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내의 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관 Jul 21. 2023

한밤중의 수다

친구

한밤중의 수다 

                     / 호선자


3월 어느 날  갑자기 밤 11시가 넘은 시각에 중학교 동창 친구인 은하에게서 온 전화로 내 핸드폰이 울렸다. 난 잠결에 바로 못 받고 '잘못 걸었나? 무슨 일이 있나?'생각하며 궁금증을 안고 친구에서 전화를 했다. 친구는 기분이 업된 목소리로 "너 잤니?"라고 해서 "잠들었었는데, 괜찮아?" 하면서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봤다. 친구는 "우리 남편이랑 내년 1,2월쯤에 호주 너희 집에 가려고"라고 했다. 나는 흔쾌히 "그럼 너무 좋지"라고 했다. 몇 년 전 한국에서 만났을 때 우리 남편이 꼭 오라고 하면서 호주 구경시켜 주겠다고 했는데 그때 못 간 것이 너무 후회스러웠다고 했다. 그 이후에 코로나로 인해 올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서 더 후회했을 것 같다. 친구 남편이 연구직인데 승진을 해서 내년에 한 달 유급 휴가를 받게 되었다며 친구는 흥분해 있었다. 흥분한 정도와 말하는 톤이 알코올의 영향이 있는 것 같아 "너 얼마나 마셨냐?"물었더니 "와인 2잔 마셨어"라고 했다. 서로 안부를 묻고 아이들 이야기가 나와서 너 아들 딸은 잘 지내냐며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친구 딸을 바꿔 주어서 인사를 나누고 "너희 엄마 술 얼마나 마셨니?" 했더니 맥주 1500 cc와 와인 2잔 마시고 있다고 하면서 친구 딸은 웃었다. 친구가 다시 전화를 받아서 "그 정도 술의 양이 너를 이 정도 업 시키는구나"라고 말했다. 친구는 "그래 지지배야"하면서 까르르 웃었다. 우리의 수다는 계속되었다. 서로 식구들의 안부를 묻고 이번에 얼굴도 안 보고 그냥 가서 서운 했다이야기했다. 갑작스러운 시아버님의 장례로 인해 한국을 가게 되었는데 장례식에도 참석 못하고 납골당에만 갔다가 바로 자가격리 일주일 하고 식구들만 잠깐 보고 왔었다. 한국에 코로나 확산이 너무 많이 되어서 사람 만나는 것을 서로 조심하는 상황에 친구에게 만나자고 연락하는 것은 민폐인 것 같아 호주 도착해서 나중에 알면 서운할 것 같아 자초지종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는 가서 너희 남편 위로도 해 드리고 너 얼굴도 보면서 맛난 것도 먹고 하면 좋았을 텐데라면서 많이 아쉬워했다. 그런 말을 해주는 친구에게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친구와의 수다는 계속되었다. 우리가 중학교 때 만나서 얼마나 재미있게 지냈는지를. 난 초등학교 시절에는 몸이 안 좋아서 많이 결석한 탓에 학교 수업도 따라가기 힘들었고 또 내성적인 이유로 집안에서만 지낸 날들이 많았다. 그리고 1월이라서 일곱 살에 학교를 들어가서 다른 동급 친구들 대부분은 한 살 위의 아이들이었는데 그것이 날 주눅이 들게 했다. 같은 반 아이가 어떻게 알았는지 나에게 "언니라고 해"라고 말해 난 내색은 안 했지만 마음에 상처가 되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은하를 만났다. 같은 동네에 살았고 그 친구도 빠른 생일이었다. 그 친구는 성격이 너무나 발랄해서 그 친구를 무척 닮고 싶었다. 나와 정 반대로 성격이 아주 밝고 장난기가 가득 찬 친구였다. 그 친구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는데, 청소 시간이면 빗자루를 들고 서로 잡겠다며 의자며 책상이며 올라 다니면서 장난을 쳤다. 이렇게 내 안에 숨어있는 장난기와 웃음기를 찾아준 고마운 친구였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려면 지하상가를 지나야 하는데 쫄면, 떡볶이 집을 그냥 지나지 못했다. 쫄면을 주문하고 기다리면서 수북이 쌓여있는 삶은 계란을 서로 장난하면서 까먹는 맛 또한 최고였다. 같이 먹고 싶은데 그 친구가 돈이 없으면 내가 사 주고 내가 돈이 없으면 그 친구가 사 주면서 빛나는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친구와  옛이야기를 하면서 오랜만에 14살 여중학생이 된 기분으로 얼마나 깔깔 웃었는지... 우린 서로의 집에도 자주 놀러 갔는데 그 친구는 우리 집에 오면 우리 엄마가 짬뽕 짜장면을 시켜 주어 그때 너무 잘 먹은 기억이 있다며 지금 내가 한국에 없으니 너희 엄마한테 필요한 것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이야기하라고 한다. 말만 들어도 그냥 마음이 든든하고 고마웠다. 올해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뀐 우리는 또 서로의 건강을 염려하면서 그 친구는 지난달에 코로나 확진도 아닌데 너무 아파서 응급실을 갔었다는 이야기를 해서 친구의 건강을 걱정했다. 이번에 얼굴도 못 봐서 서운하다면서 오늘 친정어머니집에  갔었는데  이야기를 했더니 넓은 아파트에 혼자 사시니 다음에 우리 부부 한국 나올 때는 어머니집에 꼭 와서 묶고 가라고 이야기하셨다고 한다. 친구도 다음에 올 때는 우리 엄마 집에도 있고 우리 집에도 있으라고 했다. 한국에 갈 때 친구를 만나면 친구 엄마 한번 뵙고 인사드려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친구의 말을 들으니 다음에 가면 꼭 인사드리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건강하고 나는 친구에게 꼭 호주 오라고 하면서 또 연락 하자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 친구와는 내가 호주에 오면서 연락이 끊겼었다. 내가 호주에 몇 년간 정착하느라고 정신없이 살다가 내 옛 전화번호 수첩을 보게 되었는데 이 친구 연락처가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락을 했었는데 이 친구가 전화를 받아서 연락이 되었다. 이 친구는 아이들 키우면서 공부를 해서 대학원까지 나오고 대학 강사직을 하고 있었다. 한국 갈 때마다 여러 번 만났다. 그런데 나는 중학교 때의 추억의 친구를 만나는데 세월이 지난 친구가 좀 어색하고 나하고는 거리가 느껴졌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한국과 호주 사이를 잇는 전화 통화로 여중생 시절로 돌아가 까르르 까르르 웃으며 그 시절 이야기를 하고 나니 서먹했던 우리의 거리가 단숨에 다시 가까워져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의 수다를 떨고 잠을 자려니 그 시절의 은하와의 추억들이 더 생각이 나서 바로 다시 잠에 들지 못했다. 나도 언제 친구에게 한밤중에 전화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보면서 여러 추억에 잠겨 있다가 잠이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복 입은 부사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