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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관 6시간전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소년이 온다 인상 깊은 문장들

소년이 온다를 읽고...


달 전 한국에 갔을 때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책을 구입해 읽으면서 여러 번 오열을 했다. 동호와 정대, 은숙과 정진수, 선주와 동호 엄마가 겪은 그 고통이 너무 처참해 울었고, 매일 울면서 한 문장 한 문장씩 써 내려갔을 마음 여린 한강 작가가 안쓰러워서 또 울었다.


한강이 국민학교 3학년때까지 살았던 광주 중흥동에서 나도 살았고, 한강이 다녔던 효동국민학교를 나도 6학년까지 다녔었다. 한강의 가족들처럼 우리 가족도 6학년 때 광주 외곽으로 이사를 갔었는데 전남대 후문 가까이에 있던 중흥동 집에서 계속 살았었더라면 나도 동호나 정대와 같은 운명의 길로 갔을지 모른다. 5.18 당시 난 광주에 있는 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매일밤 불도 못 켜고 총알이 날라 들어올까 무서워 이불로 창문을 가리고 지내던 어느 날, 계엄군이 총검으로 여대생 가슴을 도려내고 임심 한 여자의 배를 갈랐다는 소문을 듣고 의분에 사로잡혀 집을 뛰쳐나가려고 했을 때 엄마가 결사적으로 날 붙들지 않았더라면 나도 동호처럼 진수 형과 함께 도청에서 계엄군을 맞아 죽었을지도 모른다.


한강이 고맙다. 피해자이면서 폭도로 오해받고 편견으로 응어리진 광주 시민의 목소리를 대신 내주어서 고맙고, 노벨상으로 인정을 받게 되어 고맙다. 자신이 인간인지 아닌지는 소년이 온다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5.18 희생자들의 고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면 그대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아래는 '소년이 온다' 일곱 챕터의 인상 깊은 부분을 선별해 보았다.


1. 어린 새 (동호의 이야기)


      눈이 더 나빠져 가까운 것도 흐릿하게 보이면 좋겠다고 너는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흐릿하게 보이지 않는다. 무명천을 걷기 전에 너는 눈을 감지 않는다. 피가 비칠 때까지 입술 안쪽을 악물며 천을 걷는다. 걷은 다음에도, 천천히 다시 덮으면서도 눈을 감지 않는다. 달아났을 거다,라고 이를 악물며 너는 생각한다. 그때 쓰러진 게 정대가 아니라 이 여자였다 해도 너는 달아났을 거다. 형들이었다 해도, 아버지였다 해도, 엄마였다 해도 달아났을 거다.

   체머리를 떠는 노인의 얼굴을 너는 돌아본다. 손녀따님인가요, 묻지 않고 참을성 있게 그의 말을 기다린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적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너는 마주 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2. 검은 숨 (정대의 이야기)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 보낸 총구를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 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3.  일곱 개의 뺨 (은숙의 이야기)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4. 쇠와 피 (정진수와 친구 이야기)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내가 겪은 일들을 이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묽은 진물과 진득한 고름, 냄새나는 침, 피, 눈물과 콧물, 속옷에 지린 오줌과 똥. 그것들이 내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아니, 그것들 자체가 바로 나였습니다. 그것들 속에서 썩어가는 살덩어리가 나였습니다.  

   지금도 나는 여름을 견디지 못합니다. 벌레 같은 땀이 스멀스멀 가슴팍과 등으로 흘러내리면, 내가 살덩어리였던 순간들의 기억이 고스란히 돌아와 있는 걸 느끼며 깊은숨을 쉽니다. 이를 악물고 더 깊은숨을 쉽니다.


   각진 각목이 어깻죽지와 등허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자신의 곧은 물성대로 활짝 펴지며 내 몸을 비틀 때, 제발, 그만, 잘못했습니다, 헐떡이는 일초와 일초 사이, 손톱과 발톱 속으로 그들이 송곳을 꽂아넣을 때, 숨, 들이쉬고, 뱉고, 제발, 그만, 잘못했습니다, 신음, 일초와 일초사이, 다시 비명, 몸이 사라져 주기를, 지금 제발, 지금 내 몸이 지워지기를,

.

.

   날마다 이 손의 흉터를 들여다봅니다.  뼈가 드러났던 이 자리, 날마다 희끗한 진물을 뱉으며 썩어 들어갔던 자리를 쓸어봅니다. 평범한 모나미 검정 볼펜을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숨을 죽이고 기다립니다. 흙탕물처럼 시간이 나를 쓸어가길 기다립니다. 내가 밤낮없이 짊어지고 있는 더러운 죽음의 기억이, 진짜 죽음을 만나 깨끗이 나를 놓아주기를 기다립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5. 밤의 눈동자 (선주의 이야기)


   기억해 달라고 윤은 말했다. 직면하고 증언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 번 후벼 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킨 당신을 그들이 통합병원에 데려가 수혈받게 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이년 동안 그 하혈이 계속되었다고, 혈전이 나팔관을 막아 영구히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타인과, 특히 남자와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됐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짧은 입맞춤,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 여름에 팔과 종아리를 내놓아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일조차 고통스러웠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서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

.

   아니,

   언니를 만나할 말은 하나뿐이야.

   허락된다면.

   부디 허락된다면.


   죽지 마.


   죽지 말아요.


6. 꽃 핀 쪽으로 (동호 엄마의 이야기)


   환한 모래언덕에 까만 옷 입은 사람 수백 명이 개미같이 관을 들고 걸어가던 것이 생각난다이. 느이 형들이 입술을 꽉 물고서 울고 섰던 것도 아슴아슴 떠오른다이. 느이 아부지 생전에 나헌테 하던 말이, 그때 내가 울지도 않고 뗏장 옆에 풀을 한웅큼 끊어다 씹었다든디. 삼키고는 쪼그려앉아서 토하고, 다 토하면 또 풀을 한 움큼 끊어다 씹었다든디. 근디 나는 하나도 기억 안 나야. 묘지로 가기전 일들만 또렷해야. 관 뚜껑 닫기 전 마지막으로 봤던 네 얼굴이 얼마나 핼쑥했던지. 네 살이 그렇게 희었던 줄 그때 처음 알았다이.

   나중에 느이 작은형이 그러드마는. 총을 맞고 피를 너무 흘려서 네 얼굴이 그리 희었다고. 그래서 관이 가벼웠다고. 네가 아무리 덜 컸다고 해도, 그렇게 관이 가벼울 수는 없었다고. 그람스로 두 눈에 핏발이 서드라이. 이 원수는 내가 갚을랍니다. 그것이 뭔 소리다냐, 깜짝 놀라서 내가 그랬다이. 나라에서 죽인 동생 원수를 무슨 수로 갚는다냐. 너까장 잘못되면 나도 따라 죽을 거이다.

   그라고 삼십년이 흘러가도록, 너하고 느이 아부지 기일에 그 자석이 가만히 서서 입 다물고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이상해야. 네가 죽은 것이 저 때문이 아닌디, 왜 친구들 중에 제일 먼저 어깨가 굽고 머리가 하얗게 세었을까이. 저것이 아직도 원수 갚을 생각을 하고 있단가, 생각하면 가슴이 내려앉아야.


<에필로그 - 눈 덮인 램프> - 한강작가 이야기


   그 사진집을 아버지가 집으로 가져온 것은 이년 뒤 여름이었다. 누군가를 조문하러 그 도시에 내려갔다가 터미널에서 구했다고 했다. 나의 어린 상상과 달리 이마에 총을 맞지도, 아직 결혼을 하지도 않은 희영이 고모가 잠깐 다니러  올라와 있었다. 어른들끼리 사진집을 돌려본 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아버지는 그 책을 아이들이 보지 못하도록 안방의 책장 안쪽에, 책등이 안 보이게 뒤집어 꽂아놓았다.


   내가 몰래 그 책을 펼친 것은, 어른들이 언제나처럼 부엌에 모여 앉아 아홉시 뉴스를 보고 있던 밤이었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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