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담 없이 쉴 수 있는 축제의 날 토요일입니다.
하지만 나는 밥을 사서 먹으려면 돈을 벌어야 한답니다. 나도 아내랑 외식을 하면서 즐겁게 보내야 하니까요.
오늘도 행운은 오고야 마는군요. 한 아주머니가 Precious 이름을 그려 달랍니다. 그런데 이름 위에 R.I.P 글씨를 함께 추가해 줄 수 있느냐고 하더군요. 갑자기 내 마음이 숙연해졌답니다. RIP은 'Rest In Peace' 즉 '평안히 잠들다'의 뜻으로 죽은 사람 비석에 새기는 문구이었기 때문이지요.
이름이 프레셔스(고귀한)이니 사랑하는 딸이 죽었나 해서 누구의 이름이냐고 묻지도 못했습니다.
이름을 다 그리니 아래에 '2002~2020'을 더 추가해 달래서 적어 주었지요. 그러니까 18년 살았군요. 자식을 낳아 사랑으로 키웠는데 성인이 되는 18세에 죽는다면 그 마음이 어떨까요? 조용히 그림을 액자에 넣어 주었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너무 예뻤다면서 사진을 보여주더군요. 하얀 털을 가진 멋진 백마였습니다.
사실 그동안 죽은 사람들 이름도 많이 썼지만 죽은 동물 이름도 많이 썼지요. 얼마 전엔 장례식에 필요하다고 주문한 죽은 생쥐 이름도 몇 개 쓴 적이 있었답니다. 좀 이해는 안 되지만 이 생쥐는 주인에게 큰 의미가 있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운 생각이 들지만 누구도 자신의 죽음을 경험할 수는 없는 거 같습니다. 종교를 통해 인식된 죽음 후 지옥이니 극락이니 하는 관념에서 자유롭다면 사실 자신의 죽음은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지요. 죽기 전 고통이 심할까 봐 두렵기도 하겠지만 요즘엔 통증을 없애주는 약이 많아서 크게 문제 될 것 같진 않고요. 그리고 나에게 큰 의미가 없는 사람들의 죽음 또한 문제 될 건 없지요. 다만 나의 죽음이 문제 되는 건 나를 사랑하고 나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남겨진 사람이지요.
나에게 그런 존재는 누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