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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먼지 Apr 21. 2021

독서의 이유,
「책은 도끼다」

박웅현, <책은 도끼다>

"책은 우리 내면에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 프란츠 카프카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독서에 대해 명료하게 말했다. 옛말에 책도둑은 도둑도 아니라고 했고,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혀에 가시가 돋친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독서의 중요성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으나, 정작 독서라는 행위가 우리에게 주는 효용을 밝혀 말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책이 좋은 건 알겠는데, 왜 좋은 것일까?


흔히 책은 시간적, 공간적 한계를 넘어서는 간접경험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 솔직히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간접과 경험은 직결되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간접 경험이라면 시각적으로 훨씬 직접적이고 청각 정보까지 활용할 수 있는 동영상 매체가 몇 배는 효율적이지 않을까? 그러나 아직 영화나 다큐멘터리가 책의 입지를 위협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왜일까?


나에게 도끼처럼 내리쳐졌던 책들을 돌아봤을 때, 그것들은 결코 간접경험을 제공하는 형식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들은 개인의 경험을 재확인시키는 성격이었다. 추상적이고 어렴풋해서 감각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던 경험을 분명한 문장과 논리로 직조해냄으로써 지식 내지는 지혜의 영역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독서의 진짜 가치는 책과 독자의 쌍방향 소통에 있지, 단순한 간접경험 제공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문학작품이라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10대 청소년이 읽는다면 사실 그다지 감흥이 없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몇 번의 사랑과 몇 번의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를 겪은 40대 라면, 그것은 전혀 다를 수 있다. 만약 독서의 목적이 간접 경험 제공이라면, 이런 현상이 벌어질 리가 없다.


다시 말해서 고등학생 필독 도서목록에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을 올리는 행위처럼 무의미한 일 없다는 것이다.(진짜로 그런 록이  ) 애초에 칸트를 읽고 있는 고등학생이라면 필독 목록의 추천 같은 건 필요로 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런 식의 독서교육은 책=재미없고 무의미한 것이라는 등식만 강화할 뿐이다.


'사람을 향합니다'라는 광고 슬로건으로 유명한  이 책의 저자 박웅현 씨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에게 도끼처럼 남았던 책과 문장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면서 일상을 이야기한다.


 좋기 때문에 좋고, 훌륭하기 때문에 훌륭한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이 현실의 본인에게 어떻게 작용했는지,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켜서 어떤 결과를 맞이했는지를 말이다. 괴랄한 필독 목록 같이 '나도 잘 모르겠지만 이거 유명하더라.'가 아닌 구체적이고 명료한 소개팅을 주선해주는 셈이다.


작중에는 '들여다보기의 힘'이라는 주제로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을 소개하는 단락이 있다.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했던 김훈 작가의 문장은 관찰적이고 만연하다. 그리고 서사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적이다. 그는 완연하게 꽃 피는 풍경 앞에서 이렇게 썼다.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 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동백꽃은 해안선을 가득 메우고도 군집으로서의 현란한 힘을 이루지 않는다"


태어나서 겨울밖에 산적 없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문장 앞에서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김훈의 관찰과 전달은 온전하고 자기완성적이다. 그냥 때 되면 피는 꽃에 불과하던 것들이 하나의 엄숙한 서사를 간직한 풍경이 되는 것이다. 진정, '들여다보기'의 힘이다.


<책은 도끼다>에서 소개된 책들은 물론이고, 그것이 에세이든 소설이든, 인문학이든 과학이든 주제와 형식을 떠나 책이 가진 힘은 근본적으로 이와 같은 '바라보기'다. 아무것도 읽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은 물속의 뜬 눈 같이 흐릿한 시야로 사는 것과 같다. 참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밀알 하나  속에도 우주가 있다는데, 되도록 볼 수 있는 것들은 다 진득하게 관찰하며 충만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독서에 정답은 없지만, 책이라고 다 읽을 만한 책은 아니다. 안 그래도 바쁜 사회인에게 시행착오의 위험을 줄여주는 것이 박웅현 기획자 은 사람이고, <책은 도끼다> 같은 책이다. 그의 말에 따라 읽고 즐기며 사색하다 보면, 어느새 보게 될지도 모른다. 전과 비교될 수 없게 밝고 선명해진 세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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