묽어진 이 마음이 처음 같아질 수 있을까.
변함없는 당신 앞
묽어진 마음 하나.
미온적이라 아꼈던 그 표정조차 어째서일까, 차갑게 느껴지는 듯해서 당신이 아닌 딴 곳만 보고 있어. 당신보다 더 차가울 바닥을, 온기를 붙잡아두려 애쓰고 있는 나무 테이블을, 유리창에 색을 더해줄 흐리멍덩한 하늘을 보고 있어. 먹구름이 얇게 겹친 하늘을 보고 있어. 줄어든 대화에 공백을 채우는 노래나 들으면서 당신 앞에 나는:
전보다 허전해진 마음이나 숨겨보는 중이야. 당신 없는 곳만 바라보면서, 딴청 피우며 묽어진 마음 숨겨보고 있어. 그리 좋아하지도 않던 레모네이드를 몇 모금씩 머금고 있다가 삼켜대면서, 곧 비가 내릴 것만 같은 하늘에 또 묽어지려는 마음 숨겨보는 지금이야.
그러니까, 이건 그치
꽤나 미적지근한 버릇이지.
묽어져 버린 내 마음을
어떻게든 되돌리려 애쓰는
미적지근한 버릇이야.
시간에 희석돼 묽어진 마음이, 언제까지나 애틋할 줄로만 알았던 우리를 그르칠까 두려운 미적지근한 버릇이야. 아니 어쩌면 미온적이었던 당신과는 다르게 애 같이, 바라기만 했던 나를 가라앉히고 한 뼘쯤 식혀줄 얼음일지도. 아니면 우리만의 정답을 찾지 못했던 나를 꾸짖는 침묵일지도 모르겠네.
사실은 어느 쪽이 됐든 간에 상관없을지도 몰라. 시간을 견뎌내면 견뎌낼수록 자꾸만 묽어져서 애매해지고 마는 마음. 이 마음을 다시 바로잡을 수만 있다면, 조금이나마 되돌릴 수 있다면야 뭐가 됐든 괜찮을지도 모르겠는데_ 글쎄. 이만큼씩 숨기고 또 그렇게 견뎌내겠다고 한들, 이런 지경에 머물게 된 내 마음이 ‘처음’ 같아질 수 있을까.
변함없는 당신 앞
묽어진 마음 하나.
내 이런 속앓이를 당신은 아는지 모르는 건지. 여전히 살갑기만 했던 처음을 빼닮은 표정과 말투인데_ 내 이런 속앓이를 알고 있는 탓에 당신은: 더욱더 변함없는 모습으로 머물러주는 걸까. 아니면 눈치도 못 챈 탓에 그때 그대로일 수 있는 걸까. 처음보다 더 뜨거워지지도 않고, 그때보다 더 차가워지지도 않던 미온적인 당신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머물고 있는 걸까. 이어서 당신 앞에 또 한 모금 묽어져 버린 나는 지금 어떤 표정일까. 아직도 애 같기만 한 나는 모르겠는 것만 몇 움큼씩 늘어버린 것 같지.
변함없는 당신 앞
이상한 마음 하나.
미온적이라 아꼈던 당신이 점점 차갑게 느껴지는 듯해서 고갤 숙였어. 당신보다 더 차가울 저 바닥을, 온기를 붙잡아두려 애쓰고 있는 나무 테이블을 바라보다가 유리창 너머 흐린 하늘을 바라봤어.
먹구름이 얇게 겹쳐진 하늘을 보고 있어. 가뭇없이 살갑기만 했던 어떤 날과 달라진 건 이다지도 없는 당신일 텐데_ 어째서일까, 아무런 재미도 없고 사소한 행복도 부재중인 말하기 듣기. 혹은 내용이 결여된 짧은 단어와 숨소리밖에 없는 지금이지. 문득 대화의 공백을 꿰매주는 듯한 이별노래가 들려서 고갤 숙였어.
아무래도 나는,
당신 앞에 묽어진 마음으로
머물고 있던 나는:
당신처럼 사랑할 수 없었던 것 같지.
_2022.03.17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