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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관 Mar 12. 2019

행복한 결혼

Happy marriage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명작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이다.


이 말은 행복한 가정은 행복의 요소들을 모두 공유하고 있어 비슷해 보이지만 이 것들 중 하나라도 빠지면 불행할 수 있어서 이유가 저마다 다르다란 뜻이 아닐까?


아침에 일어나 먼저 아내의 기분을 살핀다. 아내의 눈치를 보면서 마음이 위축된 지 벌써 한 달은 된 것 같다. 며칠 전 아내가 침대에 누워 흐느꼈다. 싫다는 것을 억지로 안아 토닥이며 괜찮다고 위로를 하였지만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한 달 전만 해도 우리는 일이 끝나고 숙소에 들어오면 막춤을 같이 추면서 킥킥거리다 즐겁게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곤 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긴장 속에서 냉랭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행복한 결혼을 지속한다는 것, 계속 편안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참 어렵다고 느껴진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이 무엇인가라고 묻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난 이렇게 행복한 결혼이 무엇인지 오늘도 계속 질문하고 있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유명한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고 배우고 훈련해서 습득해야 하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은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기 위해선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어야 하므로 남자들은 돈과 지위를 높이기 위해 애쓰고 여성들은 매력적인 외모를 가꾸기 위해 노력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와 브론스키의 비극적인 사랑이 떠오른다. 격정적인 감정으로 시작해 냉담과 증오로 끝나버린 그들의 불행한 사랑은 아마도 사랑을 상대방으로부터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랑의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의 필요를 채워주고자 결혼할 때  둘은 계속 성장해 갈 수 있고 그들의 삶은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사랑은 둘의 경험으로 두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부부는 누가 높은 것도 그렇다고 평등한 것도 아니고 서로에게 복종하는 관계인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사랑하는 상대를 항상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복종하고 대접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한 결혼을  지켜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사랑의 기술이 부족한 탓일까? 지천명의 나이가 지나 이순을 향해가는 나이임에도 우울한 아내의 마음조차 읽어내는 게 참 어렵다. 아내가 행복해하지 않는 것이 내 잘못 때문이란 생각으로 내 마음은 움츠러들고 무능한 내 자신이 한심하단 생각이 든다. 이 불편한 관계를 자연스럽게 잘 풀어서 아내가 다시금 참새처럼 즐겁게 살아가게 해야겠지만, 이렇게 마음이 우울해질 때는 문제 해결을 위해 뭘 해보기보단 나만의 동굴로 들어가 숨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먼저 든다.


니체가 "운명을 사랑하라"라고 한 뜻은 운명을 사랑스럽게 만들어가라는 뜻일 텐데 아내를 사랑한다면 아내를 사랑스러운 존재로 만들어가야 할 것 아닌가? 얼마나 많은 훈련과 수행으로 이것이 가능한 것일까? 내가 과연 이처럼 싸늘해져 전혀 사랑스럽지 않은 듯한 아내를 다시금 천진하게 웃고 떠드는 사랑스러운 아내로 만들 수 있을까?


아내와 즐겁게 지낼 때 잠시 잊고 있었던 인간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출생 시 엄마로부터 분리될 때 겪었던 분리감의 두려움을 무의식 속에서 갖고 살아가다가 결국엔 홀로 죽어가야 하는 고독하고 외로운 실존적 존재이다. 에리히 프롬은 이런 고독한 분리감을 해결하지 않고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없는데, 이 근원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누군가를 사랑하여 그와 연합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근원적으로 고독한 존재인 나의 삶에 아내가 함께 있어주어 그동안 행복했었다고 생각하니 새삼 아내에게 고마운 생각이 든다.


새로운 하루가 다시 시작되었다.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용기를 내어 아내에게 대화를 신청했다. 그리고 내 속상한 마음을 솔직히 다 털어놓았다. 당신한테 항상 고맙고 사랑하지만 나도 이젠 여성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는지 어두운 당신의 표정을 보면  먼저 기분이 나빠져 당신을 예전처럼 대하기 어렵다. 당신이 냉담할 땐 나는 한없이 자신감이 떨어지고 당신에 대한 사랑도 다 메말라 버린 듯하다. 이젠 당신도 남성 호르몬이 나올 때가 되었는데 왜 좀 더 성숙하게 감정을 처리해 내지 못해서 오랫동안 서로 힘들게 하느냐고 불평을 쏟아냈다. 그렇지 아니한가? 왜 남자는 항상 아내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는가? 아내도 노력해서 적당히 분위기를 조절해야 힘든 관계가 다시 좋아지지 않겠는가?


행복한 결혼은 한편만 노력해서도 안 되고 서로 사랑의 기술을 배워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노력해 나갈 때 이룰 수 있는 값비싼 결과인 듯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봄이 온 것이 아니듯이 사랑의 기술은 한 번의 실천이 아닌 지속적인 실행을 통해서 행복한 결혼이란 달콤한 열매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내는 가정의 해이고 남편의 가슴속에 떠있는 밝은 태양 같은 존재이다. 일단 아내의 얼굴에 구름이 끼면 남편은 아내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한 자책감에 괴로워하며 자신의 동굴로 깊숙이 들어가려 한다. 아내여 할 말은 솔직히 알아듣게 말해주고 얼굴에서 그늘은 너무 오래 짓지 말아 다오. '해피 와이프, 해피 라이프'라고 남편은 자신의 행복과 인생의 성공을 아내의 표정에서 찾는다오.


여성 호르몬이 분비되는 나이가 되어 감정 조절이 잘 안 된다는 내 말에 아내는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그리고 아직도 자기를 미성숙한 어린아이 취급한다며 한바탕 내 두 귀를 잡아 뜯으며 옥신각신하다 결국 부둥켜안고 서로 웃음을 터트리고 나니 우리의 가슴도 뻥 뚫려 후련해졌다. 그리고 아내는 그동안 서운했던 이유를 설명했고 나는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내 깊은 마음을 세세히 말해주어 그동안의 오해를 풀었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더니 우리의 냉전도 이리 또 끝났다.


어쩜 행복한 결혼은 운 좋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맛볼 수 있는 특별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리히 프롬이 말한 것처럼 사랑도 기술이라고 믿고 사랑의 기술을 배워서 꾸준히 실천한다면 행복한 결혼을 얻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성경에서도 솔로몬의 인생론인 전도서에서 "인생의 행복은 아내를 기뻐하고 하는 일을 즐기는 것"뿐이라고 했듯이 인생의 행복의 원천은 행복한 결혼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톨스토이가 행복한 가정은 이유가 다 비슷하다고 말한 것이 이런 것들 아닐까? 배우자의 존재 자체를 고마워하고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바라보고 서로에게 복종하는 것. 소박한 삶에 만족하고 같이 춤을 추면서 웃고 즐기는 것.  그리고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배우자를 항상 격려하며 함께 성장해 가는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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