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네모네

이미 거기에 머무는 것들만이 '의미'였습니다.

by 서리달

느슨해지거나 멀어지는 것들뿐이었다.


살아가는 만큼 견고해진다거나 가까워진다는 건 사람의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세상에 놓인 모든 게 그러했다. 자신만의 법칙으로 이행되는 시간에 이리저리 끝도 밑도 없이 휘둘리다 보면 어느새 느슨해지거나 멀어져 있기 마련이었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가 유별나리만치 그러했고 사람과 사물과의 관계 또한 적절하게 그러했다. 어떤 날에 친밀했던 당신은 이제 목소리도 가물가물한 누군가가 됐고, 어느 날 각별히 아꼈던 팔찌는: 점점 느슨해지다 이내 끊어져 어떤 색깔의 팔찌였는지도 모르게 됐지. 직접 겪은 세상은 어째 그런 것들밖에 없었다.


협소한 체험이라는 핀잔에서

자유로울 순 없겠지만 그랬다.


느슨해지거나 멀어지는 것들뿐이었다. 세상에 놓인 모든 게 그러했다. 자신만의 법칙으로 이행되는 시간에 이리저리 끝도 밑도 없이 휘둘리다 보면 어느새 느슨해지거나 멀어져 있기 마련이었다.


살아가는 만큼 견고해진다거나 가까워진다는 건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영원한 건 절대 없다는 세상이라지만 그럼에도, 마음이나 상태가 그러하다면 영원할 거라 믿던 착각. 또는 망상이었던 건지도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한때 그러했던 내가 측은해 보이진 않았다. 딱히 한심하게 보이지도 않았고, 이를테면 지금보다 더욱 사람다웠다고 생각됐다.


그럴 수 없는 것을 두고 그럴 수 있다고 믿는 것. 사람다움은 불가능에 대한 착각과 망상으로 빚어지는 것인 듯했다. 물론 협소한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아니꼬운 핀잔에서 자유로울 순 없겠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그럴 수 없는 것을 두고 그럴 수 있다고 믿었던, 그때의 내가 지금보다 더욱 사람다웠었다.






다섯 걸음쯤 걷다가 뒤를 돌아본다. 무얼 두고 온 사람이나 되는 듯이 뚝 멈춰 뒤를 돌아보다가 마저 가던 길을 걷는다. 높다란 건물과 조금 낮은 건물이 만든 틈. 해가 떠도 언제나 어둑한 틈새에 가득한 담배꽁초들을 보면 그 틈에 나를 세워둔 채 한 개비 입에 문다. 담배를 태울 땐 핸드폰을 보거나 하진 않는다. 왼손에는 언제나 시집이 두 권쯤 들어있는 잿빛 가방에 들려있으니까. 핸드폰을 꺼내 드는 것도 꽤나 고역이다.


그래서 그냥 멍하니,


정면을 응시한 채로 막 생겨난 잿빛의 처음과 끝을 바라본다. 잿빛의 일생이 질릴 즈음에는 뭐, 빳빳이 굳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기도 한다. 대충 스트레칭을 겸해서 하늘을 바라보는데 이런 비좁은 틈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넓을 리가 없다.


내가 우두커니 서있는 틈의 폭만큼만 눈에 담기는 하늘이니까, 겨우겨우 바라본 하늘은 비좁고 가늘다. 게다가 날씨라도 안 좋으면 바라본 하늘과 담배연기, 콘크리트가 다 비슷비슷하게만 보인다. 수명이 짧은 잿빛과 경직된 일생을 사는 잿빛, 그리고 울먹거리는 잿빛만 연속될 뿐이지.


어둑한 틈

여기서 실행되는 환기는 늘

이런 빛깔이다, 잿빛이다.


환기가 끝나면 마저 가던 길을 걷는다. 다섯 걸음과 여섯 걸음의 사이 그쯤, 뚝 멈추고는 괜스레 뒤를 돌아본다. 무얼 두고 온 사람이나 되는 듯이 뚝 멈춰, 뒤를 돌아보다가 마저 가던 길을 걷는다. 다시 챙겨 올 것보다 두고 오는 편이 나을 것들만 가득한 일생일 텐데 참 이상한 버릇이 몸에 뱄다.


두고 오는 편이 나을 것들,

이를테면

그리움이라든가 미움 같은 것이겠지.


어떤 날에 머물던 사람들은 제 발로 떠났고 정들었던 그곳도 제 발로 떠나왔는데 가끔은: 이미 지나쳐간 것들에게 괜한 감정만 엉키곤 한다. 하나하나 복잡다단한 감정들이지만, 그것의 출처를 알음알음 알아가다 보면 결국 그리움 아니면 미움이었다. 잔뜩 멀어진 과거라든가 다시는 향하지 않을 어느 곳. 그런 곳에다가 두고 오는 편이 나을 것들이었지. 하여튼 이상한 버릇이 너무 깊게 뱄다.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한데

이렇게 돌아보기만 해서 언제쯤 그곳에

도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힐끔 하늘을 흘겨봤다. 아까까진 흐렸던 하늘이 조금 개서 희끄무레한 파랑이 보였다. 문득 소원해진 당신의 목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는데, 도무지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서 모르는 척했다. 이것저것 전부 다 짊어지고 살았던 삶은 아닌 듯해 퍽이나 안심이 됐다.






목소리가 떠오르지 않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다르게는 도무지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목소리도 있고요. 내 기억력이란 게 이렇게 못 미더운 것이었나 싶을 찰나가 늘었다고 한다면, 벌써부터 그래서 어쩌겠냐는 핀잔을 듣는 건 아닐까 심히 부끄러워지는데요. 숨긴다고 딱히 달라질 사실도 아니니, 어느새 이런 사람이 된 나를 툭툭 옮겨 적었습니다.


목소리가 떠오르지 않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다르게는 도무지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목소리도 있고요. 이렇게 옮겨 적으니까 갑갑했던 마음은 조금이나마 후련해지네요. 딱히 달라지는 건 없더라도 털어놓으면, 나름대로 괜찮아진다는 미신이 믿음직스러워졌습니다.


아, 이래서 나는 쓰며 살아가는 건가 싶어졌는데 이렇게 생각하니까 쓴다는 행위가 꼭 저주처럼 여겨져, 싸구려 지우개로 벅벅 지우듯이 지워버렸습니다. 다른 누구들처럼 조금 더 멋들어지는 이유. 그런 이유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만 글쎄, 아직도 저는 자기 회복의 수단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합니다.


근데 와중에 남들 모르게 키워낸 꿈은 또 커서 수단과 목적이 꽤나 변질됐습니다. 죽는 날까지 입으로는 말하지 못할 생각들을 옮겨 적고선, 인디언의 절박한 기우제를 빼닮은 마음으로 다음을 바라보는 행위가 됐죠. 차마 용납되지 않을 듯한 나를 옮겨 적었으면서, 하루빨리 용납되길 바라는 게 꼭 그렇지요.


조금 더 파고들기 시작하면 내 몹쓸

민낯만 드러날 테니 뿌리부터

배배 꼬인 심성이 문제일 거라고 요약해 봅니다.


하여튼 간에 그런 이름과 목소리가 있습니다. 목소리가 떠오르지 않는 이름, 도무지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목소리가 있어요. 몇 모금 더 솔직해지자면 나눴던 대화의 내용은 이토록 선명한데 얼굴과 표정, 그들의 이름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젊은 치매라도 온 건가 싶어지곤 합니다만, 내가 겪고 있는 나와 다르게 남들이 보는 나는 멀쩡하답니다. 그래서 나를 납득시킬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었습니다. 꼭 무언가가 결여된 그들을 두고서, ‘의미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칭하기로 했답니다. 의미가 없는 것들은 남겨두지 않는 버릇에서 비롯된 명칭입니다.


가만가만 헤아려보니까 저는:

의미를 모르겠는 단어는 아예 쓰지 않더라고요.

기억하려 아등바등 애쓰지도 않고요.


그럼 스스로가 생각하는 의미란 무엇인가, 우물우물 곱씹어보니까 이미 그러한 것들이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보겠다며 애쓰지 않아도, 이미 거기 머무는 것들이 의미였습니다. 이를테면 친구가 그런 것이겠죠. 친해지겠다거나 붙잡아두겠다고 애쓰지 않더라도, 이미 곁에 머물고 있는 당신을 두고 나는:


언제나 친구라고 발음해 왔습니다.


그렇게 발음된 친구라는 단어엔 의미가 분명히 있었고요. 난 늘 그래왔었습니다. 의미가 없는 것들은 남겨두지 않는 버릇을 끼고 여기까지 살아왔습니다. 이런 즈음까지 툭툭 옮겨 적고 보니까, 내 요즘의 원인을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됐습니다.


목소리가 떠오르지 않는 이름

도무지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목소리는:


끝끝내 의미가 되지 못한

사람들의 부스러기였던 것 같네요

더 이상 그들과 나는

친구가 아니라는 충분한 증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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