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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관 Dec 31. 2020

오블리VI언

Oblivion 망각


심장이 예리한 칼에 베어져 나가는 시퍼런 서늘함에 소스라쳐 눈을 떴다.  

우리는 어느 가파른 산등성이를 위험하게 걷고 있었고, 순간 내가 비탈에 미끄러져 나무에 매달렸다. 반사적으로 나를 구하겠다고 손을 뻗던 아내의 발 밑도 미끌렸고 벼랑 끝에 다다랐다. 순간 벼랑 밑 산비탈에 푹신할 듯한 풀밭이 보였고 생각할 틈도 없이 그곳으로 몸을 던진 그녀의 몸은 멈추지 못하고 빠르게 튕겨져 나가 가파른 계곡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 아래로 아래로 사라져 갔다.

아내의 생명이 산산조각 부서지며 순식간에 사라져 가는 순간 내 가슴은 비수에 베인 듯 서늘함이 온몸에 전율로 전해왔고 너무 놀라 눈을 번쩍 떴지만 내 심장은 계속 쿵쾅거리고 있었다.

수년이 지났지만 그날 밤 악몽 속의 그 예리한 서늘한 느낌은 지금도 내 가슴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일을 끝내고 집에 도착해 핸드폰에서 카톡을 확인했다. 매일 좋은 영상과 글을 보내주는 친구에게서 온 카톡이 오늘도 어김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항상 그렇듯 무심히 보내온 영상을 눌렀을 때 오케스트라 연주와 첼로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처음 듣는 음률인데 그 떨림에 내 심장도 공명한 듯 바르르 떨리고 눈에는 눈물이 고여왔다. 사 분간의 짧은 영상이었지만 내 감정은 일상에서 허무의 세계로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그 음악이 무엇인지 궁금해 곡목을 검색해 보니 피아졸라의 오블리 VI 언(Oblivion/망각)이란 이름의 곡이었다. 곡목을 알고 나서 다시 한번 연주를 듣는데 내 감정은 더 주체할 수 없이 격해져 가족들이 옆에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꺼이꺼이 울먹이고 말았다. 오블리VI언, 망각. 나의 삶에서 망각되어져간 사람에 대한 기억과 그렇게 또 나도 망각되어져 갈 거라는 서글픈 인생의 허무가 나의 가슴속으로 강하게 덮쳐 왔던 것이다. 망각. 그렇다. 우리는 다 그렇게 잊혀져 갈 존재인 것을!

청춘시절에 열정으로 사랑해 결혼 후 아이들을 낳고 살다가 삶의 질곡 속에 상처를 주고받다 병들어 먼저 떠나 망각된 사람이 내 무의식엔 아프게 자리하고 있었고 그 아픔이 심장을 베는 늘함의 악몽으로, 가슴을 쥐어짜는 허무함의 떨림으로 괜찮은 듯 일상을 살아가던 나를 심하게 흔들어 깨운 것이었다. 좋았던 기억들 보단 서로를 실망케 했던 기억들만 남아서 기억하지 않으려 애써 숨기고 지내온 세월 16년. 지나온 시간은 참으로 빨랐고 남은 삶의 시간도 손가락 사이로 급하게 빠져나가고 있다. 오블리VI언, 망각. 젊은 날의 기억도 중년의 시간도 강물처럼 쉼 없이 흘러가고 빠르게 잊혀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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