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4편
꿈/ 송정은
여자의 꿈,
드라마를 보다 잠이 들어버렸다.
오랜만에 오르는 등산이다. 따뜻한 커피는 필수이고 정상에 오르면 입을 잠바 등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배낭이 무거워졌다. 힘겹게 오르고 있을 때 밑에서 올라오는 남자가 내 배낭을 보며 선뜻 들어주겠다고 한다. 그는 잘생긴 외모에 믿음직스러워 보였고 공손한 태도로 제의를 했기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의 교제는 시작되었고 내가 대학원 졸업을 하자 그는 프로포즈를 했다.
호수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가 한아름의 꽃을 가지고 나타났다. 꽃 향기에 취해 있을 때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반지를 건네주며 사랑을 고백했다. 그와 함께 라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확신과 누구든 부러워할 것이 분명했다.
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아침이면 언제 일어났는지 운동을 하고 들어와서는 커피 향기로 온 집안을 진동시키며 , 간단하지만 영양가에 맛까지 있는 식사를 만들어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게 한다. 주말이면 수고했다며 예약을 해야 갈 수 있는 식당에 가서 한 주일에 쌓였을 피로를 풀어준다. 명절이든 기념일이든 해마다 챙겨주는 그, 나뿐 아니라 장인 장모까지 서운치 않게 살뜰히 챙기는 것은 시부모님의 교육인 듯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주시는 따뜻한 분들이다.
아이를 가져 갑자기 한 밤중 신 맛난 과일을 먹고 싶어 했던 나에게 그는 달려 나가 어디선가 사가지고 들어와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아이 양육으로 힘들어할까 싶어 설거지며 빨래 온갖 집안일 하려 했고 내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가족 여행으로 추억을 만들자며 해외여행도 다녔다.
내 얼굴엔 항상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남자의 꿈,
소설을 읽으며 잠이 들었다. 이쁜 신입생이 동아리에 들어왔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한동안 머리가 멍해질 정도였다. 옷차림이나 행동이 차분하면서도 멋이 새어 나오는 센스 있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나에게 책을 빌려가면서 우리의 교재는 시작되었다.
책 내용의 주제를 찾아가는 그녀의 지성에 다시 한번 놀랐고 나와 많은 부분이 맞아 기쁘고 편안했다.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유치원 선생으로 취업이 되었을 때 나는 결혼하자고 했고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행복해했다. 아침에 출근하기에도 바쁜 그녀였지만 일찍 일어나 따뜻한 국으로 전날 저녁에 먹은 술로 엉망인 내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다.
주말이면 직장에서 쌓인 피로를 풀라며 하루 종일 자도록 내버려 두고는 그녀는 쌓였던 집안일을 말끔히 했다. 시댁의 대소사를 살뜰히 챙기어서 그런지 아버지 엄마도 며느리라면 좋아라 하신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에도 아침 식사를 거르는 법이 없었고 남편 옷은 아내의 얼굴이라며 깔끔하게 다림질된 정장을 준비해 놓아 준다. 아이들의 교육도 선생님답게 본인이 직접 가르쳐 주고, 언제 배웠는지 딸아이에게는 피아노까지 직접 가르쳐 주는 모습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내 동료나 친구들은 언제든 환영해 주는 내 아내를 보며 부러워하고 음식 솜씨에 따뜻함을 느낀다며 고마워하기까지 한다. 웬만하면 집밥으로 건강을 지키자며 배달 음식과 외식은 안 하는 편이다. 입 맛이 까다로운 둘째도 엄마가 만든 음식이 최고라고 할 정도로 정성을 다한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돋보인다.
그녀만 보면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파트너/ 송정은
귀여운 토끼 두 마리, 수컷은 토돌이 암컷은 토순이라 이름을 지어 불렀다. 둘은 종류가 달랐지만
어찌나 사이가 좋은지 연못가에도 담장 근처에도 어디든 같이 있었다.
어느 날 토순이만 보여 토돌이를 찾으니 언제 땅에 굴을 팠는지 그 속에서 나왔고, 토돌이만 보인다 싶으면 토순이는 나무 옆에 누워 있어 안 보였던 것이다. 밤엔 제법 추워져서 걱정이 되었지만 옆에 꼭 붙어 자는 모습을 상상하며 안심하였다.
아침 일찍 커피를 마시며 정원 쪽을 바라보는데 토돌이가 뛰어오고 있었다. 추위를 견디어 준 것에 감사하고 반가워 미소가 지어졌다. 뒤따라올 토순이를 기대했으나 보이지를 않았다.
당근을 들고 나와 토순이를 불러도 토돌이만 왔다. 평소에는 토순이가 먼저 와서 우리가 나오길 기다렸는데 이상했다. 갈 만한 곳을 돌아보아도 전혀 기색이 없다. 여우가 물어갔나 뱀에게 잡혀 먹혔나, 아니면 누군가 가져갔나 벼라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토순이를 부르는 내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던 중이었다. 남편이 떨리는 목소리로 찾았다고 소리 질렀다. 급히 가보니 차고 구석 찬 콘크리트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불안한 가운데 몸을 만져보니 이미 싸늘해져 있었다.
전 날 토순이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차고 문을 닫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차라리 함께 들어왔더라면 밤 사이 서로를 찾지도 않았겠고 죽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막혀왔다.
불쌍한 토순이...
시어머님은 18세 되던 해에 시아버님과 함께 살기 시작하셨다. 잠시라도 아내가 안 보이면 안 될 것 같은 분 옆에서 7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셨다. 본인 스스로 건강을 챙기며 음식을 드시는데도 아내가 가능한 옆에 있어야 했다. 심한 어지럼증을 가지고 계신 어머니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92세가 되셨어도 건강하셨는데, 먼저 하늘로 떠나셨다. 아내와 딸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꼭 하시겠다고 계획까지 세우셨었는데,
불쌍한 아버님...
혼자된 토돌이는 전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는다. 이제는 담요가 깔려있는 차고의 구석에 앉아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듯하다.
불쌍한 토돌이 ...
남편 곁을 떠나 친구와 여행하는 것이 소원이셨던 어머니, 이제 그 소원을 이루실 수 있는데도 집을 떠날 생각을 안 하신다.
돌아가시기 전날 밤, 모처럼 따듯한 물로 씻어주었던 남편의 발이 가끔씩 기억날 듯하시다.
불쌍한 어머님...
삶 그리고 암/ 송정은
우리 삶의 앞날을 조금이라도 미리 알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불행을 막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올해 초에 유방암 정기 검진을 했다. 매 2년마다 받아왔었다. 그런데 이사를 하면서 검진 용지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신청하였고 마지막 검사로부터 3년이 다되어서야 다시 받게 되었다.
검사 일주일 뒤쯤 작은 종양이 보이니 다시 정밀 검사를 해야 된다는 연락이 왔다. 세포 조직 검사로 악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사는 종양 크기가 아직은 작으나 1, 2년 뒤에는 커질 수 있으니 가능한 한 빨리 수술하라고 권유했다.
어두운 내 표정을 보았는지 염려 말라며 간단한 수술이 될 것이고 작을 때 발견된 것은 행운이라며 안심시키려 했다. 종양이 작을 때 발견할 수 있는 호주의 가슴 정기검진 제도를 자랑하는 것도 같았다.
수술을 순간 망설이기도 했으나 실력도 경험도 있어 보이는 남자 의사의 권유를 따르기로 했다. 사실 몇 년 전 아는 사람이 유방암 2기였는데, 자연치유 요법으로 치유해 보겠다고 한국에 있는 요양원에 갔었다. 그곳에서 얼마간 머무르다 돌아와 뒤늦게 수술을 받기는 했지만 다른 곳으로 전이되었고, 결국 죽음을 맞이했었다. 그녀가 암으로 고생할 때만 해도 내가 걸릴 수 있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 당시 자기 남편에게 크게 실망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암에 걸리지 않았나 추측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암이라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힘들기는 했지만 종양도 작고 수술하면 된다는 의사 말에 위로를 삼았다. 놀라는 남편과 아들에게 걱정 말라며 오히려 안심을 시켰다.
그 후 인터넷으로 암 예방과 치유에 관한 여러 관련된 정보들을 보며 얼마나 잘못된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일단 제일 안 좋은 설탕을 끊고 하얀 쌀과 밀가루를 가급적 피했다. 당분간은 유제품과 고기도 먹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고 채소와 과일 위주로 식단을 바꾸었다.
수술을 받고 집에 돌아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아프지 않아 간단한 수술이라는 의사 말이 사실 같았다.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의 친절에 기분도 좋았다.
일주일쯤 지나 수술 결과를 알려주겠다며 병원에서 오라고 했다. 상처가 잘 아무는 듯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혼자 운전을 해서 갔다. 의사는 수술 과정이 쓰여진 병원 서류들을 보며 말했다. 수술하면서 보니까 사진에는 없던 작은 종양들이 안쪽으로 여러 개 있었다, 잘 도려내었지만 림프선까지 전이되었을지도 모르니 2차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에 이제는 진짜 암 환자란 기분이 들었다. 맥이 쭉 빠져 나는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고, 그대로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는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알리지 않았다. 아들 현이가 친정 엄마에게는 첫 손자이다. 그래서인지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어 자주 전화로 사소한 이야기까지 주고받는 사이다. 별일 없느냐고 묻는 할머니 말에 엄마가 암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엄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이제는 몸 아껴가며 일하라, 돈 아끼지 말고 맛있는 것 사 먹으라고 하셨다. 또 호주에서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냐고 덧붙이셨다.
그 말에 호주에서의 지난 삶이 스쳐 지나가면서 몸에 무리가 오는 줄도 모르고 앞만 바라보며 살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곁에서 챙겨주지도 못하고 멀리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는 엄마의 마지막 말에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엄마와 나는 서로 말을 잇지 못하고 한참을 전화기만 붙들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참았던 것인지 전화를 끊고도 계속 눈물이 났다.
암세포가 깨끗이 없어지게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성경 구약의 레위기란 책에 음식을 선택하여 먹으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그렇게 살지 못했음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하나님은 6일은 열심히 일하고 7일째는 안식을 하며 쉬라는 안식일을 계명으로까지 만드셨었다. 말씀이 아니더라도 몸이 고단하면 쉬어야 했는데 열심히 일하는 것을 최고로 여기며 살았던 것이 후회되었다. 그러면서 자식이 병들면 부모의 마음이 아프듯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똑같이 안타까우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화력이 좋아 아무거나 먹어도 건강할 것이라는, 지금 좋으니 계속 건강할 것이라는 착각을 했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자만심이라 해야 할까 무지라 해야 할까, 이제는 건강한 미래를 위해 바르게 식사할 것을 다짐한다. 몸이 피곤하기 전에 쉬어주고 적당한 운동도 하여 현명한 삶을 살아야 하겠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성경의 말씀을 따라 육신만이 아니라 영혼을 위한 준비도 해야겠다. 볼 수 없는 미래지만 느낄 수 있는, 죽음 뒤의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말이다.
2차 수술이 끝난 뒤, 다행히 림프선까지는 전이가 안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약간은 안심이 되었고, 지금은 방사선 치료를 열심히 잘 받고 있다.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주님, 남편과 아들, 가족들, 격려와 위로 그리고 기도를 아끼지 않는 친구,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엄마의 변화/ 송정은
"여자와 집은 가꾸기 나름이다 ".
엄마는 이 말을 입에 달고 사시며 항시 집안을 깔끔하게 정돈했고 아침에 일어나면 얼굴에 화장부터 하시는 부지런한 분이셨다. 음식 솜씨 또한 일품이셔서 우리 집을 방문하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엄마의 살림 솜씨를 칭찬하며 부러워하셨다.
그러나 바로바로 치워야 하는 깨끗한 집이 내겐 편치 않았다. 학창 시절 학교 갔다 집에 오면 너무도 깔끔히 치워진 책상과 방이 오히려 짜증이 날 때도 있었다. 때론 공부하던 책이 펼쳐진 상태로 입던 옷은 침대 위에 올려진 채로 적당히 나른하게 주인을 기다리는 것이 훨씬 더 편할 것 같았다.
결혼한 후에도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역시 여자와 집은 가꾸기 나름이니 집에서도 늘어진 고무줄 바지 입지 말고 몸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정리 정돈하여 누가 언제든 너를 봐도 깨끗한 이미지를 남기라는 말이었다. 그래야 무시당하지 않고 대우받을 수 있다고 하셨다. 무엇보다 그러한 집에 앉아 있으면 너부터 기분이 좋고 행복해진다는 말이었다.
친구들은 친정엄마가 오면 반갑고 좋아했는데 나는 청소 검사하러 오는 것 같아 마냥 걸레를 들고 다니며 부지런히 닦아야 했다. 닦는다고 닦는데도 이상한 것은 엄마의 눈에는 먼지와 더러운 부분이 너무도 잘 보인다는 것이다. 지금도 궁금한데 왜 내 눈에는 안 보였는지 모르겠다.
작년 5월 거의 10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여 친정에 머물게 되었다.
아버지는 나이에 비해 너무도 정정해서 놀랐고 엄마는 생각보다 너무 늙어 있어 슬펐다. 여전히 쓸고 닦으시는 그녀 그런데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배달 음식들과 여러 반찬들로 어지러이 꽉 차 있었다. 이러면 엄마의 냉장고가 아닌데 어쩐 일이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어야 할 냉장고가 웬일인지 낯설다. 팔을 걷어붙이고 냉장고를 정리하기 시작해서 다용도실까지 신경 쓰느라 꼬박 이틀이 걸렸다. 엄마는 평생 누가 와서 정리를 해 주는 것은 처음이라며 고마워했다.
그 누가 그녀 집을 정리할 생각을 했겠는가 나도 엄마 살림을 정리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었는 데...
집안 살림만큼 크게 변한 것이 한 가지 더 있었는데 바로 까다로웠던 성품이 변해서 예전과는 다르게 많이 푸근하고 편하게 상대방을 대하셨다.
이러한 변화는 몇 년 전 나의 암투병 소식을 들은 후부터가 아닌가 싶다.
이 소식이 엄마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큰 걱정을 안긴 것이 죄스럽고 가슴이 아픈 나에게 엄마는 더 이상 여자와 집은 가꾸기 나름이다,라는 말씀은 안 하셨다. 이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살아온 그녀의 말은 "살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편하게 마음먹고 몸조심해라."는 말로 바뀐 것이다. 떨리는 목소리에서 엄마 눈의 눈물이 보이는 듯했다. 아니 내 눈의 눈물이었는지...
며칠 전 엄마가 치매 초기 판정을 받았다는 걱정스러운 소식을 들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 본다.
별일 없이 잘 지내고 계신다고는 했으나 여전히 하시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해서
하신다.
"너무 애쓰지 말고 편하게 마음먹고 살아라 몸조심하고."라고 말이다.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몇 년 전 나의 암투병 소식을 들었을 때 엄마의 심정도 이랬겠다 싶다고 생각하니 참았던 눈물이 툭 떨어졌다. 네! 내 걱정 마시고 엄마도 꼭 말씀처럼 편하게 맘먹고 몸조심하세요.
친정 방문을 좀 더 자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흐르는 눈물을 닦을 뿐이었다.
커피브레이크/ 송정은
목사님은 추운 날씨에 아이들의 하교를 기다리는 엄마들이 밖에서 떨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워 교회 안으로 들어와 따뜻한 커피 한잔 하며 몸을 녹이라고 권유하게 되었습니다. 학부모들은 목사님에게 조심스럽게 성경에 대해 평소 궁금해하던 것들을 질문하며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만남이 정기적인 모임으로 발전된 것입니다. 커피브레이크 소그룹은 강사나 인도자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성경공부가 아닙니다.
성경의 일부분 대략 반 페이지 정도를 선택해서 간단하게 질문과 답을 하며 맞춤형 귀납적으로 그 부분에 등장한 인물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합니다.
더 나아가 저자와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해 보며 서로 다른 생각들을 나눠봅니다. 직접 발견한 기쁨도 느끼며 나라면 그 상황에 어떻게 했을까, 가장 현명한 선택은 무엇일까 하는 적용도 해보며 대화를 마무리합니다.
이 소그룹의 특징은 성경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인도자는 가능한 들어주는 자세로 해야 하고,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다만 그 부분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상황을 설명해 주면 좋습니다. 참가자들 스스로 적응과 성장하도록 도와주면 됩니다.
우리 교회가 '커피 브레이크 ' 모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을 받고 실제로 8개의 모임을 한 지 6개월 정도가 지났습니다.
커피 브레이크는 70년도에 만들어진 역사가 있는 모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신선하고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