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Nov 24. 2023

어느 신비한 프랑스 피아노 상점에서

여행하며 살아가는 게 이런거지



다들 여행 여행 한다. 나도 여행을 물론 좋아하는데 여행이 사실 뭐 별거 있나. 나에게 여행이란, 낯선 곳에서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을 뜻하기도 한다. 


진정한 여행은 그 뜻밖의 일들이 펼쳐질 것을 기대하는 설렘이 만들어준다. 사소한 것 조차 내 예상 밖을 벗어남을 허락하는 시간들. 오늘이 바로 그러했다. 나의 동네에서 난 진정한 여행을 했다. 


프랑스에서 산지 2년차가 넘어간다. 아주 낯설었던 이 도시는 이제 점점 익숙해지고 내 생활반경도 매일매일이 비슷해졌다. 좀 달라진게 있다면, 이제는 학교에서의 사람들이 전부가 아니라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서 만난 사람들. 단골 가게와 마트의 사장님들 등. 또 다른 인간관계가 계속 생겨남에 '나의 생활'이 점점 뚜렷해지는 기분이다. 유학생의 신분으로 와서 이제는 이곳에 진짜로 스며들고 있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굳이 비교하자면 곤충의 탈피 과정 같달까. 


아무튼 오늘은 참 신비로운 하루였다. 

( 대부분 나에게 영화나 동화 같은 일들은 할아버지와 함께 시작되더라... 노인분들과 함께 할때는 어린이가 된 기분이라 더 새롭고 순수해진다. )


나는 12시경 건강 진단 상담을 마치고 오랜만에 옷을 구경하고자 시내로 향했다. 맘에 드는 옷이 없어 다른 곳을 가려던 참에 바로 맞은편 피아노 상점 앞에 섰다. 나의 디지털 피아노를 팔 수 있는 곳을 알아봐야 해서 정보를 얻을 겸 들어갔지만 사실 난 아무 이유없이 마음이 이끌려서 들어갔다는 말을 하고 싶다. 백발의 할아버지께서 나를 맞이해주셨고 이곳은 디지털 피아노는 거래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예상했던 답변이기에 그렇구나 하고 나가려던 참에 혹시 피아노를 쳐도 되는지 여쭤보았다. 어렸을 때 부터 피아노 상점들을 지나칠 때 마다 난 항상 가슴이 두근거리고 피아노들을 치고 싶어했었지. 


할아버지는 그러라고 하셨고 마침 상점안에는 나와 할아버지 둘 뿐이었다. 나는 좀 적극적으로 피아노를 쳤다. 이말인 즉슨, 부끄러워하며 소극적으로 치기 보다는 정말 즉흥으로 몰입해서 연주를 했다. 옆에 서 계시던 할아버지는 내가 흥미로우셨는지 이 쪽 피아노에서도 쳐보라고 하셨다. 소리는 훨씬 좋았다. 더 맑고 웅장했다. 악보도 없었고 뭘 연주해야 될지도 몰랐지만 그저 집에서 하던 대로 그렇게 피아노 음들에 내 손가락을 맡겼다. 정확히는 자유롭게 움직이는 손가락에 내 몸을 맡겼다. 


할아버지는 계속 미소를 지으셨고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난 할아버지와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할아버지도 피아노를 연주하시는지 혹시 쳐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았다. 이에 할아버지는 즉흥으로 너무 훌륭한 연주를 해주셨다. 내가 어린아이 처럼 너무 좋아하고 관심을 보이자 할아버지는 뒤 쪽 방에 있는 오르간을 보여주겠다고 따라 오라고 하셨다. 내가 마음에 드셨나보다. 





할아버지를 따라 들어간 뒤 쪽 공간에는 할아버지의 서재와 오르간들이 있었다. 오르간의 세계는 내가 무지한데 오늘 처음으로 밟으면서 멜로디를 낼 수 있는 페달리에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페달이 건반처럼 존재해서 밟는 건반에 따라 소리도 나고 페달의 역할도 하는 오르간이었다. 할아버지가 직접 그 오르간을 연주하시면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몸소 보여주셨다. 그렇게 감탄의 감탄을 하고 재밌는 대화를 하던 중에 누군가가 상점에 들어왔다. 


손님이 오셨는데요? 라는 말에 할아버지는 손님 아니고 부인일거라며 나와 대화를 계속 하셨다. 

그러나 낯선 불청객은 남자분이었다. 


'어 할아버지, 남자분인데요?..'


그렇게 우리는 손님 쪽으로 걸어 나왔는데 이 손님 손에는 와인병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뭔가 낯이 익은 얼굴의 아저씨였다.





어? 아저씨는..! 



작가의 이전글 한국어를 공부하는 한국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