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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관 Jul 16. 2021

문학인가? 삶인가?

호주 퀸스랜드 한인 문학회

어느덧 만 16년이 되었다. 문학은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줄 알았었다. 그랬던 내가 퀸스랜드 한인 문학회 멤버로 16년간 참여하고 있다. 16년 전 퀸스랜드 주 최초 주간지였던 비전 매거진이 통권 100호 기념으로 퀸스랜드 문예대전을 개최했고 수상자들과 문인들이 모여 문학회가 결성되었었다. 2005년 8월 4일 퀸스랜드 한인 문학회가 브리즈번에서 창단된 것이다. 나는 문예대전을 개최한 비전 매거진의 담당자로서 처음 결성된 문학회를 격려하기 위해 창단 멤버로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학인가, 삶인가?
사람들이 모여 문학회 활동을 하는 이유가 글쓰기를 더 잘하기 위해서 일까? 아니면 문학을 통해 서로의 삶을 나누기 위해서일까? 둘 다 이유가 되겠지만 아마도 사람마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문학회 활동을 한국에서는 해 본 적이 없어 잘 모르지만 해외에서 문학회의 의미는 아마도 문학 자체보다 삶의 나눔에 무게중심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지난 16년간 퀸스랜드 한인 문학회에 많은 사람들이 멤버로 참석하다가 떠나갔고 2021년 7월 현재 18명의 회원들이 남아있다. 그동안 문학회를 떠난 사람들은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어쩜 문학회의 본질을 회원들 간의 삶의 나눔보다는 문학 자체에 더 많이 둔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하지만 암묵적으로 최대 회원 숫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열여덟 명의 현재 멤버들 다수는 아마도 문학 자체보다는 이민 생활하면서 경험하는 삶의 나눔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선 건강과 돈도 있어야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민자들이 고국에서보다 종교단체에 더 많이 가입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타국에서 생존의 불안과 외로움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지키기 위함이 크겠지만, 일가친척이 없는 낯선 곳에서 가족의 대소사가 생길 때 종교단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또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외국 땅에서 특히 가족 상을 당했을 때 자신이 속한 교회나 절의 도움은 큰 힘이 된다. 그렇다면 무신론자이거나 특별히 종교생활에 관심이 없어 어떤 종교단체에도 소속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대한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을까?

현재 퀸스랜드 문학회 회원의 연령대가 40대 후반부터 80대까지이고 작년엔 오랫동안 함께했던 멤버 중 한 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그리고 또 그 길을 회원 모두도 머지않아 따라갈 것이다. 처음 겪었던 이번 문학회 회원의 장례식 참여를 계기로 멤버들 간의 유대관계가 더 깊어짐을 느낀다. 죽음이란 주제가 무심한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문제로 무겁게 다가왔기 때문이리라.

문학인가, 삶인가?
퀸스랜드 문학회 역사가 16년이 된 이 시점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신앙이 아닌 문학을 매개체로 모였지만 문학회 안에서 삶을 함께 나누고 만들어가다 삶을 마감하는 것까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종교 단체보다도 의미 있고 경건하며 행복한 공동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문학의 열정이 앞서서 발표자가 어렵게 써온 작품을 신랄하게 비평하기보단 먼저 그 글을 쓴 회원을 따뜻하게 격려하고 글의 형식보단 내용을 통해 작가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공감해주며 글을 통해 회원들의 삶과 생각을 함께 나눈다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임이 되겠는가? 그럴 때 멤버들은 공동체 일원으로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느끼면서 문학적인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을 벗고 글을 더 진솔하게 쓸 수 있게 될 것이고 결국은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물론 더 나은 글쓰기를 위한 진솔한 조언은 멤버들에게 글쓰기에 대한 귀한 배움이 됨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문학을 매개로 오랫동안 함께 삶을 나누었던 문학회원들이 가까이 있어 자주 만나 밥도 같이 먹고 와인도 함께 마시며 산으로 바다로 여행도 같이 가고, 지속적으로 글을 써서 나누면서 삶을 성찰하고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이 어찌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어느 날 죽음을 예감할 때 뒷일을 부탁할 수 있는 그런 친구들이 되어 준다면 이 낯선 이방 땅의 외롭고 두려운 삶이 얼마나 행복하고 평온한 삶이 될 것인가?

문학인가, 삶인가?
문학을 통한 삶의 깊은 만남과 나눔이라면 이 어찌 아름답다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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