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들이 거지가 되면 먹여살려야 된다는 생각을 '당연히' 가지고 있는거 아냐?
돌아다니는 우스갯소리를 보여줬더니 실제로 '언니'가 거지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는 동생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농담으로 시작해서 정말로 재밌었고 이게 언니에 대한 믿음이구나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생긴다. 요즘 드는 고민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막내딸, 아빠를 일찍 여읜 K-장녀로 살아갔던 나는 요즘 첫째딸이 동생과 친구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책임감을 보고 마음이 가라앉는다. 세상은 기브앤테이크라고 하지만 뭐든 내가 줘야 받을 수 있다 생각하고, 돌려받는것임에도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상대방이 나에게 먼저 준다는 것은 무조건 갚아야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연애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누나들이 있는 막내아들은 자연스럽게 받고 표현하는데, 갖고 싶은 게 있어도 사달라는 말을 10년차 결혼하고 난 뒤 할 수 있게 됐다.
20대까지 다 보내고 나서 30대에 비로소 타인에게 선의를 받는 법을 조금씩 익혀나가는 중이다. 누군가도 나에게 먼저 베풀어줄 수 있음을 깨달았지만 여전히 삶에는 K-장녀라 부르는 습관들이 남아있었고, 그것은 날이 갈수록 나를 지치게 했다.
이제는 인정한다. 보통의 책임감이라 생각했지만 남들보다는 무겁게 들고 있었던 삶의 찌꺼기들이 존재한다고. 여전히 나는 그것들이 삶에서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전부 다 알 수 없다. 사실 지금의 나를 이루는 조각들이라 전부 내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른이 된 K장녀들의 모습이 떠도는 것을 보고 비로소 나는 이게 내 모습이구나 온전히 받아들이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덜어내야될 부분이 있지 않을까? 고민해본다.
이런 나를 의식했을 때 우리집 첫째딸이 일반적인 K-장녀의 모습으로 자라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을테니. 아니, 그렇게 타고났다면 적어도 나를 사랑하고 챙기는법이 더 먼저라고 알려줄 수 있기를 바란다.
딸의 성장과정을 보며 나는 내 안의 어릴적 첫째딸을 꺼내서 다시 바라보게 된다.
자녀를 키운다는 것이 이런것이구나 비로소 또 깨닫는다. 어린 나를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삶을 갖는 것. 이래서 자녀는 나와 독립적인 존재지만 나를 이어가는 흔적이구나. 그렇게 나를 치유하고 아이에게는 더 나은 삶을 주고싶은 것. 이입이 아닌 떠나보내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아침부터 흘리는 눈물은 깨달음의 기쁨일 것이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