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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관 Oct 18. 2023

호주 일터에서 일주일 단상

Life continues!

오늘은 10월 3일 일요일이군요. 일요일은 휴일이지만 내일 다시 학교나 일터로 돌아가야 하기에 마냥 즐겁게 놀 수만은 없는 날인 것 같습니다.


34년 전 오늘 나는 호주행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을 떠났던 뜻깊은 날입니다. 내 인생에서 최고의 선택이었지요. 어쩌면 그날부터 노마드의 삶이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푸른 초지를 향해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났고 오늘도 나는 Rocky땅을 출발해 Bundy 땅으로 왔지요.


새로운 초원을 향해 가다 보면 때때로 특이한 광경을 목격하기도 한답니다. 오늘 발견한 숨겨진 보석은 Agnes Water에 있는 Paperbark Trail이었지요. 종이껍질 나무들이 꽉 들어찬 숲 속에 징검다리가 놓여있는 로맨틱한 트레일이었습니다. 비가 와서 물이 흐르면 더 낭만적이었을 것 같더군요.


오늘부터 한주는 34년 추억을 더듬어 볼 수 있는 농장 노동자들이 머물고 있는 백페커스 숙소에 체크인하였답니다. 번다버그에 워킹홀리데이로 와서 토마토 농장에서 일할 때 워낙 토마토를 잘 따서 농장 주인의 신임을 얻어 성공하여 번다버그에 백패커스를 두 개나 사서 운영하는 젊은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곳입니다. 5년 전쯤 새로 지어 워홀러 150명이 숙박할 수 있는 백패커스인데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겨우 27명이 머물고 있다는군요. 그래도 코로나 전에 수년간 장사가 잘 됐을 때 돈을 많이 벌어놓아서 지금껏 별 어려움 없이 운영해 오고 있는데 백패커스를 새로 짓고 바로 코로나가 시작됐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물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있나 봅니다. 나도 언제 일을 할 수 없을지 모르니 지금 일할 수 있을 때 열심히 노를 저어야겠습니다. (2021. 10. 3. 일)


오늘은 10월 4일 월요일인데 여왕생일이라고 공휴일입니다. 그런데 10월 4일은 나에게도 특별한 날입니다. 34년 전 한국을 떠나 호주 시드니 공항에 도착한 날이거든요. 86년도에 군대를 병장으로 전역하고 고심한 후 대학 3학년 2학기로 복학하는 것을 포기하고 호주로 유학을 가기로 결심하여 87년 오늘 생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호주로 오게 된 겁니다.


미국이 아니고 호주를 택한 것은 호주에서는 유학생도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어서 돈을 벌면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역 후 일을 하면서  20개월 정도 토플시험공부를 한 후 호주 대학으로부터 조건부 입학허가서를 받아 여권을 취득할 수 있었고 비자를 받았었지요. 겨우 마련한 돈으로 3개월 어학연수비 1백만 원과 편도 항공료 50만 원 그리고 유학원 알선료로 60만 원을 지불하였었답니다. 그리고 호주행 비행기를 탔을 때 내가 가진 돈은, 도로에서 생선장사를 하시던 어머니가 친구분들께 빌려서 주신 1백만 원과 ROTC복무 중이던 친구가 쥐어준 30만 원이 전부였지요.


싱가폴 항공을 타고 22시간 만에 시드니 공항에 도착해 마중 나온 분이 데려다준 곳은 시내에서 기차 타고 걸어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한국 아저씨가 혼자 운영하던 하숙집이었습니다. 조그만 집에 17명이 있었고 한방에 5-6명씩 잤는데 이불도 베개도 제공되지 않았었죠. 아직 쌀쌀한 날씨였지만 카펫이 깔린 맨바닥에서 한국에서 가져간 이불을 덮고 4리터 박스와인 봉지에 바람을 넣어 베고 잤었더랍니다.


이렇게 시작된 호주에서의 삶은 생존을 위해 맨땅에 헤딩하는 것이었고 수많은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났고 지금도 어느 길 위에서 살아가고 있지요. 그런데 그 길에서 만난 행운이 수도 없이 많아 나 혼자 외롭게 걷던 길에 열 명의 가족이 생겼고 비록 은행론이 있지만 집도 하나 있고 흙 장난할 만큼의 땅도 생겼답니다. 뒤돌아보니 모두가 꿈같고 기적 같습니다.


오늘은 여왕생일이라고 일도 하지 못해 밥 사 먹을 돈도 벌지 못했으니 백패커스 주방에서 누룽지탕이나 끓여 먹고 생 고구마나 하나 깎아서 먹어야겠습니다. 당신에게도 행운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2021. 10. 4 월)


오늘은 10월 5일 화요일인데 어제 공휴일이어서 오늘부터 한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푸른 초지를 찾아 새로운 땅으로 건너왔는데 내 그림을 사겠다는 손님은 오지를 않고 왠지 황량한 사막 같은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하지만 사막에도 오아시스가 있고 숨어있는 우물이 있어 아름다운 것이니 나는 절망하지 않고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 샘플 그림들을 그리지요.


삶은 매일 각자가 짊어진 운명 같은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오르는 것 같습니다. 하루의 해가 지평선을 넘어갈 때 힘겹게 등에 지고 온 짐을 산 정상에 내려놓고 쉬려 하지만 그 짐은 다시 굴러 떨어져 내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 인생의 운명이라면 어찌하겠습니까. 까짓 거 굴러 떨어진 짐을 기꺼이 다시 지고 웃으며 운명의 산을 오르십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쇼핑센터 일터에서 한가하게 의자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데 트롤리 맨이 힘차게 트롤리를 밀면서 내 앞을 지나갑니다.


트롤리 맨


주차장 곳곳에 흩어진 트롤리 모아

비탈 위 마트로 옮기는 그대는

저 그리스의 영웅 시지프스


기다란 트롤리기차 힘껏 밀어붙일 때

그대 두 다리 근육은 불끈 솟구치고

그대 이마엔 굵은 땀방울 맺힌


트롤리 베이에 힘겹게 옮겨놓은 트롤리

신들의 장난처럼 인간들이 몰려들어

주차장에 흩어 버리고 홀연히 떠날 때

담배 연기 한 모금 하늘로 하얗게 뿌리고

또다시 주차장 트롤리를 힘껏 밀어붙인다


다시 또다시 생의 기가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트롤리기차 밀어붙이는 그대의 얼굴은

어느덧 행복한 성자의 모습

오늘도 어김없이 흩어버리는 인간들을 비웃듯

트롤리를 힘껏 위로 위로 밀어 올린다

(2021. 10. 5 화)


오늘은 10월 6일 험프데이인 수요일입니다.

오늘 아침엔 먼저 우체국에 들렸답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친구 아들의 결혼선물을 한국으로 부치러 간 것이었지요. 그런데 우체국에서 물건을 부칠수가 없었어요. 코로나 때문에 한국으로의 우편물 서비스가 중단되었다는 겁니다. 결혼식도 못 가는데 선물도 보낼 수 없게 되어 친구에게 면목이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선물은 늦더라도 꼭 보내려고 합니다. 결혼하는 친구 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을 적어놓았거든요. 이건 사실 내 아들과 사위들에게 더 당부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답니다. 여러분의 아들이 결혼할 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난 어제 오후, 한가한 틈을 이용해 친구에게 약속했던 친구 아들과 신부 이름을 정성껏 그렸지요. 이름 아래에 항상 사랑하고 살라고 Love always & forever를 적은 후 이름을 액자에 넣고 액자 뒤편에 이렇게 써 놓았답니다.


<결혼 3 계명 >

1. 항상 아내를 아껴준다.

2. 아내를 평생 주인공으로 대한다.

3. 아내의 성장을 계속 응원한다.

"Happy wife, Happy life"


오늘은 나도 아내를 아끼겠다고 일하러 나오지 말고 집에서 쉬라고 했는데, 아내는 나를 아끼겠다고 내가 좋아하는 시원한 김칫국으로 저녁을 준비해 놓았군요. 이렇게 또 행복한 하루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2021. 10. 6 수)


오늘은 10월 7일 목요일 쇼핑데이군요.

아침 5시에 일어나 우리가 머물고 있는 숙소인 번다버그(Bundaberg)의 토마토 백패커스에서 농장 일터로 출발하는 사람들 모습을 지켜보았답니다. 그리고 우리는 농장 대신 공원으로 가서 워킹을 했지요. 며칠 전 기사에서 뒤로 걷기가 엉덩이와 허벅지 안쪽 근육을 강화해 남성의 성기능 개선에 좋다고 해서 꼭 그런 건 아니랍니다.


이곳 번다버그는 땅이 황토흙인데 퀸스랜드에서 최고로 비옥한 땅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1년 내내  각종 농작물 수확을 하고 있어서 언제든 여기 오면 일이 있어 돈을 벌 수 있답니다. 지금은 피망을 따고 패킹하는 일을 하는데 시간당 $28을 준답니다. 아침에 3시간 픽킹 후 5시간은 패킹하는 일인데 어떤 사람들은 6개월 동안 이 일을 하고 있다네요. 하루 8시간씩 주 6일 일하면 $1,344을 벌 수 있으니 6개월 일하면 $34,944을 벌겠군요.


나도 호주 농장에서 일했던 추억이 있지요.

34년 전 호주 도착 2개월 후인 87년 12월 성탄절 다음날이었답니다. 일주일에 하숙비 70불씩 주면서 영어학교를 2개월 다니고 나니 가지고 온 생활비가 반으로 줄었고 누구한테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아는 나는 불안했지요. 특별한 기술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몸으로 때우는 일뿐이었지요. 처음에는 시드니에서 일을 찾아보았답니다. 처음 1주일은 한국 사람이 식당을 만드는 일을 돕는 노가다 시다 일이었는데 시급으로 4불 주더군요. 당시 보통 시급이 8불이었지만요. 그래서 그 일을 그만두면서 앞으로는 한국인 밑에서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죠. 그리고 커미션 베이스로 찾은 일인 오일 페인팅 세일을 1주일 했는데 5일 공치고 한 사람에게 68불어치 판 게 다여서 이 일도 그만두었더랬습니다. 그래서 성탄절을 보낸 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가방 하나 챙겨 시드니 숙소를 나서서 농장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던 Orange라는 타운을 향해 무작정 기차를 탔답니다.


시드니 센츄럴역에서 출발해 5시간 후쯤 오렌지에 도착해 기차역 옆에 있던 Pub 위층의 낡은 작은 호텔방을 주에 $50 주고 얻은 후 다음날 시내 자전거대여점에서 기어도 없는 자전거를 주 $20 주고 랜트해 농장을 찾아 나가 보았지요.


자전거로 한참을 타고 타운 밖으로 나가 보니 체리 농장이 있어서 무작정 들어가 주인에게 체리를 딸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경험이 있냐고 해서 있다 했지요. 그럼 끝물이지만 남은 거 따보라고 해서 체리를 하나도 따 먹어 보지도 않고 하루종일 땄더니 1킬로에 45센트씩 쳐서 45불 주더군요. 그것도 다음날 하루 더 따니 더 딸 게 없었습니다. 암튼 80불 정도 벌었으니 일주일은 먹고살겠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었지요 ㅎㅎ. 그런데 체리를 딴 경험이 없어 손가락 힘으로만 아래로 잡아당겨 따다 보니 집게손가락 마디가 욱신거렸습니다. 위 쪽으로 젖혀서 꺾어 따야 한다는 걸 경험이 없어서 그땐 몰랐던 거죠.


다음날에 정부에서 운영하는 Job centre에 가서 과일 따기 일을 구한다고 접수했더니 사과 따는 농장을 소개해주더군요.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두 시간이나 걸려 포기해야 하나 했는데 배가 고파 식품점에 라면 사러 갔다가 잡센터에서 보았던 한 호주인 남자를 만났답니다. 이 친구에게 그 농장을 소개해 주고 그 친구 차를 얻어 타고 농장에서 과일을 솎아내는(thinning) 일을 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시급 $8씩 받으며 하루에 8시간씩 일을 해서 주 5일에 세금 떼고 $250 정도 받았었지요. 경험이 없는 농장 일을 일주일을 하다 보니 호주의 작열하는 태양에 얼굴은 그을러 아프리카인처럼 까맣게 탔고 코피가 터졌지만 힘든 것보단 일이 곧 끝날 것 같다는 걱정이 앞섰답니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호주 농장 체험은 평생 추억으로 남아 있고 지금도 일이 없으면 언제라도 다시 농장에서 일할 준비가 되어 있지요. 삶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니 언제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지요.

모두 파이팅 하십시오.  Life continues!

(2021. 10. 7 목)


오늘은 10월 8일 금요일입니다. 주말이 시작되는 즐거운 날이지만 일주일의 피로가 쌓여 조금 힘든 날이기도 합니다.


아래 사진은 오늘 아주 인상적이었던 부부입니다. 밝은 베이지색 커플룩 옷을 입은 노 부부인데 본인들의 이름을 함께 쓰면서 43년을 함께했다며 이름 아래에 'In love forever'를 적어달라고 하더군요. 정성 들여 두 사람 이름을 그려주었더니 아주 행복한 얼굴로 팁까지 주고 가셨답니다.


이분들 얼굴 한번 보세요. 서로의 모습을 각자의 얼굴에 담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 않나요? 43년을 함께한 두 사람의 얼굴에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이 묻어 나와 나도 모르게 사진을 한 장 찍은 거랍니다. 우리 부부도 이분들처럼 멋지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사실 어제 오후에 이곳에 사는 지인을 우연히 만났는데 내가 알던 분이 몇 달 전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답니다. 한 달 전 우리 문학회 회원 중 한 명도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충격이었는데, 이렇게 또 알던 사람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니 인생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더군요.


"인간은... 심연 위에 걸쳐진 밧줄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뒤돌아 보는 것도 위험하고 멈춰 서 있는 것도 어렵다."

짜라투스트라에서 니체의 말인데 실존적 인간의 모습을 잘 표현해 놓은 것 같습니다.

인간은 시한폭탄 하나씩 들고 태어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뇌졸증이나 심장마비 또는 암이악성 바이러스감염, 혹은 교통사고 등등. 살기 위해서는 숨 쉬고 밥만 먹으면 되지만 죽는 것은 참 여러 가지라서 인간은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데, 내가 아직껏 살아있는 것이 어쩜 큰 행운인 것 같습니다.


언제 우리의 시한폭탄도 터질지 모르니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부리지 말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더 사랑하며 마지막을 준비해야겠습니다.

(2021. 10. 8 금)



오늘은 10월 8일 부담 없이 쉴 수 있는 축제의 날 토요일입니다. 하지만 나는 밥을 사서 먹으려면  돈을 벌어야 한답니다. 나도 아내랑 외식을 하면서 즐겁게 보내야 하니까요.


오늘도 행운은 오고야 마는군요. 한 아주머니가 Precious란 이름을 그려 달랍니다. 그런데 이름 위에 R.I.P 글씨를 함께 추가해 줄 수 있느냐고 하더군요. 갑자기 내 마음이 숙연해졌답니다. RIP은 'Rest In Peace' 즉 '평안히 잠들다'의 뜻으로 죽은 사람 비석에 새기는 문구이기 때문이지요.


이름이 프레셔스(고귀한)이니 사랑하는 딸이 죽었나 해서 누구 이름이냐고 묻지도 못했습니다.

이름을 다 그리고 나니 아래에 '2002~2020'을 더 추가해 달래서 적어 주었지요. 그러니까 18년 살았군요. 자식을 낳아 사랑으로 키웠는데 성인이 되는 18세에 죽는다면 그 마음이 어떨까요? 조용히 그림을 액자에 넣어 주었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너무 예뻤다면서 사진을 보여주더군요. 하얀 털을 가진 멋진 백마였습니다.


사실 그동안 죽은 사람들 이름도 많이 썼지만 죽은 동물이름도 많이 썼지요. 얼마 전엔 장례식에 필요하다고 주문한 죽은 생쥐이름도 몇 개 쓴 적이 있었답니다. 좀 이해는 안 되지만 이 생쥐는 주인에게 큰 의미가 있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운 생각이 들겠지만 누구도 자신의 죽음을 경험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종교를 통해 인식된 죽음 후 지옥이니 극락이니 하는 관념에서 자유롭다면 사실 자신의 죽음은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지요. 죽기 전 고통이 심할까 봐 두렵기도 하겠지만 요즘엔 통증을 없애주는 약이 많아서 크게 문제 될 것 같지도 않고요. 그리고 나에게 큰 의미가 없는 사람들의 죽음 또한 문제 될 건 없지요. 다만 나를 사랑하여 나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만 나의 죽음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나에게 그런 존재가 한 사람이라도 세상에 남아있다면 나 아직 죽을 때가 아닐 겁니다. 그들이 오늘 내가 살아야 할 의미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2021. 10. 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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