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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관 Sep 15. 2022

남호주 아웃백 밤하늘 아래 라흐 3번 콘서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남호주 아웃백 Mcdouall peak 밤하늘엔 수 억 개의 별들이 반짝이고 풀벌레들의 노랫소리가 적막 속에서 들려온다. 1인용 swag 텐트를 차 옆에 설치하고  얼마 전 구입한 Boom 스피커를 차 보닛 위에 올려놓았다. 사방에 사람은 아무도 없고, 사막의 풀들만 자라고 있는 대지와 달도 없이 별만 가득 품은 하늘, 그리고 나뿐이다.  차 옆 캠핑의자에 앉아 인터넷도 전화도 터지지 않은 이곳이지만 유튜브에서 다운받아 놓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틀었다. 지난 6월 20일 미국의 유명한 Van Cliburn 피아노 콩쿠르에서 압도적으로 1등을 차지하여 세계 클래식 애호가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곡이다. 스피커 볼륨을 최대로 올리고 음악을 감상하는데 은하수 아래에 마련된 대지 위의 콘서트 홀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첫 피아노 주제음과 함께 시작된 음률은 아름답지만 뭔가 우울한 느낌이 실려있다. 어쩜 라흐마니노프가 20대 중반에 3년간 실의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한 상태를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실의를 극복해 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듯 음정은 점점 힘을 얻어가고 속도는 더 빨라진다. 그리고 드디어 연주 9분부터 피아노 음들이 강력하게 폭발한다. 라흐마니노프가 야심 차게 세상에 내놓았지만 처참하게 실패했던 교황곡 1번 후 겪었던 그의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에게 크게 외치는 듯하다. 강력한 감정의 발산 후 뒤 따르는 피아노의 고요하고 청아한 소리는 정말 아름답게 들린다.


이제 음악은 고요한 일상을 연주하는 듯 느리게 빠르게를 반복하며 나아간다. 고향 러시아를 떠나와야 했던 라흐마니노프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크지만 그래도 유럽에서 새로운 삶을 꿋꿋이 살아가고 있음을 말하는 듯하다. 27분부터 1분 30초 동안 오케스트라가 그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위로의 말로 화답할 때 피아노는 더 격정으로 그의 감정을 표현한다. 인생은 쉽지 않지만 서로 공감하고 위로하면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29분 20초부터 청아한 피아노 소리와 함께 그 후 55초부터 화답하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마치 둘이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는 것 같이 들린다.


이렇게 그리움과 삶의 강력한 의지를 오가며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삶을 헤쳐가다 37분 50초부터 성공의 클라이맥스에 접어들었는데 40분부터  갑자기 음악에 반전이 시작된다. 어쩜 라흐마니노프가 유럽 생활을 접고 다시 미국으로 망명을 가야 했을 때 러시아에서 비밀경찰이 그를 잡으러 오는 것 같은 극도의 불안이 그의 삶에 덮쳐왔음을 보여주는지 모른다. 어렵게 살아오다 성공한 삶을 막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인생을 끝장내려는 듯 적들이 말을 타고 빠르게 쫓아오고 있는 것 같은 위기감이 몰려온다. 하지만 불안했던 미국의 첫 무대에서 이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초연해서 큰 성공을 얻었듯이, 당당하고 성숙한 태도로 그 도전을 빠르게 극복하고 40분 54초부터 결국 승리의 찬가를 울릴 때 나도 모르게 감격의 눈물이 흐른다. 이게 인생이지! 수많은 도전에 굴복하지 않고 기어이 극복해 내는 것. 니체가 말한 '인간은 극복되어져야 할 그 무엇이다'란 글귀가 떠오르며 43분 22초짜리 감동적인 인생 스토리는 막을 내린다.


난 그동안 클래식 음악 중에서 피아노 곡을 감상하는 게 제일 어려웠다.  피아노 건반 소리가 그렇게 듣기에 좋지도 않았고 오랫동안 비슷한 음을 계속해서 연주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으며, 서로 다른 곡들을  구별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래서 피아노 곡은 쇼팽의 녹턴이나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정도 듣던 나에게 3개월 전 임윤찬의 국제 콩쿠르 우승 소식에 무심코 이 곡을 유튜브로 듣고부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거의 매일 이 곡을 들었고 그동안 100번도 넘게 들었지만 여전히 지겹지 않고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선 매번 눈물이 난다.


100년 만에 나올법한 최고의 연주였다는 극찬을 듣는 이 곡을 연주한 18살 나이의 임윤찬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7살에 우연히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하루에 16시간씩 피아노만 치면서도 바라는 것은 산에 들어가 피아노만 치고 살고 싶다는 임윤찬은 어쩜 벌써 삶을 해탈한 성자가 된 것 같기 때문이다. 그의 연주가 감동인 것은 완벽한 기술뿐 아니라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속에서 행복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43분이란 긴 클래식 연주 영상이 3개월도 되지 않아 현재 7백8십만 회 조회 기록을 갖고 있다. 어쩜 나처럼 한번 이곡을 듣고 빠진 사람들이 매일 반복해서 듣고 있어서 계속 조회수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전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 가장 유명했었는데 임윤찬이 3번을 너무 아름답고 완벽하게 연주하여 앞으론 라흐마니노프 대표곡이 피아노 협주곡 3번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남호주 아웃백 밤하늘 아래에서 펼쳐졌던 이번 콘서트는 나에게 특별하고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2022년 9월 14일 Coober Pedy 백 킬로 전 Rest Area에서 캠프 중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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