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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달 Apr 06. 2021

21세기에도 살아있는 조선의 흔적들

 몇 해 전, 나는 ‘이 말’의 유래를 듣고선 깜짝 놀랐다. “아니, ‘이 말이’ 연산군 때문에 생겨났다고?” 우리가 돈이나 물건을 아낌없이 함부로 쓸 때 하는 ‘이 말’이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 시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 말’이 뭐냐고? 바로 ‘흥청망청’이다. ‘흥청망청’은 조선 시대 궁궐 기생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연산군은 채홍사를 파견해 팔도의 미녀를 강제로 징발했고 그 수가 1만이 넘었다 하니, 그로 인한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실록에도 나와 있듯, 연산군은 재위 중 조선 팔도에서 미인들을 뽑아 기생집단을 만들었다. 그것도 무려 1만 명이나! 징집 대상에서 사대부 집안의 여식이든, 관가의 노비이든 예외는 없었다. 연산군은 조선에 있는 모든 여인을 자신의 소유로 생각한게 아닌가. 

 선발된 여성들 중에 얼굴이 이쁘고 춤과 노래에 탁월한 기생들은 ‘흥청’이라 불렸다. 즉, ‘흥청’은 연산군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일 등급 기녀였던 셈이다. 흥청 중에서 왕과 동침을 한 자는 ‘천과흥청’이라 했다. 실제로 ‘천과흥청’이 되면 특혜를 받을 수 있었는데 그 가족들은 국가에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었다. 지방에서 ‘천과흥청’의 아버지는 어마어마한 권력을 갖게 되었다. 연산군은 정사는 멀리한 채 궁궐에서 ‘흥청’들과 향락에만 빠져 있었다. 


 이에 유생들의 투서가 잇따르자, 연산군은 오늘날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성균관을 ‘놀방’이라 하여 유흥장소로 만들어버렸다. 스님들이 왕의 행실을 비판하자 원각사에 있는 스님들을 내쫓고서는 급기야 절을 기생양성소로 만들었다. 오호 통재라. 원각사를 세운 세조가 땅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지 않았겠는가.


 학문을 연구하는 성균관을 유흥장소로 만들고 원각사를 기생집으로 만들다니…. 연산군이 폐위되기 전 2년 동안의 행적들을 보면 유교 국가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기행이 이어진다. 

 경복궁 안의 경회루를 할렘 궁전으로 만들었다. 영화<간신>에서 묘사하는 심야 파티장면보다 <연산군 일기>에 나오는 실제 기록이 더욱 사치스럽고 화려할 정도이다.     


 경회루 못가에 만세산을 만들고, 산 위에 궁을 짓고 채색 천을 오려 꽃을 만들었는데, 백화가 산중에 난만하여, 그 사이가 기괴 만상이었다. 그리고 배를 만들어 못 위에 띄워 놓고, 채색 비단으로 연꽃을 만들었다. 그리고 산호수도 만들어 못 가운데에 푹 솟게 심었다. 누각 아래에는 붉은 비단 장막을 치고서 흥청·운평 3천여 명을 모아 노니, 악기와 노랫소리가 비등하였다


 경회루 연못안에 인공섬을 만들어 그 안에다 궁을 지었다니···. 종이와 비단으로 꽃을 만들어 연못을 장식했다하니, 현대 무대연출가도 놀라울 따름이겠다. 연산군은 ‘흥철’들과 밤마다 화려한 파티를 벌이며 국가 재정을 물쓰듯이 하자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백성들은 연산군이 ‘흥청’들과 어울려 놀아나다가 망했다고 하여 ‘흥청망청’이라며 저주했다고 한다. 우리는 돈이나 물건을 낭비하는 것을 두고 ‘흥청망청 거리다’라며 비난하지 않은가. 연산군을 향한 백성들의 저주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게 들리는 것 같다. 아무리 큰 재산이 있는 사람도 연산군처럼 흥청망청 쓰면 반드시 망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강남의 대표적인 핫플레이스인 압구정의 유래도 흥미롭다. 압구정은 고급 레스토랑과 분위기 좋은 카페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나는 데이트 장소로 종종 압구정을 찾곤 했다. 신병주 교수는 <참모로 산다는 것>에서 압구정의 유래를 이렇게 말한다.

     

 현재는 한강 변에 위치한 고급 아파트촌의 대명사로 불리는 ‘압구정동’은 바로 한명회가 세운 정자 ‘압구정’에서 유래한 것이다. 성종이 즉위한 후 국가의 원로가 된 한명회는 조용히 여생을 보낼 장소로 한강변에서도 가장 풍광이 뛰어난 곳에 정자를 지었다. 중국 송나라의 재상이었던 한기가 만년에 정계에서 물러나 한가롭게 갈매기와 친하게 지내면서 머물던 그의 서재 이름을 ‘압구정’이라 했던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부촌의 상징인 압구정이 조선 시대 권력가였던 한명회의 별장을 이르는 말이라는 것이다. 칠삭둥이, 간신으로 부정적인 모습과 함께 노련한 정치가의 면모를 보인 한명회. 그는 노년을 즐기기 위해 한강변에 개인 정자를 짓고 여생을 보내고자 했다. 그의 별장인 압구정에 올라서면 한양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명산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압구정에서 바라본 경치가 얼마나 좋았는지, 중국 사신들에게도 그 명성이 알려져 조선에 오면 꼭 가보고 싶은 장소였다고 한다.


 나는 한명회와 압구정에 얽힌 일화를 알고서, 압구정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수없이 압구정을 지다 다녔지만 그곳에 조선의 흔적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었다. 

 조선 시대 중국 사신들에게도 워너비 플레이스였던 압구정. 나는 압구정으로 향했다. 지하철 압구정역에서 나와 한강 변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있다. 지금도 현대아파트 안에는 한명회의 압구정 터를 알려주는 비석이 남아있다. 


 압구정은 오늘날 비싼 땅값으로도 유명하다. 나는 대한민국 부의 상징과도 같은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보며 잠깐동안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어쩌면 권력과 부귀영화의 정점에 있었던 한명회가 오늘의 명당자리를 예견한 것이 아닐는지도···. 압구정과 옥수동을 잇는 동호대교의 야경이 오늘따라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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