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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선 Mar 24. 2024

치밀하게 조작된 나의 주체성

3/23 토 일기

면접 탈락 후 불안감이 되게 높아졌다. 잘 못했다는 생각 때문일 거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직장을 원하지는 않아도 그 직업을 원했기에

내가 진심으로 갖고 싶었기에 도리어 더 허둥댔던 것 같다.

그런 진심이 있었구나. 잘하고 싶으면 오히려 그럴 수 있지.


네가 준비 안 한 거잖아 잘 못한 거잖아 누굴 탓해?

못났다 정말 패배주의자처럼 있지 말고 더 노력해 그럴 시간에


이런 말들은 나에게는 맞지 않는 옷 같다.

말의 내용은 맞을지언정 야박하다.

내 성장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 같지도 않다.


아니 안 괜찮은데 왜 꼭 괜찮아야 해?


무조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낙관이고

기분은 좋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리는 것은 긍정이라고 한다.

나는 긍정이 더 건강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낙관은 꼭 뭐랄까. 나를 구기고 구겨서 비좁고 예쁜 큐브 안에 넣는 것 같다.

그리고서는 자 해결! 선반에 이 큐브가 쏙 하고 들어가네 너무 좋다.라고 외치는 것만 같다.

뭔가 잘못됐는데 선반에는 잘 맞아서 그 불편함을 말하기가 어렵다.

나는 미어지게 큐브 속에 답답하게 살아가는데 남들은 혹은 나 조차도 아무 문제없단다.

이게 정말 해피엔딩일까?


_

나는 포옹, 동물, 식물에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쉬이 해결되지 않는 일에, 보고 듣고 만져 기분을 환기시켜 주는 힘.


공기청정기로 내가 가진 모든 도구들로

집안의 나쁜 공기들을 필터링하지 못한다면

창을 활짝 열어 환기를 하고 바람을 친구로 두어도 좋다.

바람이 더 이상 머무르고 싶지 않다고 하면 나 또한 창문을 닫아도 좋다.

그래도 공기가 좋지 않다면, 가끔은 나쁜 숨도 쉬자.


한 번쯤 물어봐줬으면 좋겠다.

정말로 저렇게 나를 몰아세우고 쭈뼛서게 하는 말들이 나에게서 나온 것인지

상처받고 거절당하고 잊지 못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말들이 그리 만들지는 않았는지

경쟁과 사회적인 분위기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나를 탓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가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이 절대 할 법 같지 않은 생각과 말이 불쑥 나올 때가 있다.

남의 이야기에 썩 관심 없고 자기 자비가 강한 사람이

평균치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실망한다던가 하는.

실은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필요하지 않아 보이는데도 말이다.

그건 사실 그 사람 스스로가 만든 생각이 아닐 확률이 높다.

때론 긴 시간 치밀하게 조작된 실망감처럼 보인다.

굳이 상처받는 부분들을 보면 그렇다.


내가 정말 원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인지

사회가 원하는 경쟁과 우위에서 밀려 괴로운 것인지

타인의 말들에서 상처받아 괴로운 것인지


내가 정말 원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라면 내 갈피를 찾아줘 고마울 거고

우위에 밀려서라면, 정말 위로 올라서고 싶은지 생존에 위협이 되기 때문인지를 물어보자.


주체적인 괴로움인지 검토해 보고

혹여 아니라면, 그 좌절은 버렸으면 좋겠다.

당신을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사람들의 몫임으로

다른 방에 있는 나쁜 공기까지 온 힘으로 마시지 않았으면 한다.

바람이 당신의 방에 머무르다가 못난 공기들을 쑥 밀어내주었으면 좋겠다.




새의 포옹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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