분은 관광객이 드문 시기에 나타난 외국인 여행객이 반가워서 그리고 저는 혼자 여행의 끝에 말을 걸어준 누군가가 반가워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던 것 같아요. 아마도 나는 비엔나에 산다, 교환학생이다, 경영학을 배운다 등의 간단하고 뻔한 정보들이었겠지만, 낯선 공간에서 낯선 누군가와 낯선 언어로 대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웠습니다.


숙소에 누워서 첫 혼자 여행을 마무리해봅니다. 고요한 밤호수 옆에 누워있다는 것이 보지 않아도 느껴질 정도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할슈타트의 밤입니다. 침대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도 온전히 나의 것인 침묵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천천히 생각해봅니다. 모든 처음이 그렇듯 쉽지만은 않았던 게 당연하다고요. 그리고 이 작은 마을 할슈타트를 혼자 여행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고요. 


동행이 있었다면 그 사람과 나눈 큼직하고 연속적인 대화들이 기억에 남았을 테고, 물론 그것 역시 좋지만요. 혼자 발길 닿는 대로 둘러보며 여러 사람들과 짧고 낯선 대화들을 나눴기에, 할슈타트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말로 오롯이 채워져 기억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처음 알았습니다. 나에게 혼자 여행한다는 것의 의미는, 여행하는 동안 내 옆에 더 많은 사람이 잠시 머물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비워둔다는 것임을요.


교환학생도 어떻게 보면 긴 여행의 일종이겠죠. 돌이켜보면, 같은 학교에서 오스트리아로 함께 파견된 학생이 아무도 없어 답답했던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더 열린 마음으로 이곳의 많은 사람들을 알아가려고 했고, 고마운 사람들도 만날 수 있게 된 거라고 생각해요. 6개월 간의 길고 긴 오스트리아 여행을 하는 동안,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말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비엔나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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