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낮의 4분의 3쯤 되는 동안
더 해줄 말이 없어 했던 말을 또 써내며, 그렇게나마 한 줄 채워보는 편지 같은 요즘입니다. 어떻게든 늘려둔 분량으로 대충 구색만 갖춰보는 중이라고 해야겠네요. 했던 말이 아니면 비슷비슷한 말만 반복하는 편지 같아졌습니다. 어제도 했던 짓을 오늘도 거듭하고, 어제도 했던 생각을 오늘도 거듭할 뿐입니다. 이런 식으로 살아도 괜찮은 건가, 싶은 의문이 지난달보다 더 깊어졌다고 말해봅니다. 거기서 거기인 것들로 채워내는 나절이 사실 좀 지겹긴 합니다만, 다른 것으로 채워볼까 생각해 보면 그건 그거대로 막연합니다.
익숙해진 것을 내팽개치고서 익숙하지 않은 것을 붙들어야 된단 뜻일 텐데, 그러면 이제야 겨우 익숙해진 자전이 아쉬울 테니까요. 그래서일까 새롭지 못한 일상의 해로움을 알면서도 반복하게 됩니다. 놓인 그대로 도는 법이 능숙해졌습니다. 드디어 저는 지겹다는 감정조차, 무참히 무시할 수 있는 지경이 된 겁니다. 근데 이런 지경을 두고 좋은 일이라고는 영 못하겠습니다. 더 해줄 말이 없어 했던 말을 또 써내며, 그렇게나마 한 줄 채워보는 편지 같은 요즘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편지는
진심이 없으면 못 쓴다고 하던가요.
한 줄의 진심조차 없으면 채워나갈 수 없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했던 말을 자꾸만 반복하는 편지는 무엇이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먼 어떤 날에 써봤던 편지를 기신기신 떠올려보면 그때에도 저는 했던 말을 두 번이었나, 세 번인가 반복하곤 했었습니다. 그때의 내 진심은 너무나도 간단하고 추레해서 그랬던 걸까요. 아니면 진심이 전해지지 않을까 두려워, 했던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던 걸까요.
지금에는 그때의 나를 알 길이 없습니다.
그때 썼던 그 편지도,
편지의 수신인도 부재중이니 알 길이 없습니다.
지금에 알 수 있는 건 딱 하나입니다. 더 해줄 말이 없어 했던 말을 또 써내며, 그렇게나마 한 줄 채워보는 편지 같은 요즘이라는 사실 뿐입니다. 어떻게든 늘려둔 분량으로 대충 구색만 갖춰보는 중이라고 해야겠네요. 했던 말이 아니면 비슷비슷한 말만 반복하는 편지 같아졌습니다. 어제도 했던 짓을 오늘도 거듭하고, 어제도 했던 생각을 오늘도 거듭할 뿐입니다. 이런 식으로 살아도 괜찮은 건가, 싶은 의문이 지난달보다 더 깊어졌다고 말해봅니다.
*나절가웃:
1) 하룻낮의 4분의 3쯤 되는 동안.
2) 반나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