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시니 Apr 13. 2021

# 14. 태산을 이루는 건 티끌입니다.

개미 한 마리가 할 수 있는 건 개미가 가진 정도의 입 크기로 물어 따끔하게 하는 정도이다. 성가신 정도의 아픔 딱 거기까지이다. 그런데 개미 한 무리가 모이면 건물 구조를 이뤄내고 스스로 다리 구조가 되어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 마블 캐릭터 [앤트맨]의 능력은 이런 개미의 협업을 본인의 힘인 것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소위 열심히 제 맡은 바를 꾸준히 하는 사회인을 개미라 일컫는다. 개미 개개인은 아무 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치부된다. 길을 걷다가 무심코 섰을 때 내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일반적인' 사회인이다. 어쩌면 회사의 대표 또한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일반적이고 평범한 사회인으로서 내 능력 범위는 딱 내 책상의 크기인 듯하다. 


퇴사를 하고 처음 몇 주는 회사를 원망도 하고, 아쉬운 마음에 좋지 않은 마음을 품고 복수를 꿈꿨다. 책상만 한 능력을 가진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내가 내린 답은 사원들이 회사에게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플랫폼이었다. 회사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마음껏 표현하고 익명이 보장된다는 이야기 장. 사실 기반에 감정을 쏙 뺀 내용을 적어 내려갔다. 하나하나 쓰고 보니 10개가 넘는 퇴사의 이유들이 있었다. 감정을 빼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 회사를 가려는 사람은 절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만큼 진심을 더하려고 노력했다.) 그랬으면 했다. 회사를 이루는 구성원만큼 사람이 들어왔다 빠져나간 그 회사의 퇴사자들은 십시일반으로 모여 자신들이 겪은 새로운 내용들을 나열했고, 결과적으로 평가는 최악이 되었다. 개미가 할 수 있는 복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새로이 퇴사자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리뉴얼된 평가를 보기 위해 사이트에 들어갔다. 허탈했다. 회사에서 사실에 기반한 평가를 모두 다 지웠기 때문이다. 어떤 과정으로 일이 진행되었는지는 모르나, 나에서 끊어내고 싶었던 폐단은 그대로라는 걸 눈으로 보았다. 딱 개미만큼, 본 때를 보여준다며 따끔하게만 하고 나를 털어내는 손길에 털려버렸다.


처음엔 믿기지 않아 여러 번 새로고침을 했고, 다음엔 친했던 동료에게 전화해 믿기지 않는다고 했고, 마지막으로 내 마음에서 그 일을 지워냈다. 계속 곱씹을수록 좋지 않은 마음만 커져갔기에. 어느 정도 내 안에서 그 일이 정리되고 나니 사건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태산 같던 그 회사가 우리를 무서워했던 것 같다. 태산을 이루던 조각이 하나씩 빠지자 태산은 동산이 되었고, 조각들이 모여 비슷한 크기의 동산이 되자 걱정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 명의 이야기는 힘이 없지만 여러 명의 일관된 이야기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실 '무서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소롭지는 않아졌을 것이다. 나 한 명이 태산 같아 보이는 조직을 이길 수는 없겠지만 그 태산을 이루는 건 개인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알아들을 때까지 말할 거다. 사실 자신은 없다. 용기가 가득한 편은 아니라서. 그런데 이해한다고 말해주고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다면 내 몸집도 점점 커지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 13. 족발집에서 있었던 인사 회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