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기에 보상은 받아야죠.
COVID-19는 많은 것을 바꿨다. 거리의 모습, 삶의 형태, 인식 구조 등 셀 수 없이 많은 부분, 인지하지 못하는 많은 부분을 바꿨다. 가장 내게 긴밀했던 변화 중 하나는 재택근무였다. 교육 서비스를 기획하고 집행하는 회사였기 때문에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COVID-19 바이러스가 한창 기승일 때는 교육 참여자가 없었기 때문에 직원이 순환하며 재택근무를 할 수 있었다. 유튜브에서나 보던, SNS에서나 듣던 재택근무를 한다는 것에 조금은 철없이 좋아했던 것 같다. 재택근무는 생각보다 더 성가신 업무 환경이었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원에 대한 믿음이 없는 회사였기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는 사원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받고자 했다. 전화, 카카오톡, 슬랙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메신저를 활용하여 연락이 왔다.
차라리 출근하는 것이 낫겠다며 투덜거리며 근무를 한지 이틀 차가 되었을 때 업무 때문에 다른 팀 사원과 통화를 하다가 사담을 나누게 되었다. 이전 회사는 교육회사인만큼 크게 교육팀과 교육업무를 보조하는 팀, 2팀이 있었다. 나는 교육팀에 속해 있었고, 상대는 다른 팀 소속이었다. 평소 사적 친분도 있던 터라 나는 재택근무의 불편한 점, 회사 요구 사항 등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상대는 내게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냐고 되물었다. 사무실에 있지 않으니 효율이 높으니 빨리 끝내 놓고 쉬엄쉬엄 보고를 하라는 팁을 알려주었다. 나보다 사회경험이 있었던 사람의 조언을 듣고 업무를 다시 시작하기 전에 내 업무를 점검해보았다. 내게는 상대가 말한 것과 달리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업무가 쌓여있었다. 부여된 근무시간 안에 처리할 수 없어서 재택근무 중에도 야근을 해야 했다.
내가 속해 있던 팀은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가장 힘이 셀 것 같지만 전혀 아니었다. 회사에서 수행되는 대부분의 업무를 진행하는 팀이었지만 동시에 회사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해서 업무가 좀 더 부여돼도 티가 안나는 팀이었다. 팀장은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람 좋은 얼굴로 부여된 모든 업무를 팀으로 가져왔다. 팀의 분위기는 많은 요소에 의해서 좌우되지만 좋은 사람이자 나의 이전 팀장 때문에 좋은 팀 분위기는 유지될 수 없었다. 과중한 업무량, 이해되지 않는 업무, 소화할 수 없는 일정은 좋은 사람도 미워하게 만들었다.
팀 별로 분위기, 업무량, 근무환경 등 모든 것이 공평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갭 차이를 임원이 파악을 하고 연봉, 성과급과 같은 방법으로 채워준다면 불공평함 정도가 완만해질 수 있다. 이전 회사는 연봉으로는 아주 공평한 회사였고, 심지어 임원이 이와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심이 드는 곳이었다. 당시 나의 이 불편한 상황에 대처는 '맡겨진 상황에 대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사실 과중한 업무가 맡겨지는 것을 문제라 생각하지 못했고, 업무가 부여되는 프로세스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만약 퇴근 후에 너무 지쳐서 퇴근 이후의 내 삶을 즐길 수 없고, 내 역량의 문제를 벗어나 업무량으로 잦은 야근이 계속된다면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내가 왜 이 업무를 하고 있는지
내가 어떻게 이 업무를 맡게 되었는지
관련되어 있는 사람은 누구이며 얼마나 관련이 되어있는지
이 고민들을 통해 불합리함만을 주장하라는 뜻이 아니다. 이 고민을 하다 보면 이 업무가 향후 나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업무인지 혹은 사내 분위기에 의해 떠맡겨진 업무인지 돌아보게 된다. 또한 질문의 답이 납득할 수 없는 불공평함이 원인이라고 가리킨다면 많은 방법으로 그 불공평함을 감내하는 값을 받아야 한다. 사회에서 공평함은 있을 수 없다. 다만 그 불공평함을 만족하게 하는 많은 방법들이 있다.
직장생활과 삶을 분리하여 각 영역에서 다른 목표를 가지고 인생을 꾸리는 사람들이 있다. 내 경우는 일 또한 삶의 부분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일을 직업을 통해 이뤄내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회사 내에서 내가 가지는 방향성과 역할을 계속해서 정의해야 했다. 팀 분위기에 맞는 기준이 아니라 내 기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