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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빛 Mar 01. 2023

8.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

8.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


“헛둘, 헛둘!”

이나의 구령에 맞춰 달리기를 하는 아이들의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구령에 맞춰서 운동장 세 바퀴를 돌고 나면 일단 름이는 기절 직전까지 갔다. 숨을 어찌나 몰아쉬는지 옆에서 보고 있으면 더럭 겁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도 10분 정도 쉬고 나면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나 연습을 하겠다고 어기적거리며 다가왔다. 그렇게 안 봤는데 악바리라며 서하도 혀를 내둘렀다. 한자리에 앉아 그림만 그리던 녀석이 맞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오, 그래도 오늘은 름이 잘 버티네? 일주일 달렸다고 벌써 체력이 좀 붙었나 봐?”

시후가 신기해하며 름이의 등을 두드렸다. 거칠어진 숨을 다듬으며 심호흡을 하던 름이가 보시시 웃었다.

“처음엔 근육통 때문에 아무것도 못 했는데 요샌 그림도 더 잘 그려져. 몸이 좀 적응을 했나 봐.”

름이가 자기도 놀랍다는 듯 대꾸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태권도를 열심히 해 본 적 없는 름이었는데, 태권체조를 연습하면서부터는 부쩍 태도가 달라졌다. 늘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 변하지 않았지만, 전처럼 주눅 든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다는 당당함 같은 게 느껴졌다. 

“우리 름이가 좀, 뭐든 잘하는 편이지.”

서하가 옆에서 괜스레 자랑을 했다. 름이의 얼굴이 빨개지자 진아 언니가 딸기 우유를 마시다 말고 배를 잡고 웃었다. 

“어휴, 다들 딴짓 그만하고 얼른 모여. 학원 가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맞춰 봐야지. 시후야, 지후는 계속 연습하고 있는 거 맞지?”

이래저래 걱정이 되는지 이나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아침 연습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지후는 아직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당장 다음 주면 우승팀을 만나러 가야 했다. 보호자 허락도 받았고 버스표도 끊어 놨고 숙소도 잡아 놨는데, 막상 지후가 올지 안 올지 알 수가 없었다. 

“연습은 하고 있지. 근데 아, 모르겠다. 관장님이 세찬이를 어지간히 쪼나 봐. 이나 너도 이번엔 겨루기 출전 안 한다고 하고. 메달 딸 수 있는 애들이 별로 없잖아.”

생각만 해도 머릿골이 아픈지, 시후가 관자놀이 부근을 문지르며 말했다. 답답하기는 다들 마찬가지였다. 절뚝거리며 걸어가던 세찬이의 뒷모습이 떠올라 이나는 특히 더 마음이 갑갑했다. 

“에효. 모르겠다. 별수 있냐.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자, 다들 모여!”

다섯 명은 조회대에 서서 동작 연습을 시작했다.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음악이 시작되면 팔을 양옆으로 뻗으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처음엔 막기 동작부터 들어갔다. 빨라지는 박자에 맞춰 비틀어막기, 헤쳐막기 동작들을 연이어 구성했다. 

비틀어막기는 진행되고 있는 발의 반대 손으로 몸을 비틀어 줘야 하기 때문에 반동이 좀 있었다.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 때는 왼팔이 앞으로 나가야 했고, 왼발을 앞으로 내밀 때는 오른팔이 앞으로 나가야 했다. 엇갈려서 비틀기 때문에 비트에 딱딱 맞아떨어지면 굉장히 깔끔해 보였다. 대신 손발이 정확하게 맞지 않으면 동작이 무너졌다. 

비틀어막기에도 종류가 많이 있었는데, 팔목을 사용하는 막기 동작은 넣지 않고 손날등 비틀어 바깥막기와 손날 비틀어 옆막기를 넣기로 했다. 양팔을 서로 엇걸어서 엑스 자 형으로 방어하는 헤쳐막기 기술에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제일 기본이 되는 몸통 헤쳐막기, 손날 아래 헤쳐막기, 손날등 몸통 헤쳐막기까지 다양했다. 손날 비틀어막기에서 헤쳐막기로 넘어갈 때 그대로 손날을 사용할지 말지 의견이 갈렸다. 

“손날 아래도 괜찮긴 한데 앞에서 보면 산틀헤쳐막기가 훨씬 나은 것 같아. 주춤서기 자세 하고 그대로 팔목 앞에서 교차! 그렇지.”

이나는 맨 앞에 서서 동작 구성이 조화로운지 살펴보고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짚어 줬다. 수정할 부분이 생기면 름이가 재빨리 수첩을 꺼내 메모를 했다. 그리고 나중에 간단한 스케치로 재구성된 부분들을 그려 줬다. 

 “막을 때 절도 있고 정확하게 막아 줘야 해. 안 그러면 엄청 맥없어 보여. 품새 시합할 때 긴장감 떠올려 보면서 하자.”

이나가 약간 아래로 처진 름이의 손날을 가볍게 위로 올려 주며 말을 이었다. 막기 동작의 하이라이트 부분은 금강막기였다. 상대방이 얼굴과 몸통을 동시에 공격해 올 때 쓰는 기술이었는데, 한쪽 손은 얼굴을 올려 막고 다른 손은 내려 막으며 방어하는 기술이었다. 이때 “태! 권!” 하고 기합 소리를 한 번 내기로 했다. 그걸 신호 삼아 치기 동작으로 넘어갔다. 

서하가 유독 어려워하는 학다리서기를 하며 메주먹치기를 보여 주고, 앞꼬아서기를 한 뒤 표적치기를 연이어 보여 줬다. 메주먹은 주먹을 쥐었을 때 새끼손가락과 손목까지를 말하는데, 보통 위에서 아래로 내려칠 때 사용되는 기술이었다. 메주먹치기를 하고 나서는 옆으로 이동하며 팔굽표적치기를 했다. 한 손으로 표적을 만들고 팔꿈치로 그 표적을 치는 동작이었다. 꼿꼿하게 중심을 잡으면서 팔 동작도 연달아 해야 했기 때문에 최대한 집중해야 했다. 특히 리듬이 점점 빨라지므로 한 동작이라도 놓치면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다음은 지르기 차례였다. 엇박자에 맞춰 몸통지르기와 인중지르기를 번갈아 하며 현란해 보이도록 신경 썼다. 클라이맥스는 역시 발차기 부분이었다. 앞차기와 앞돌려차기의 중간 지점을 반원을 그리며 차는 반달차기를 하고 그대로 연이어 뛰어 높이차기를 보여 줬다. 댄스 음악이라 쉬는 부분이 없기도 했고 2분 안에 모든 걸 보여 줘야 하기 때문에 동작들은 휘몰아치듯 이어졌다. 뒤후려차기와 찍어차기, 앞후려차기, 옆차기, 몸 돌려차기까지. 태권도의 대부분의 동작들을 넣어 끊어지는 곳이 없도록 최대한 긴장감 있게 구성을 짰다. 

“름아, 손끝에까지 힘 딱 줘. 특히 손날치기 부분! 서하야 너 반달차기할 때 너무 빨리 원 그리지 말고, 좀 천천히. 시후 너는 돌려차기 부분에서 자꾸 박자 놓치더라. 템포 맞춰서 다시 한번 해 보자.”

이나가 앞에 서서 다른 애들의 동작들을 살펴보며 일일이 교정을 해 줬다. 진아 언니도 자기 동작을 하는 와중에 옆을 살피며 균형을 맞춰 나갔다. 그렇게 다섯 번쯤 연습하고 나면 다들 기진맥진했다. 시간으로 따지면 한 회당 ‘고작’ 2분 정도인데, 그 2분에 온 힘을 쏟다 보니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가만히 서 있어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연습이 끝나고 조회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찔했다. 뜨거운 8월의 햇빛이 사방으로 쏟아졌고 운동장 가운데서는 아지랑이가 일렁였다. 땀으로 범벅이 되어 몸에선 시큼한 냄새가 났고 근육통으로 온몸이 욱신거렸다. 그래도 불평하는 애들은 없었다. 

연습이 끝나고 그늘진 조회대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으면 간간이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을 타고 아직 채 지지 않은 등나무 꽃향기가 아득하게 번지면 다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천천히 내쉬곤 했다. 그러고 있으면 바닥까지 꺼져 드는 것 같던 몸에 찬찬히 기운이 돌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벌떡 일어나 잘 안 되는 동작에 대해 얘기하면 다른 한 명이 또 벌떡 일어나 맞지 않았던 동작에 대해 얘기했다. 태권체조는 누군가가 돋보여야 하는 경기가 아니었다. 한 방향으로 감기며 자라는 등나무처럼 모두가 오롯이 하나가 되어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이 손끝을 뻗고 같이 발을 디뎌야 했다. 다들 그 감각을 익혀 나가고 있었다. 

“오늘 찍은 것도 지후한테 보낸다. 아, 딱 이 자리에 지후 놈이 있어야 완벽해지는데. 다섯 명은 너무 허전하다고.”

서하가 투덜거리며 삼각대를 정리했다. 서하는 핸드폰으로 찍은 연습 영상을 매일 지후에게 보냈다. 다섯 명끼리는 이제 거의 틀리는 동작 없이 합이 맞아 가고 있었지만, 지후가 서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는 게 영 불안했다. 혼자 연습하고 있다고 해도 같이 서서 맞춰 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안 되겠어. 이따 도장에서 결판을 내야지. 이도 저도 아니고 이게 뭐야. 똑바로 대답을 해 줘야 우리도 대책을 세우지. 한 명 빠지면 그만큼 비어 보이지 않게 채워야 하는데.”

진아 언니도 더는 못 기다리겠다는 듯 팔짱을 끼고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이온 음료 한 캔을 그 자리에서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이따 보자!” 하고 가 버렸다. 팀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게 싫은 모양이었다. 진아 언니가 먼저 자리를 뜨자 남은 애들도 슬슬 자기 짐을 챙겼다. 

“아우, 언니가 팀 주장을 맡아야 하는데. 부득부득 그건 싫다고 우긴다니까.”

어려운 일을 진아 언니에게 떠맡긴 것 같아 무거운 기분이 드는지 이나가 우는소리를 했다.

“네가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그런 거지. 각자 역할이 있는 거야. 맏언니가 나서서 힘써 줘야 할 때도 있고 그런 거지.”

서하가 이나의 부담을 덜어 주려고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그러다 갑자기 등을 수그리며 배를 문질렀다. 

“아, 근데 아까부터 왜 이렇게 배가 은근히 아프지? 오늘 왠지 도장 빠지고 싶은데.”

“많이 아파? 약 사다 줄까?”

두어 걸음 떨어져 따라오고 있던 름이가 놀란 눈을 하고 다가왔다. 서하가 배시시 웃었다. 

“그 정돈 아니야. 그냥 좀 찝찝하게 아팠다 안 아팠다 그래.”

털털한 서하는 금세 괜찮다며 웃어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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