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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섯맘 Oct 24. 2024

이장님 방송은 알람

올해 초 , 낯선 곳에 세아이만 데리고 내려와 나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잠을 설치던 날도 있었다. 꽤나 독립적이지 못했던 나는 꽤나 진취적인 남편에 의지하며 살아왔기에 강진에서 나 홀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수시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 확인을 다. 40년을 훌쩍 넘기며 살아왔지만 내 인생을 낱낱이 열어보면 매우 단조로운 인생 살았던 것  같다. 굳이 열어보자면 꿈 많았던 10대  20대, 치열했던 30~40대 육아... 자녀를 한 명이나 두 명을 낳았다면 이렇게 까지 길지 않았을 육아를 다른 사람들보다는 몇 배나 더 길게 하며 늘 인내심과 맞닥뜨리는 삶을 살았다. 산과 육아는 가장 가치 있는 이라는 나의 선택 함께 스스로 책임감 있게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다섯 아이를 키워냈다. 물론 남편의 공도 컸고 말이다. 그 당시엔 아이들이 나의 전부였고 나의 세상이었다. 몸은 가장 고됐지만 그 시간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긴 세월 육아만 했던 나는 마치 온실 속의 화초만 같았다. 마치 이곳은 '어른 아이'나에게 독립심을 기르기 위해  홀로 남겨진 곳과 같았다. 여러 복합적인 마음에 잠 못 들었던 날,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잠을 깼다.

"아아~~ 안내말씀 드립니다. 웅얼 웅얼~~"

'응?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지?' 잠시 실눈을 떠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잠이 덜 깬 탓인지 잘 모르겠다.

귀를 쫑긋 세워보지만 분명 창가 쪽에서 소리가 났고 정확하게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안내방송이었다.

아파트 생활에 익숙했던 나는 세련된 여성의 목소리에 기계음을 합쳐놓은 듯한 안내방송을  들어왔기에  정겹게 들오는  옆집 아저씨와 같은 목소리를 듣 있으니 어느새 잠이 달아나 버렸다. 

'아~ 방송소리구나! '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지금 몇 시지?' 시계를 올려다보고 다시 한번 눈을 비비며 시간을 확인했다. '7시 10분이라고?'

 다시 눈을 비비며 확인해 본다. 7시 10분.

'시골은 안내 방송도 이른 시간에 하는구나~'

아침잠이 많았던 나는 이장님 안내 방송 소리에 잠을 깼다.

참 이상하다. 분명 방송소리 잠을 깬 것은 맞지만 이상하게 싫지 않다. 마치 나의 잠을 깨워주는 알람처럼~! 그 이후로도 이른 아침 방송소리 간간이 려왔고, 그 소리는 푸근한 알람이었다.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어? 이장님이 방송을 안 하시네?' 내 귓가에 딱딱한 기계음 같은 사람 소리가 들려왔다. 아파트에서 들었던 그 소리였다.

'에이~ 이장님이 직접 방송하시는 게 듣기 좋은데~' 나도 모르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엄마들 장님 방송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잠을 자고 있는데 아침에 안내 방송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서 깼어요~그런데 시간을 보니까 7시가 넘었더라고요!

이른 아침부터 안내 방송이 나와서  놀랐. 그런데 이장님 목소리가 정겹고 좋았는데 언제부터인가 기계음  같은 사람 소리가  들려서 너무 아웠어요."

"언니! 기계음처럼 나오는 방송 군청에서 보내는 안내 방송일 거예요."

"그래요? 군청에서 방송할 때는 소리가 다른 거군요!"

나는 왠지 안도감이 들었다.


비가 내리는 , 정겨운 방송소리가 들다. 나는 잽싸게 창문을 열고 방송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비가 내리는 시골 ASMR.

"아~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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