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중인 당신들을 빼닮은 문장만 지었습니다.
접점이라곤 일절 없는 저 세상과의 간격은: 쭉쭉 평행선으로 나아가는 중이고 소속감은 날마다 흐릿해져가고만 있다. 비유적으로 말할 것도 없이 다만 직관적으로 말해보길, 세상에 발 붙여 살아가지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기분이다. 언뜻 귀신의 뜻과 의미가 떠올라 잘근잘근 곱씹어봤다. 비린 맛이 꽤 심해서 바로 뱉었다. 이 세상을 저 세상이라고 적어낼 수밖에 없는 이유, 모서리로 살아가는 일상이 이런 꼬락서니인 이유가 조잡하게 느껴졌다.
사실 평행선으로 나아간다는 것도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삶은 아무리 봐도 대각으로 기울어진 선인데, 그게 안쪽으로 기울어진 건 아닌 듯하다. 바깥으로 기울어진 탓에 자꾸만 멀어지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소속감 따위가 날마다 흐릿해지는 거겠지. 이는 직관적이라고 말하기도 뭐 할 만큼 관념적이다. 하지만 나는 관념을 긍정해요.
관념이 없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죠?
하여튼 저 세상과 나의 관계가 이런 식이니까, 있을 리 없는 귀신 따위에 친숙해진다. 머리를 묶을 때마다 바라보는 거울엔, 꽤나 오래된 헛것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현실에 이행될 수 없는 꿈에 더욱 빠져든다. 몽상이라고 헐뜯지 마세요. 예의 없게 굴지 마세요. 적어도 나는, 저 세상에 아무런 손찌검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문득 귀신의 뜻과 의미가 지독해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도 예전에는 저도 그랬어요.
삶이 곡선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바깥으로 기울어진 모든 게 익숙해진 지금에는, 그것처럼 병신 같은 생각도 없겠다는 비웃음이 짙어졌지만 그땐 그랬다고 중얼거려 봤다. 방금 불붙은 담배 한 개비에서 떨어진 불씨가 손등에 내려앉았다. 뜨겁다와 따갑다가 헷갈려 욕부터 뱉었다. 따가움이 넓어지면 뜨거움이 되는 걸까, 뜨거움이 좁아지면 따가움이 되는 걸까. 모르겠고, 나의 범위가 넓어지면 '이 세상'이 되는 거였으면 좋겠네요.
그래서 예전에는 저도 그랬어요.
삶이 곡선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곡선으로 쭉쭉 나아가면 언젠가는 처음에 돌아올 테니까. 둥글게 그려질 나의 삶의 세상이 될 테니까, 그렇게 생각했던 적도 분명 있었는데, 관념론자의 결말은 대부분 비관론적 회의주의자였다. 하지만 나의 문장은 돌고 도는 게 버릇이었지. 매일 갱신되는 반복밖에 모르는 삶이라서 그럴 겁니다.
이런 탓에 접점이라곤 일절 없는 저 세상과의 간격은: 쭉쭉 평행선으로 나아가는 중이고 소속감은 날마다 흐릿해져가고만 있어요. 비유적으로 말할 것도 없이 다만 직관적으로 말해보길, 세상에 발 붙여 살아간다지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기분이라고 할까요. 이 세상을 저 세상이라고 적어낼 수밖에 없는 이유, 모서리로 살아가는 일상이 이런 꼬락서니인 이유가 몇 모금 더 조잡해졌다. 짐짓 귀신의 뜻과 의미가 애연스러워, 부재중인 당신들을 빼닮은 문장만 지었습니다. 대안도 없으면서 몽상이라고 헐뜯지 마세요.
*진이정 시집,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