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많이도 채워 그렸다 생각했는데 결국엔 백지*

by 서리달

그렇게 좋았던 시절도 아녔건만

돌아볼 때라면 어김없이 그리움이 뒤엉켰다.


얼마만치 비교해 봤자 지금보다 나은 구석이라곤 없는 그때인데, 이런 게 바로 추억이 가진 힘이라는 걸까. 객지살이에 탈탈 털려있던 그때의 형편마저도 마냥 그리워지는 듯해,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물들어버리고 만 버릇. 맛없는 담배나 한 개비 꺼내 잘근잘근 씹었다. 이어서 추억에서 비롯된 담배는 뒷맛이 텁텁할 테니까, 아주 옛날이 돼버린 어느 노래를 틀었다.


제목은 스토니 스컹크의 Best Seller.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건 일곱 살 적이었나. TV로 우연히 접하고부터 때때로 흥얼거려 왔던 노래를, 반복재생으로 틀어두고 잘근잘근 담배를 씹었다. 그러고 보면 자꾸만 추억스러운 빛깔로 미화되는 그때에도 나는: 이 노래를 들었고 곧잘 따라 불렀다. 도저히 못 견디게 어려운 형편에 시달리던 어떤 날, 내일은 좀 달랐으면 하는 바람에 잿빛 연기를 흘려보내면서 흥얼거렸었지.


그나저나 지금의 나는 그때가 그리운 걸까, 뜬구름 같은 자문에 결코 아니라면서 자답하진 못했다. 얼마만치 비교해 봤자 지금보다 나은 구석이라곤 없는 그때인데, 이런 게 바로 추억이 가진 힘이라는 걸까. 그렇게 좋았던 시절도 아녔건만 돌아볼 때라면 어김없이 그리움이 뒤엉킨다.


지금도 듣고 있는 똑같은 노랫말에, 의미가 한 줄씩 더해지던 찰나가 머릿속에 빙빙 맴돌았다. 객지살이에 탈탈 털려있던 그때의 형편마저도 마냥 그리워지는 듯해,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물들어버리고 만 버릇. 맛없는 담배나 한 개비 꺼내 잘근잘근 씹었다.


내일은 좀 달랐으면 하는 바람에

먹먹해진 잿빛 연기를 흘려보내면서






당찬 포부와 희망을 노래하던 레게 2인조는 갈라섰고, 절대 멈추지 않겠다던 그들의 진심은 그때 그 시절의 노래로 남겨졌다. 그들의 결말이 어떠했든 간에 나름의 결과물을 남겨두고 갈라선 둘이니까. 다시는 함께 노래할 일이 없는 둘은 그럼에도 행복하겠는지.


설령 세상으로부터 잊히더라도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결과물로 남겨진 노래를 반복해서 듣던 새벽에 문득 헤아려봤다. 일말의 접점도 없을 먼지 한 톨을 빼닮은 팬인 처지로는 역시나 알 길이 없다. 너무나도 막연하게나마 그러겠지,라는 감상이나 늘어둔 채 그때 그들의 진심을 반복해서 듣는 게 고작이었다.


뭐라도 남겨둔 채 갈라선 것만으로도 다행일 거라면서, 탈탈 털린 형편에 시달릴 때마다 나를 다독여주던 노래를 흥얼거렸다. 합심하는 사람들이 많고 많은 세상이지만, 지워지지 않을 무언가를 남긴다는 건 어려운 일이란 사실을 잘 아니까. 당찬 포부와 희망을 노래하던 그들의 반대를 겪어본 나란 놈은:


뭐라도 남겨둔 채 갈라선 그들은 행복한 편일 거라고 짐작했다. 자세한 내막 따윈 먼지 한 톨만 같은 처지로는 알 길이 없겠지만, 추억할 거리도 남겨두지 못한 채 갈라선 우리 둘보다는 나은 형편이겠지.


머무는 장소가 협소하든 칙칙하든 가리지 않았던 어느 계절. 너는 그림을 그렸고 나는 시를 썼다. 우리는 각자의 버릇이 남겨둔 흔적을 아꼈다. 캔버스에서부터 풍기는 기름 냄새와 적어낸 시가 인쇄된 종이의 뻣뻣한 온기. 우리의 흔적을 그러모아 시화집의 제목을 정하고, 표지는 역시나 쪽빛이 좋겠다면서 맞담배를 물던 기억. 추억할 거리라고는 이런 기억밖에 없는 나란 놈은:


뭐라도 남겨둔 채 갈라선 그들은 나름 행복한 편일 거라고 짐작했다. 물론 구별과 구분이 시원찮은 폴더를 헤매면 그때 써둔 시가 있긴 할 텐데, 네 흔적 없이는 그때 써둔 시 따윈 반쪽짜리일 뿐이지.


합심하는 사람들이 많고 많은 세상이라지만, 지워지지 않을 무언가를 남긴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는 가장 보통의 만남이자 어울림이었고 이별이었다. 그때의 포부와 희망은 엮어지질 못했고, 다만 적적한 빛깔로 물든 시화詩話*가 오늘에 맴도는 중. 특별하지 않았던 우리들의 결말을 추억하는 지금: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을 사실이나 몇 번씩

곱씹으며 돛대를 씹었다 우리는

각자의 버릇이 남겨둔 흔적을 그토록 아꼈었다.






끝까지 답할 수 없었던 안부가 떠올라, 잘 지내냐는 안부를 몇 자 적어내다가 지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흔한 말을 신앙하기로 결심하고서, 추억도 되지 못할 오늘을 마저 견뎌내기로 했다.


막 적어낸 문장 사이사이마다 끼어있는 이게 그리움인지, 그게 아니라면 벗어나고 싶은 욕구이겠는지 헷갈리는 지금이지마는: 오롯이 혼자 견뎌내야 될 것들만 산재하는 요즘이란 사실은 변치 않으니까. 금방이라도 타인을 요구하는 핸드폰은 조금 더 먼 곳에 밀어둔 채, 남김없이 채워내야만 할 여백을 바라봤다. 많이도 채워 그렸다 생각했는데 결국엔 백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빈약한 상태였다.


해가 떠있을 때 눌러앉았건만 해가 떨어진 지금에도 그대로다. 어젯밤에 적어낸 문장이라도 여기에 붙여 넣을까 생각했지만, 나의 답장을 받지 못한 네가 머무는 탓에 관뒀다. 잘 지낸다는 몇 글자면 답장으로 충분했을 텐데 어려웠지. 언제부턴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됐는데, 알고 지낸 시간이 길었던 네게는 그러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빨간 알림이 눈에 보이지 않도록 내려가길 바랐다.


여전히 남김없이 채워내야만 할 여백을 바라보는 중이다. 역시 답장 정도는 해두는 편이 좋을까. 먼 곳에 밀어뒀던 핸드폰을 끌어와 화면을 죽죽 내리며 너를 찾아댔는데, 작은 글씨로 적혀있는 날짜가 초여름을 가리키고 있어서 관뒀다.


더욱더 먼 곳에 핸드폰을 던져두고,

추억도 되지 못할 오늘을 마저 견뎌내기로 했다.


막 적어낸 문장 사이사이마다 끼어있는 이게 그리움인지, 그게 아니라면 벗어나고 싶은 욕구이겠는지 헷갈리는 지금이지마는: 오롯이 혼자 견뎌내야 될 것들만 산재하는 요즘이란 사실은 변치 않으니까. 자꾸만 타인을 요구하는 핸드폰은 없는 것으로 여기기로 작심하고, 남김없이 채워내야만 할 여백을 바라봤다.


많이도 채워 그렸다 생각했는데 결국엔 백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빈약한 상태. 한 줄의 문장을 적을 때마다 추억된 너희가 떠올라, 쓰고 지우고 다시 써내길 반복하는 찰나가 길어지는 저녁. 내일은 좀 달랐으면 하는 바람에 잿빛을 흘려보내며, 맛없는 담배나 한 개비 꺼내 잘근잘근 씹었다.



*Stony Skunk – Best Seller中

*시화(詩話): 시나 시인에 관한 이야기.

*사진: Stony Skunk 1집, Best Seller 앨범 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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