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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빛 Jan 18. 2024

너만 그런 거 아니야

- 서랍 속 동화 3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또다. 또 눈을 피했다. 티 내지 않으려 애쓰는 게 티가 났다. 소라는 저 앞에서부터 딴 데만 쳐다보고 있었다. 소라 옆에 민서가 바싹 달라붙어 쉴 새 없이 재잘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화장실은 왜 하필 복도 한 가운데에 있어서. 나는 걸음을 빨리했다. 얼른 갔다 교실로 돌아가고 싶었다. 

5학년에 올라와 반이 바뀌자 소라는 내내 나를 피했다. 나는 1반, 소라는 6반이었다. 복도 끝에서 끝. 그 거리가 우리 둘 사이의 거리가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 해 본 적이 없었다. 처음엔 왜 그러냐고 쉬는 시간마다 찾아가 물어봤다. 소라네 반 종례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소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기가 뭘 어쨌다고 그러냐며 매번 얼버무렸다. 그리고는 작년까진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민서랑만 계속 붙어 다녔다. 이젠 나도 더는 소라를 찾아가지 않았다. 안 그래도 껄끄러운데 괜히 소라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볼 일을 보고 손을 씻었다. 하지만 손을 씻고 돌아서자마자 소라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

“잠깐만 기다려. 금방 나올게.”

민서가 쪼르르 들어가자 소라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문 옆에 서 있었다. 그냥 민서를 따라 온 모양이었다. 언제는 화장실 같이 가자고 하는 애들을 제일 이해할 수가 없다더니. 괜히 기분이 더 상했다. 빈정거리는 말이라도 쏘아붙일까 하다가 말았다. 이제 와서 그래봐야 뭐 하나 싶었다. 눈길도 주지 않고 나가려는데 소라가 “잠깐만.”하며 내 옷자락을 잡았다. 나는 삐딱한 표정으로 뭐냐는 듯 소라를 올려다봤다. 

“있잖아. 햄삐가…….”

소라가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움찔 하고 말았다. 소라가 뭔가 더 말을 꺼내려는 순간, 민서가 나왔다. 민서는 내 쪽을 힐끔 보더니 “가자.” 하고는 소라의 팔짱을 끼었다. 일부러 보란 듯이 하는 행동이었다. 작년까지 나랑 소라가 단짝이었다는 걸 민서도 뻔히 알고 있었다. 태가 나는 그 행동에 열이 확 올랐다.

잠깐 멈칫거리던 소라는 곧 순순히 민서를 따라 나갔다. 그 모습을 보자 왠지 목 안이 따끔거렸다. 뭔가를 조금이나마 기대했던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나는 뛰다시피 복도를 가로질러 교실로 향했다. 하지만 막상 교실 문 앞에 서자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어차피 교실에서도 혼자인 건 마찬가지였다. 잠깐 멍하니 서 있는 사이 수업 종이 울렸다. 누군가 내 어깨를 툭 밀치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센 힘으로 밀친 것도 아니었는데 너무 아팠다.

결국, 수업에 집중도 못 하고 엎드려만 있다가 집에 돌아왔다. 배 아프다는 핑계로 학원도 빠졌다. 사실 진짜 아프기도 했다. 복도에서 소라를 봤을 때부터 아랫배가 배배 꼬이는 것처럼 아팠다. 다시 괜찮아지긴 했지만. 

전에도 비슷한 증상으로 병원을 갔는데 신경성이라고 했다. 약을 먹을 땐 괜찮았지만 금방 다시 도졌다. 엄마는 일 때문에 늦는다며 많이 아프면 꼭 전화 하라고 몇 번이나 다짐을 받아냈다. 알았다고 걱정 말라고 대충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끊자마자 괜히 서러웠다. 나는 곧장 방으로 들어가 서랍을 뒤졌다. 씩씩거리면서 소라랑 같이 산 것들을 다 빼냈다. 우리를 닮은 것 같다고 깔깔거리며 샀던 원숭이 두 마리 머리핀, 돌아가면서 한 장씩 썼던 교환 일기장, 반짝이는 가짜 큐빅이 잔뜩 박혀 있는 플라스틱 우정 반지. 물건들은 여기저기서 나왔다. 2학년 때부터 사 모았던 거라 꽤 많았다. 까만 비닐봉지에 그것들을 몽땅 넣고 빙빙 돌려 묶어버렸다.

“나도 이제 너랑 친구 끝이야. 다신 아는 척 하나 봐라.”

혼잣말로 큰 소리로 화를 내 봐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뭔가 더 버릴게 없나 둘러보는데, 창가에 올려놓은 햄빵이 집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힘이 쭉 빠졌다. 

햄빵이는 작년에 교문 앞에 서 있는 트럭에서 산 햄스터였다. 소라가 한 마리, 내가 한 마리 골라 서로에게 선물했다. 우리는 햄스터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매일 정성껏 돌봐주기로 약속했다. 볼이 빠방하고 볼록한 햄스터가 햄빵이, 삐죽 줄무늬가 그려진 햄스터가 햄삐였다. 생명이 있는 동물을 함부로 사 오면 어떻게 하냐고 엄마에게 호되게 혼이 났지만 그땐 마냥 좋기만 했다. 뽈뽈 거리며 돌아다니는 것도, 먹이를 주면 하염없이 갉아먹고 있는 것도 너무 귀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 이 천 원 주고 산 햄스터보다 재밌는 장난감은 얼마든지 있었다. 처음엔 사료도 주고 물도 주고 잘 챙겼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게을러져 자꾸 햄빵이를 잊어버렸다. 소라랑 멀어지면서는 아예 쳐다보지 않은 날도 많았다. 막연히 ‘엄마가 챙겨주겠지’, 했다. 엄마도 일 다니느라 바쁜 걸 뻔히 알면서. 문득 소라가 햄삐 얘길 꺼내려 했던 게 떠올랐다. 무슨 말을 하려던 걸까. 왠지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쿵쾅거렸다. 어쩐지 불안했다. 언제 마지막으로 햄빵이를 봤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언젠가부터 엄마가 내 방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질색하던 게 떠올랐다. 청소 좀 하라고 자꾸 잔소리를 늘어놓아서 나는 알겠다고 대충 대답하고 방향제만 잔뜩 뿌려댔다. 나도 냄새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수시로 방향제를 뿌려대 크게 의식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면서 그 냄새가 너무 짙게 느껴졌다. 순간 구역질이 나면서 입 안이 바싹 말랐다. 손에 땀이 고였다. 

살금살금 햄빵이 쪽으로 다가갔다. 톡톡, 손톱 끝으로 집을 건드려봤다. 뽀르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슬쩍 집을 앞뒤로 흔들어 봤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차마 문을 열어볼 수가 없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손이 덜덜 떨렸다.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꺼내 소라 번호를 눌렀다. 긴 신호음이 갔다. 번쩍 정신이 들었지만 어차피 받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통화 종료를 누르려고 하는데, 소라가 전화를 받았다.

“어. 말 해.”

휴대폰 너머로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심한 목소리를 듣자 그때서야 아차 싶었다. 이렇게 쉽게 먼저 전화를 걸면 날 더 얕잡아 볼 것 같았다. 전에 소라네 반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게 생각나 더 구차한 기분이 들었다. 아, 진짜. 뭐 한다고 전화를 걸어서는. 나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잘못 걸었어. 끊는다.”

너무 민망해서 일방적으로 내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얼굴이 막 화끈거렸다.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침대로 가 버둥거렸다.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인을 보니 소라였다. 받을까 말까 망설였다. 바로 받으면 너무 없어 보일 것 같았다. 조금 뜸을 들였다가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전화를 받았다.

“어. 왜?”

일부러 퉁명스럽게 물었다. 소라는 잠시 말이 없었다. 아까 그렇게 지나치고 몇 달 만에 전화를 걸어서 말을 꺼내기가 쉽진 않을 거란 걸 알아 기다렸다.

“그게……. 햄삐가 죽었어.”

어느 정도 예감을 하고 있었는데도 그 말을 듣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눈길이 저절로 햄빵이 집 쪽으로 향했다.

“아침에 보니까 움직이질 않더라고. 엄마가 비닐봉투에 넣어서 버리라는데, 좀. 좀 그래서.”

소라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겁먹은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나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장난감처럼 사고 장난감처럼 데리고 있었는데, 막상 햄빵이가 이제 숨을 쉬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니 너무 너무 이상했다. 손바닥 위에서 뽈뽈뽈 기어 다니던 것, 빵빵한 볼에 씨앗을 욱여넣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것, 살짝 만져본 털이 무척이나 보드라웠던 것 같은 게 저절로 떠올랐다.

“실은 햄빵이도, 죽은 것 같아.”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고 싶었는데 울먹거리고 말았다. 전처럼 소라와 가까웠다면 아마 전화기를 붙들고 엉엉 울고 말았을 거다. 나는 햄빵이가 언제 죽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게 너무 미안했다.

“…… 같이 묻어줄까? 일단 호수 공원 놀이터 있는 데서 보자.”

소라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나는 주저하다가 결국 그러자고 했다. 도저히 혼자서는 햄빵이를 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우리는 예전에 같이 자주 놀았던 공원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했다. 집 여기저기를 뒤져 흰 손수건과 모종삽을 찾아냈다. 필요한 걸 가방에 챙기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 햄빵이 집을 챙겨 들었다. 가벼웠다. 그래서 발걸음이 더 무거워졌다.

최대한 걸음을 빨리 해 공원으로 향했다. 소라는 이미 먼저 도착 해 있었다. 품에 작은 상자 하나를 들고 있었다. 거기에 햄삐가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쭈뼛거리며 가까이 다가갔다.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러지 않으려 해도 자꾸 날 피하던 소라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쩐지 서로 눈치를 살피며 주춤거리게 됐다. 전에는 마주 보고만 있어도 할 말들이 넘쳐났는데 지금은 섣불리 입을 떼기도 어려웠다. 우리 사이의 거리감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우리는 놀이터에서 벗어나 우선 공원을 한 바퀴 천천히 빙 돌았다. 

“어디다 묻어줘야 할까? 음, 좋은 생각 있어?”

소라가 어색하게 물었다. 나는 턱을 쓸어내리며 고민을 하다 대답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거나 길 고양이들이 많이 다니는 데는 안 될 것 같고. 저 위로 좀만 더 올라가 보자.”

우리는 공원 뒷문 있는 쪽으로 향했다. 공원 뒤쪽으로 쭉 올라가면 오르막길이 나오는데, 그 오르막길은 뒷산으로 이어져 있었다. 경사가 심하지 않고 야트막한 산이었다. 평일이고 아직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주로 새벽이나 퇴근 무렵에 사람들이 몰리는 편이라 크게 눈치가 보이진 않아 다행이었다. 우리는 산책로를 따라 조금 오르다가 주위를 살피고는 갓길로 방향을 틀었다. 아무래도 산에다 묻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평소 같았으면 무서워서 엄두도 못 냈을 일인데, 햄삐 햄빵이를 생각하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래도 위험하지 않도록 산 깊숙이까지 들어가진 않았다. 

어렴풋이 산책로가 내려다보이는 길 어귀에서 우리는 멈췄다. 한참을 올려다봐야 하는 큰 나무들 사이에 잎이 다 떨어진 자그마한 나무 한 그루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우리는 그 밑에 햄삐와 햄빵이를 묻기로 했다. 소라가 먼저 쭈그리고 앉아 땅을 파기 시작했다. 나도 그 옆에 쪼그려 앉아 말없이 땅을 팠다. 흙이 얼어 잘 파지지 않았다. 힘을 줄 때마다 손목이 당기고 어깨까지 뻐근하게 당겨왔다. 하지만 힘들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 입김이 나올 만큼 추운데도 한참을 파다보니 땀까지 났다. 아무 말도 없이 땅만 파고 있으니 답답해 숨이 막혔다. 시간이 너무 더디게 흘렀다. 나는 억지로 입을 열었다.

“햄삐는, 네가 뺐어?”

“아니, 엄마가.”

짤막한 대화 끝에 다시 또 침묵이 흘렀다. 주위는 스산했다. 바람이 매서웠다. 소라의 코가 빨갰다. 내려다보니 내 손끝도 얼어 있었다.

“있잖아.”

“있잖아.”

우리는 동시에 말을 꺼냈다.

“네가 먼저 말해.”

“아냐. 네가 먼저 해.”

둘이서 번갈아 미루다 보니 뭔가 우습기도 하고 더 어색하기도 했다. 소라가 먼저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아까 학교에서 미안. 전에도, 미안.”

고개를 푹 숙이고 사과 하는 소라를 보니 기분이 묘했다. 화가 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쉽지 않았을 거란 걸 아는데도 그렇게 쉽나 싶었다.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대답 대신 묵묵히 땅을 더 깊이 팠다. 동그랗게 파놓은 자리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힐끗 옆을 보니 소라도 나만큼 땅을 파 놓았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햄빵이 집을 완전히 열었다. 너무 긴장해서인지 냄새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너무 마음이 아팠다. 차마 똑바로 볼 자신이 없어 눈을 피하며 내 주먹보다 훨씬 작은 햄빵이를 손수건으로 조심스럽게 감싸 들어올렸다. 그리고 구덩이에 천천히 내려놓았다. 소라는 상자채로 구덩이에 넣었다. 

“전에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이렇게 하는 것 같더라.”

소라는 흙을 한 줌 뜨더니 그 위로 흩뿌렸다. 그리고 톱밥과 사료들도 조금씩 같이 넣어주었다. 진짜로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어쩐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나도 따라 했다. 그러자 영영 햄빵이를 볼 수 없다는 게 실감이 났다. 일종의 의식을 치른 느낌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소라도 옆에서 훌쩍거렸다.

“미안해, 햄빵아. 미안.”

흙을 마저 덮으며 그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그런 말로 달라질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흙을 도닥여 작게 무덤을 만들고 눈물을 닦으면서 일어났다. 다리가 저릿저릿했다. 무릎이 후들거렸다. 내가 일어나자 소라도 따라 일어났다.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마주보고 섰다. 주위는 여전히 고요했다. 이 공간만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산책로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들이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귓가에서 웅웅 울렸다. 차가운 바람이 불 때마다 간간이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벌써 해가 지려고 하는지 잠깐 올려다 본 하늘은 잘 말린 낙엽 색깔처럼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어쩐지 지금이라면 소라가 어떤 물음에도 대답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머뭇거리다 소라에게 물었다.

“왜 계속 날 피했는지, 이번엔 말 해 줄 거야?”

소라는 바로 대답하진 않았다. 입을 꾹 다물고 두 손으로 깍지를 낀 채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나는 소라가 곤란할 때 짓는 표정을 알고 있었다. 곧 손톱을 잘근잘근 씹을 거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역시.

“……무서워서.”

소라는 엄지손톱을 깨물다가 약간 뒤로 물러서며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이 대답 역시 예상 그대로였다. 딱히 실망할 것도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아팠다. 가슴팍 한 가운데 옴폭 패인 데가 너무 아팠다. 실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거였다. 삼 년 동안 붙어 다녔는데 모를 수는 없었다. 다 짐작하고 있었으면서도 왜 소라에게 직접 이유를 듣고 싶었을까. 

“반에 아는 애는 민서밖에 없는데, 민서가 잘 삐지니까. 너랑 인사만 해도 절교하겠다고 자꾸 그러니까. ……혼자는 싫단 말이야. 무섭단 말이야.”

더듬더듬 말을 잇던 소라가 결국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울지 않았다. 대신 소라가 물러섰던 것보다 더 멀찍이 뒤로 물러섰다. 몇 걸음 물러선 것뿐인데 저물녘이라 산 그림자가 져 소라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야, 나도! 나도 무서웠거든? 혼자되는 건 다 무섭지. 너만 그런 거 아니거든?”

버럭 소리를 지르는데, 어쩔 수 없이 목이 메었다. 그 동안 변명이라도 듣고 싶었는데, 막상 들으니 더 견디기가 힘들었다.

낯선 애들 사이에서 멀뚱히 있는 건 나도 싫었다. 투명인간이 된 것 같은 그 기분은 끔찍했다. 그래도 쉬는 시간마다 6반까지 달려가 뒷문을 빠끔히 열고 들어갔을 때, 소라가 반겨줬다면 다 괜찮았을 것 같았다.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나는 속마음을 털어놓는 대신 텅 비어버린 햄빵이 집을 챙겨 들고 돌아섰다. 뭔가를 돌이키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커다랗고 캄캄한 구멍 하나가 몸 어딘가에 생겨버린 것 같았다. 나는 아까 걸었던 길을 되짚어 막 걸어갔다. 산책로로 다시 내려와서는 더 황급히 걸었다. 몇 번 넘어질 뻔 했지만 그때마다 다리에 힘을 줘 안간힘을 다해 버텼다. 뒤에서 소라가 따라오며 내 이름을 불렀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텅 비어버린 햄빵이 집은 걸을 때마다 내 다리에 부딪혔다. 그 때마다 꼬물거리는 햄스터들 사이에서 두 마리를 골라 살그머니 쥐어 보던 우리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 때 그 녀석들은 따뜻했는데. 평생 잘 돌봐주자고 손가락 걸고 약속했는데. 

나는 빠르게 걷다가 이내 뛰기 시작했다. 숨이 턱까지 찰 때까지 뛰고 또 뛰었다. 눈앞이 자꾸 뿌예지는 게 햄빵이 때문인지 소라 때문인지 나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새 온 사방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41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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