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만 나를 위해 친구가 되어줄래요."*
집 근처엔 구불구불한 슬레이트 지붕으로 벽을 세운 고물상이 있고, 아주 늦은 밤이 아니라면 활짝 열려있는 문 앞으로는 이 동네의 쓰레기가 다 모인다.
겉으로는 멀쩡한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버려져있는 TV, 하얀색 곰팡이가 아래쪽 칸을 다 차지해 버린 나무책장. 곡선이 제법 멋들어지지만 까만색 칠이 벗겨진 자리에 녹이 슬어있는 철제의자. 한 때는 누군가의 비밀을 간직했을 서랍장과 그 옆에는 차곡차곡 쌓여서, 어느새 어엿한 동산이 돼버리고 만 쓰레기봉투들이 머물고 있지. 대부분의 시간 동안 활짝 열려있는 문 앞엔 이 동네의 쓰레기가 다 모여 있다.
이것도 고물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분류가 애매모호한 것들까지도 왕왕 보이던데 딱히 가리지 않고 받는 듯했다. 헌 옷을 한 보따리나 들고 온 아주머니와 정답게 인사하시던 아저씨는: 익숙한 손짓과 미소로 거기 문 앞에 두면 된다고 말하셨으니까. 내가 여태 봐왔던 여느 고물상보단 기준이 조금 더 느슨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지. 그리고 나는 이 동네의 쓰레기가 다 모이는 고물상을 자주 바라보곤 한다.
외출을 할 때마다 지나가는 길목에 있기도 하고, 도착시간이 언제나 아리송한 시내버스를 기다릴 적마다 그 근처에서 담배를 태우니까. 고물상을 바라보며 담배를 태우는 일은, 언제부터인가 내 일상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한 조각이 됐지.
구불구불한 슬레이트 지붕으로 벽을 세운 어지러운 공간, 자신의 쓸모를 잃어버린 탓에 끝끝내 버려지고 만 것들의 공간을 자주 바라본다. 여태껏 유난스러울 만큼 내 눈길을 끄는 것들은 대부분 이런 나와 아주 빼닮았거나 아주 별난 것이곤 했었는데, 나는 과연 어떤 의도로 바라보는 것일까. 일단은 쓰레기를 보면서 별난 것이라 느꼈던 적은 없었지.
그렇다면 아마도 나는,
몇 발짝 물러나있기로 한다. 하고 싶은 말이라든가 해야만 할 것 같은 말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이유를 바짝 말려 물기를 머금은 마음을 닦아내 본다. 어쩌면 다들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타협을 마련하고, 물러나서 머물게 된 여기에서 몇 발짝 더 물러나있기로 한다.
섣불리 나서는 상황이 연출되지 않도록, 물러나고 또 물러나서 한달음에 뒤섞이는 일이 없게끔 더 물러나있기로 했다. 하고 싶은 말이라든가 해야만 할 것 같은 말들이 가라앉을 때까지, 먼 곳에 머무는 편이 처세에 이로울 거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의견의 급류에는 휘말리지 않는 게 좋다.
하는 둥 마는 둥했던 독서를 통해 배우지 않았던가, 여태껏 배워왔던 그대로 이행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애당초 독서가 아니더라도 살아오면서 문득문득 깨단했던 사실이지. 끼지 않아도 될 곳에 끼지 않는 것은 현명함이었다. 나중에 이런 내게 붙여질 말이 무엇이든 간에, 통제가 되질 않는 의견의 급류엔 휘말리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에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 따윈 생각보다 없었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이 더욱 많았지. 어떤 말을 해야 되는 상황들이 보통 그러했다. 하고 싶은 말이라고 해서 꼭 해야 되는 건 아니었고, 꼭 해야만 할 것 같은 말이 있다고 해서 상황이 내 뜻대로 연출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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