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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빛 Mar 02. 2023

9. 관장님의 고함

9. 관장님의 고함


다른 애들이 학원에 가 있는 동안 이나는 남은 연습을 마저 했다. 다 같이 맞춰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한 번 더 확인하고 매끄럽지 않은 부분들을 다듬었다. 그리고 3시가 되어서야 태권도장으로 향했다. 원래는 시합 때가 되면 종일 태권도장에 붙어 있었다. 아침 일찍 나와 저녁 늦게까지 연습을 해도 눈치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겨루기와 품새 두 경기 다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 터라 마음대로 도장을 이용하기가 좀 그랬다. 미리 가 있는 것도 눈치가 보여 시간을 살피고 살피다 딱 3시 반 3부 시작 시간에 맞춰 갔다. 보통 3부에는 관장님이 없었다. 초등부 위주로 되어 있어 사범님 혼자 충분히 끌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관장님이 나와 있었다. 나와 있기만 한 게 아니라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문밖까지 들려왔다. 이나는 밖에서 주춤거리다 슬며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시합 나갈 새끼가 몸 관리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징징거려?”

관장님의 고함이 도장 안을 울렸다. 관장님이 손가락 끝으로 세찬이의 이마를 몇 번씩 밀었다. 그때마다 세찬이의 몸이 휘청거렸다. 도장 안의 아이들 모두 바짝 얼어붙었다. 사범님이 있었다면 나서서 말렸을 텐데 관장님 대신 차량 운행을 나간 건지 보이지 않았다. 

“이따위로 해서 뭘 할래?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관장님의 목소리가 점점 커질수록 세찬이의 어깨는 점점 움츠러들었다. 아마 허리 다친 걸 들킨 모양이었다. 온통 시합에 정신이 쏠려 있는 관장님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들 모여 있는 데서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이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다른 애들이 모여 있는 데로 가서 섰다. 

“언제부터 저러고 있었어?”

“한 10분 됐나? 아까 정강이도 차였어. 다른 애들 보라고 일부러 이 시간에 저러시는 것 같아.”

서하는 부르르 몸을 떨며 질색했다. 관장님은 시합 때가 가까워질수록 세찬이를 사정없이 잡았다. 다른 애들을 일일이 혼낼 순 없으니 대표로 자기 아들을 혼내며 경고를 보내는 것이었다. 너희들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이렇게 될 거라고. 다른 때는 그래도 1절만 하고 끝냈는데, 오늘은 그럴 생각이 없는지 계속 언성이 높아졌다.

“간당간당 은메달이나 따는 놈이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녀? 머리가 있으면 뭐 해. 생각이 없는데. 한 놈은 밀어준다고 해도 이상한 데 빠져서 어른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고, 한 놈은 죽어라 노력해도 모자랄 판에 부상이나 키우고 앉았고. 잘 돌아간다. 잘 돌아가!”

관장님이 항상 들고 다니던 나무 지시봉을 내던졌다. 지시봉은 세찬이의 머리 바로 옆을 지나 벽에 부딪히고 내동댕이쳐졌다. 조금만 비껴가서 맞았으면 이마가 그대로 찢어졌을지 몰랐다. 이나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만하시죠. 너무 심하신 거 아니에요?”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지시봉을 주워 들며 이나가 말했다. 딴딴하게 굳은 얼굴로 지시봉을 가져다주며 이나는 관장님을 똑바로 올려다봤다. 관장님의 눈썹이 매섭게 올라갔다. 

“낄 데 안 낄 데 구분!”

관장님이 지시봉을 받아들며 벽을 세 번 내리쳤다. 쾅, 쾅, 쾅. 벽이 울릴 때마다 아이들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하지만 이나는 눈 하나 끔뻑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해 보라는 듯 관장님 가까이로 바짝 붙었다.

“아무리 아이라도, 아무리 자기 아이라도! 그러시면 안 되죠.” 

이나가 또박또박 대꾸하자 세찬이가 둘 사이로 끼어들며 막아섰다. 

“네가 뭔 상관이야. 아버지, 신, 신경 쓰지 마세요. 전 괜찮아요.”

바짝 언 세찬이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관장님은 아까보다 더 굳은 얼굴로 호통을 쳤다. 

“관장님! 도장에선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랬지?”

다른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가늘게 떨리고 있는 세찬이의 어깨는 보이지도 않는지, 관장님은 엉뚱한 것으로 야단을 쳤다. 이나는 기가 막혔다. 막 따지고 싶었지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으니 오히려 말이 나오질 않았다. 잔뜩 주눅이 들어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는 세찬이를 보니 답답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세찬이 허리 다친 지 한참 됐어요. 왜 말 안 했냐고 다그치시기 전에 왜 말 못 했는지 생각해 봐 주시면 안 돼요? 그리고 어른이라고 다 옳은 건 아니라고 그랬어요. 누구든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고 그랬다고요!”

이나가 발끈해서 외치자 관장님이 비웃듯 “누가 그러든. 네 고모가?” 하고 되물었다. 이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고 대답하면 강 사범이 조카 잘 가르쳤다며 비아냥거릴 게 분명했다. 고모가 욕먹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네, 제가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애들 다 보는 데서 지금 뭐 하시는 거죠?”

나직하면서도 싸늘한 고모의 목소리가 들리자 이나가 움칠했다. 언제 돌아왔는지 고모가 관장님과 애들을 슥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다들 제자리로! 3부 시작 시간 넘었는데 뭐 하고 있어? 준비운동부터 하고들 있어. 관장님은 저 좀 보시죠.”

사범님과 관장님의 눈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누구도 먼저 물러서지 않았다. 더 냉랭해진 분위기에 다들 눈치만 살피다 꾸물꾸물 자기 자리를 찾아가 몸풀기 운동을 시작했다. 관장님이 먼저 “헛, 참.” 하고 상담실로 앞장서 걸어갔다. 문이 쾅, 세게 닫혔다. 

사범님은 손짓으로 이나에게 뒤를 부탁하고 따라 들어갔다. 도장 안이 조용해졌다. 누르락붉으락한 얼굴로 한자리에 서 있는 세찬이를 내버려 두고 이나는 나서서 분위기를 정리했다. 고학년과 저학년을 묶어 짝을 지어 주고 기본 동작 위주로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얘기가 길어지는지 관장님도 사범님도 상담실에서 나오질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세찬이가 나서서 관장님 흉내를 내며 깐족댔을 텐데 지금은 저 구석진 데 등을 기대고 서 있기만 했다. 이나는 진아 언니랑 같이 도장 안을 돌아다니며 애들이 딴짓을 못 하도록 살폈다. 그런데 서하의 안색이 아까부터 좋지 않았다. 배가 다시 아픈지 몸을 웅크리고 쭈그려 앉아 있었다. 

“괜찮아? 오늘 분위기도 별로고 그냥 집에 가서 쉬어.”

이나가 서하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그러다 멈칫했다.

“서하야, 너 도복에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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