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순위

워킹맘 일상 끄적이기 #1 - 눈이 눈에 들어가네

by 워케이셔너

어젯 밤부터 비상안내문자가 나를 신경쓰이게 했다.

새벽 3-6시 사이에 내린다던 눈 손님은 딱 알맞은 타이밍에 찾아와 주었다.

오늘 아이와 함께 가기로 했던 남양주 아울렛 일정은 전면 취소했다. 남편과 아이를 놀리면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려던 허울좋은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실은 2주 뒤에 회사에서 우리 팀에 권장하던 자격시험을 봐야하고, 내일 당장 아침부터 진행해야 하는 발표세션이 있어 마음이 복잡했던 찰나였다. 주말에 준비하기로 했던 내 나름의 계획은 잘 지켜지지는 않는 중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눈이 내린다. 그것도 펑펑.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추피가 눈사람을 만들어요” - 대략 말하면 추피와 친구들이 엄마아빠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고 사진을 찍었는데, 그 눈사람이 녹아내려 슬펐지만 사진으로 추억을 만들어두니 괜찮다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아이만의 인생 이야기로 만들어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대문자 E이자 가족이 최우선순위인 울 남편은 역시 얘기한다. “눈오는 날은 제일 먼저 노는 걸 선점해야깨끗한 눈이랑 놀 수 있어! 나가자!”

잠시 고민하다가, 에잇 그래, 이까짓 준비 - 잘 못해도 내 인생의 대세엔 지장 없다는 생각으로 잠옷에 패딩만 걸쳐입고 나간다.

오늘 내린 눈은 파우더같아서 눈이 잘 뭉쳐진다. 미끄럼틀에 몇번 굴러내리니 몸통과 얼굴이 금새 만들어진다.

가족 눈사람을 만들었다. 다른 주민분이 강아지랑 가다가 여기거 사진찍은 걸 눈앞에서 보니 너무 뿌듯하다.

서툴지만 온화해보이는 눈코입, 스카프 팔까지 꽂아주면 어설픈 눈사람 완성.

32개월 아이는 아마 태어나서 제대로 처음 만들어보는 눈사람이라서, 제법 신나보인다.

아이와 아빠의 뽀득거리는 발자국소리가 눈 위에 보인다- 앞으로도 이렇게 언제나 어디에서나 계속 함께 걸어갔으면 싶을만큼 .

그래, 가끔 나는 우선순위를 잊어버린다.

일을 잘 하고 싶은 마음도 결국은 아이와 남편과 오랫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욕구때문이었다는걸. 그래서 이만한 아이를 키우며 경제적 자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게 아닐까..

방금 아이를 씻기고 따끈한 게살누룽지죽까지 먹인 뒤에 빗소리 자장가 asmr 과 함께 낮잠을 재워본다.

늘 매순간은 선택의 연속이고 우선순위의 연속이겠지만,

후회없이, 감사하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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