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있나요, 뜨거운 나의 당신은*
지킬 건 많은데 방법을 몰랐던 어린 날이 떠올랐다. 사랑이라 이름 짓고 부르던 순간들로 말미암아 나눠보는 기억. 유난히 아팠던 네가 떠올라 쓴 담배나 입에 꼬나물면서, 방법을 모르던 둘의 짧기만 했던 사랑을 되짚어본다. 그러고 보면 나답지 않게 퍽이나 아기자기한 게 그럭저럭 귀여운 모양이었지.
방법을 몰라서 이럭저럭 귀엽긴 했는데 그랬던 탓에 짧을 수밖에 없던 귀여운 날들이 떠올라, 잿빛이 한껏 녹아든 가느다란 한숨을 뱉었다. 너는 처음인 게 많았었고 나는 너의 처음이 처음이라 어지간히도 헤맸었지. 이제 더는 난해할 수 없는 순간들을 돌아보며 태우는 담배. 점점 짧아지는 말린 종이에 이만큼씩 어설퍼진 마음이나 얹어 생각한다. 처음과 처음이 만났기에 귀여웠다고, 처음과 처음이 만났기에 짧을 수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나는 다음 사랑에도, 다음의 다음 또 다른 얼굴에서조차 너를 본다고.
그 시절
너는 모르는 저녁
밤, 새벽
아는 형에게 매달려 들어간 어둑어둑한 가게. 형이 알려준 대로 단정하게 차려입은 검정과 하양. 완벽한 타인들 앞에 나는 너에겐 보인 적 없던 멀끔한 차림이었고, 이렇게나마 한 푼이라도 더 가질 수 있다면 괜찮다면서 셔츠 단추는 목을 조르듯이 채웠다.
어린 게 싹싹해서 마음에 든다는 손짓에 너에게만 보이고 싶었던 미소를 지었고, 지독한 한 잔을 한 번에 마시면 10만 원을 주겠다는 내기에 고개와 허리를 몇 번이나 숙였지. 덕분에 저녁부터 비어있던 속이 바싹 타들어가고 있건만, 이거면 며칠은 버틸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통증보다 먼저였다.
진상과 술주정으로 좁아터진 어둑어둑한 가게에서의 새벽. 이런 곳에서는 눈치껏 빠져서 쉬는 거라던 형의 배려는 구원이었고, 비상계단에서 잘근잘근 씹어 태우던 줄담배는 비참이었는데_ 그땐 그게 방법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지.
밑 빠진 독 같은 삶에 들어와 머물러준 행복을 지켜내기 위해선, 남들 같은 방법이면 안 될 것만 같았으니까. 몇 통의 부재중 전화와 보고 싶다는 알림에 덧니로 입술을 깨물며 새벽을 태웠다. 네모난 화면 속에 활짝 웃고 있는 너로 의미를 빚어, 이것만이 내 모난 삶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거라고.
어떻게든 얼른 더 많이 벌어야지,
그래야지 우리의 내일이
더 행복할 거라면서 너를 미루고 나를 미뤘지.
그 시절
너는 모르는 새벽
또는 아침.
부재중인 전화와 몇 줄 더 덧붙여진 문자를 바라보며 담배나 씹었다. 너를 닮아있는 비밀번호를 지나치면 기다렸다는 듯이, 주르륵 내려오는 너의 마음들에 곧장 답을 할 수 없는 손가락이 미웠다.
더는 못 삼키지도 못할 만큼 커다래진 한숨이 입안을 맴돌다가 바닥에 내려앉는 이른 아침. 나보다 더욱 초췌해진 얼굴로, 셔츠를 쓰레기통에 처박은 형은 벽에 기대 담배를 태우는데_ 실없는 농담 따위를 몇 마디 주고받다가 자기는 귀여운 연애가 소원이라고. 나는 그게 뭐냐고. 형은 담배 연기를 짚어주는 가느다란 햇빛을 바라보면서,
“그냥, 그냥. 이것저것 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만나서 얘기하고, 가끔은 투정도 부리고, 울다가 웃고, 여기저기 걷고, 어디 맛집도 가보고, 거기 벽에 이름이랑 하트로 괜히 낙서도 해보는 거? 별 이유 없이 손편지도 주고받고 하는 그런 거 있잖아. 그런 연애 나도 해보고 싶었는데, 옆에 있어주는 것부터 어려워서 큰일이다 진짜.”
우리 둘 다 귀여운 연애는 글렀단 말에 형과 나는:
시원찮은 꼬락서니에 엉켜드는 자조로 이른 아침부터 잿빛이 한껏 녹아든 한숨만 떨어트렸었지. 너의 문자엔 피곤해서 일찍 잤다는 핑계를 또 써먹고, 탄내 깊게 밴 손가락으로 혹시 서운했다면 미안하다는 말을 적었고. 앞으로는 시간 좀 자주 내보겠다는, 어떻게 하면 되는 건지도 모르는 약속으로 답장을 보냈었는데_ 그때 너의 답장은 어찌 그리 빨랐던지. 네가 미안해할 건 하나도 없을 텐데 또 너는, 미안하다는 말을 했었는데 너는:
이제 그때보다는 꽤 많이
나아졌다고
말해볼 수 있을 듯한 오늘
지킬 건 많은데 방법을
몰랐던 어린 날이 떠올랐다.
사랑이라 이름 짓고 부르던 순간들로 말미암아 조각조각 나눠보는 기억. 유난히 아팠던 네가 떠올라 쓴 담배나 입에 꼬나물면서, 방법을 모르던 둘의 짧기만 했던 사랑을 되짚어본다.
그러고 보면 나답지 않게 퍽이나 아기자기한 게 그럭저럭 귀여운 모양이었지. 방법을 몰라서 이럭저럭 귀엽긴 했는데 그랬던 탓에 짧을 수밖에 없던 귀여운 날들이 떠올라, 잿빛이 한껏 녹아든 가느다란 한숨을 뱉었다. 너는 처음인 게 많았었고 나는 너의 처음이 처음이라 어지간히도 헤맸었지.
이제 더는 난해할 수 없는 순간들을 돌아보며 태우는 담배. 점점 짧아지는 말린 종이에 이만큼씩 시원찮아진 마음을 얹어둔 채로 생각한다. 처음과 처음이 만났기에 귀여웠다고, 처음과 처음이 만났기에 짧을 수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나는 다음 사랑에도
다음의 다음 또
다른 얼굴에서조차 너를 본다고.
_2022.03.02作
*타루(Taru) - Rachel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