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의 바깥

까치의 언어를 이해할 능력 따윈 없다.

by 서리달

단 하루만이라도 좋으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진 하루를 보내고 싶다. 인생의 어느 즈음부터인가 목적하게 된 내 나름의 소원이었다. 딱히 거창하게 느껴지진 않는데, 가만가만 곱씹어보면 마냥 그렇게 쉽게 여겨지는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소원. 언제부턴가 나는 이런 소원을 목적하게 됐고, 하염없이 살아내는 이 삶의 종착지일 거라 신앙하고 있었다.


단 하루만이라도 좋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진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고. 욕심으로 가득한 마음에 자리한 이런저런 소원들 중, 그중에 가장 반짝거리고 있는 하나라는 고백을 이제야 나 적어봤다.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서, 내 손으로 내렸지만 운 좋게 맛있게 내려진 커피를 몇 모금 머금은 채로 느긋하게, 좋아하는 시집을 몇 페이지 읽기도 하는 거지. 시집이 질린 것 같을 땐 노래는 꺼두고, 너무 좋아했던 탓에 결말까지 다 외워버린 영화를 또 보는 것도 좋겠네. 영화가 끝나면 주섬주섬 나갈 채비를 하고, 해거름을 바라보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 시시껄렁한 얘기나 좀 나누고.


저녁은 그 사람이 좋아하는 메뉴로 먹고 내일도 이러했으면 좋겠다면서 돌아오는 하루. 언제부턴가 나는 이런 하루를 목적하게 됐고, 하염없이 살아내는 이 삶의 종착지일 거라 신앙하고 있었다. 단 하루만이라도 좋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진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고. 욕심으로 가득한 마음에 자리한 이런저런 소원들 중, 그중에 가장 반짝거리고 있는 하나는 이토록 애매모호한 소원이었다.


딱히 거창하게만 느껴지는 소원까진 아닌 듯한데, 가만가만 곱씹어보면 마냥 그렇게 쉽게 여겨지는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소원. 언제부턴가 나는 이런 소원을 목적하고 있었고, 하염없이 살아내는 삶의 이유일 거라 신앙하고 있었다. 그저 단 하루만이라도 좋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진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월요일 저녁마다 나는 갈 곳이 없는 사람이 된다. 집에 들어가 쉬면 그만일 텐데 꼭, 피곤에 찌든 몸을 이끌고서 이곳저곳 기웃거린다. 자주 가는 카페는 월요일마다 휴무이고, 식당들도 모두 약속을 한 것처럼 월요일에는 문을 닫는다.


애당초 밖에서 뭘 먹거나 하는 편도 아니건만, 웬만한 가게들이 문을 닫는 월요일만 되면 괜히 바깥에서 방황을 일삼는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이상한 버릇인가 싶은데, 원인 따위는 손톱만치도 짐작이 가질 않는 버릇이라 더 생각해 보는 건 관뒀다.


뭔가 아쉬운 구석이 있으니까 이러는 거겠지, 생각하며 어물쩍 넘겨짚고 마저 방황한다. 피곤에 질질 끄는 걸음인 만큼 집에 들어가 쉬면 될 일인데 꼭, 피곤에 찌든 몸을 이끌고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저녁. 월요일 저녁마다 나란 놈은 오갈 곳이 없는 사람이 된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외부인이라도 된 듯이 혹은

머물 곳이 마땅치 않은

애처로운 길고양이나 된 듯


월요일만 되면 괜히 바깥에서 방황을 일삼는다. 자주 갔던 카페 근처로 걸음을 옮겼다가 멀리서부터 보이는 불이 꺼진 간판에 실망하며 돌아선다. 어차피 휴무인 걸 알았으면서 무슨 예외를 바랐던 걸까 싶어지지.


이젠 정말로 집에 가야겠다는 결심을 만지작거리면서, 집으로 가는 길을 등진 채로 어둑어둑한 골목으로 들어가 담배를 깨문다. 가로등 밑에 우두커니 서서 한 개비를 태우다가, 전깃줄 위에 앉아있는 까치의 혼잣말에 귀를 기울여 봤다.


까치는 본디 경계심이 많은 새라던데 아마도 나를 경계하며 지저귀는 거겠지. 물론 까치의 언어를 이해할 능력 따윈 없다. 그래도 그냥 대충은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어둑한 골목을 나와 가로등과 자동차 불빛으로 환히 빛나는 큰길을 따라 걷는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외부인이라도 된 듯이 혹은, 머물 곳이 마땅치 않은 애처로운 길고양이나 된 듯. 느릿느릿 걸으면서 닫힌 가게들을 힐끔힐끔 흘겨본다. 어차피 웬만한 가게들이 문을 닫는 날인 걸 알았으면서 무슨 예외를 바랐던 걸까 나는: 요즘엔 나도 나를 모르겠는 순간들이 많아졌지.


피곤에 질질 끄는 걸음인 만큼 집에 들어가 쉬면 될 일인데, 피곤에 찌든 몸을 이끌고서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있는 늦저녁. 이젠 정말로 집에 들어가야겠다는 결심을 꺼내 한입에 삼켰다.






이제 일어날 때가 됐단 걸 알지만 이불을 더욱 끌어안는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선 커튼 밖의 밝아진 세상을 외면해 버리자고 작정했다. 하지만 설정해 둔 알림은 눈치가 없었고, 눈을 감고 다 늘어진 몸의 요구를 수용해 봤자 잠이 오진 않았다.


부스럭부스럭 일어나서 눈치도 없는 알림을 끈다. 커튼을 걷고 밝아진 세상을 원망스러운 눈길로 흘겨보다가, 창문을 조금 아주 조금 열고서 담배를 한 개비 깨문다. 노트북 옆에 재떨이로 쓰이는 유리병의 뚜껑을 열었다. 어젯밤 내 고민의 찌꺼기들이 유리병 안에 가득하다. 문득 역겨운 냄새가 그 안에서부터 올라와, 헛구역질이 나올 뻔했지만 새로이 삼켜낸 연기로 겨우겨우 짓눌렀다.


어김없이 오늘이 왔다. 오늘이 다신 오지 않길 바란 건 아니지만 뭐랄까, 매번 마주하는 오늘이 반갑다거나 썩 좋다고는 못하겠다. 지긋지긋하다는 표현이 더욱 어울리는 오늘이라고, 그리 말해버리면 시작부터 울적해지니 그냥 침묵으로 일관하자.


내 고민의 찌꺼기가 한 개비 더 쌓인 유리병을 닫았다. 이곳저곳 뻐근한 몸을 움직여 어젯밤에 마시다 남긴 커피를 한 모금에 마시는데_ 그 맛이 꼭 담배꽁초를 녹여낸 맛을 닮아, 부재중이었던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나만의 애매모호한 소원이 한 걸음 또 멀어졌단 사실을 이른 아침부터 지독히 깨단한다.


딱히 거창하게 느껴지진 않는데, 가만가만 곱씹어보면 마냥 그렇게 쉽게 여겨지는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소원. 언제부턴가 나는 이런 소원을 목적하게 됐고, 하염없이 살아내는 이 삶의 종착지일 거라 신앙해 왔지만 신앙의 결말이 으레 그러하듯:


영영 이뤄질 것 같지 않은 소원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단 하루만이라도 좋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진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근데 그게 이렇게나 어려운 소원이었을 줄은 잘 몰랐지.


창밖의 세상을 원망스러운 눈길로 힐끔 흘겨봤다. 끝과 끝이 모조리 뾰족한 물음이, 속 깊은 곳 어디서부턴가 생겨나 비어있는 속이 다 쓰렸다. 희망이 아닌 절망으로 오늘을 시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저 세상이 과연 알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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