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최선보다는 차선을 맡고 있습니다.
그늘:
하얀색 화면을 응시한 채로 가만가만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까만 밤이 어제보다 길어졌단 사실을 깨단했다. 새로운 것 아니면 뻔한 것으로 갈라질 나의 문장은 언제부터일까,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길 주저하는 버릇이 생겼다.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려두고서 자음과 모음을 아무렇게나 조합해 본다. 그 어떤 뜻도 담아두지 못할 단어가 만들어졌는데, 돌고 도는 세상의 법칙이 그러하듯 실패작은 사라지는 게 순리였다.
어쩔 수 없는 순리라는 것쯤은
잘만 아는데도 짜증과 싫증이 뒤엉키지.
여전히 하얀색인 화면이 지독해서 천장을 바라봤다. 언젠가 생일선물로 받은 조명의 불빛 덕분에 내 그늘은 천장에도 머문다. 밤하늘보다 더욱 어둡게만 보이는 내 그늘이 문득 섬뜩했다. 천장에 야광별이라도 몇 개 붙여두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러면 별 볼 일 없는 내 그늘도 이럭저럭 밤하늘을 닮아있지 않겠냐고, 종착지가 정해진 뜬구름만 같은 생각을 해봤는데 위로가 되진 않았다. 어제보다 길어진 까만 밤이 여기서 갈무리될 것 같지도 않았다.
잠시 잊고 있었던 시간을 부여잡았더니 아까보다 더욱 늘어나있었다. 하얀색 화면을 응시한 채로 가만가만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까만 밤이 하루가 지날수록 길어지고 있단 사실을 깨단했다. 새로운 것보다는 뻔한 것으로 정해질 나의 문장은 언제부터일까,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길 주저하는 버릇이 생겼다.
무척이나 나다워졌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나답다는 말이 욕지거리처럼 여겨져서 한숨을 커피로 눌렀다. 오후에 한껏 내려둔 커피는, 이쯤이면 온기도 맛도 다 잃어버린 구정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러고 보면 내 방에는
나다운 것들이 너무 많네.
여전히 하얀색인 화면이 지독해서 천장을 바라봤다. 언젠가 생일선물로 받은 조명의 불빛 덕분에 내 그늘은 천장에도 머문다. 밤하늘보다 더욱 어두워진 내 그늘이 섬뜩했다. 천장에다 야광별이라도 몇 개 붙여두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러면 별 볼 일 없는 내 하늘도
이럭저럭 밤하늘을 닮아있지 않겠냐고,
뜬구름만 같은 생각을
지펴댔는데 그다지 위로가 되진 않았다.
아르고노트(Argonaut):
이제는 내 것이었으면 좋겠던 것들을 바라보는 일조차 질렸지. 때로는 누군가를 우러러보며 선망하기도 했는데,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처지와 꿈의 거리감이 선명해질 뿐이었다. 언젠가는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언젠가는 나도 가질 수 있을까. 가늠하면서 오늘의 분량을 늘려보겠다며 잠을 줄여봤자, 보기 좋게 달라지거나 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노력이 부족했던 건 아니겠는지. 지나온 날들을 힐끔힐끔 흘겨보며 복기할 때면, 그때의 내 얼굴은 늘 피로한 얼굴이었지. 오늘을 조금 더 늘릴 수만 있다면 잠은 얼마든지 줄일 수 있었다. 영양뿐만 아니라 시간과 형편까지 잡아먹는 끼니도 줄였는데_ 보기 좋게 달라지거나 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것이었으면 좋겠던 것들을 다 가진 누군가를, 우러러보며 선망했던 시절에 난 늘 그랬다. 필요를 줄여가며 기회를 각출하곤 했었지만 글쎄, 이제는 내 것이었으면 좋겠던 것들을 바라보는 일조차 질려버렸지.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처지와 꿈의 거리감이 선명해질 뿐이었다.
언젠가는 저렇게 될 수 있겠는지,
언젠가는 나도 가질 수 있겠는지.
내가 바라보고 있는 미래가 아주 먼 미래가 아니길 바라고 가늠하면서, 배급받은 오늘의 분량을 늘려보겠다며 잠을 줄여봤자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기적 따윈 바라지도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기적을 바라고 있더라고.
세상의 모든 것들에 의미가 있다면 그러했던 시절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테고, 그렇다면 그런 의미들이 쌓이고 쌓여 어떤 형태로든 결과가 나올 줄로만 알았거든. 노력과 의미의 중첩만이 순리이자 꿈에 이르는 순서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_
그딴 건 애당초 없었다는 사실을 깨단했을 무렵, 그 무렵부터 일어나지도 않을 기적 따위를 바라게 됐다. (지금 이 한 줄을 짧게 요약한다면 ‘반신반의’라고 하면 될까. 잘 모르겠다.) 하여튼 간에 이젠 내 것이었으면 좋겠던 것들을 바라보는 일조차 질려버렸지.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처지와
꿈의 거리감만이 지독해질 뿐이었다.
피카레스크(Picaresque):
어르신들 눈깔 앞에 놓일 때마다, 평균이하로 귀결돼버리던 나의 잔재주가 부끄러웠지만 불평하진 않겠습니다. 온갖 곳에 갈등밖에 없는 시대에 굳이 부스럼을 만들 것도 없거니와, 불평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평가도 아닐 테니까요. 그저 입을 다문 채로 손가락을 조금 더 바삐 움직이며 지나갈 다음과 다가올 다음을 지어낼 뿐입니다.
여태 목적해 왔던 그곳에 먼저 도착한 친구를 물끄러미 바라봤습니다. 요즘 시대엔 줄이라도 잘 서야 뭐라도 된다고 하니까, 이름을 부르며 아는 척이라도 해보려다 관뒀습니다. 심심한 축하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친구로 마주할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연락처가 조금 더 빈약해졌습니다.
저는 최선보다는 차선을 맡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아주 간단한 식의 나눗셈에서 ‘나머지’를 맡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어쨌든 가운데에 머물지 못하는 처지가 곧 나였습니다. 서운한 기분이 빼곡하지만 하루 이틀 겪은 기분이 아닌 만큼, 그럭저럭 능숙하게 아닌 척할 수 있는 나머지가 됐습니다.
문득 어렸을 적의 방과 후가 떠올랐고, 늦은 밤에도 한가할 수 없던 감자칩 공장에서의 새벽이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내 노력의 값어치는 얼마였을까요. 당장 알 수 있는 건 하나였습니다.
어르신들 눈깔 앞에 놓일 때마다,
평균이하로 박제돼버리던 나의 잔재주보다는
비싼 것이었을 겁니다.
내 그늘이 천장에 드리워진 밤이 자꾸 길어집니다. 사람은 하나의 우주라고 일컫던 흔한 말이 떠올랐지만, 내 우주는 이토록 빈약해서 야광별이라도 붙여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면 별 볼 일 없는 내 하늘도 이럭저럭 밤하늘을 닮아있지 않을까요. 이게 무슨 뜬구름만 같은 소리인가 싶어서 스스로조차도 헛웃음만 나오지만, 제법 진지하게 생각해 봤습니다.
가짜는 진짜가 될 수만 있다면 방법을 마다하지 않는 법이니까요. 물론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았고, 어제보다 길어진 까만 밤이 여기서 갈무리되지도 않았습니다.
하여튼 간에 이젠 내 것이었으면 좋겠던 것들을 바라보는 일조차 질려버렸습니다. 내가 원했던 전부를 가져간 누군가를 선망하는 일도 관뒀고요, 기적을 바라기는 바라는데 그 기적은 내세來世에 일어나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저 지금은, 그러니까 오늘 밤만큼은: 입을 꾹 다문 채로 손가락을 바삐 움직이며 지나갈 다음과 다가올 다음을 지어낼 뿐입니다.
여태 목적해 왔던 그곳에
먼저 도착한 친구를 떠올려봤습니다.
요즘 시대엔 줄이라도 잘 서야 뭐라도 된다고 하니까, 연락이라도 하며 아는 척이나 해보려다 관뒀습니다. 심심한 축하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친구로 마주할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빈약해진 연락처가 측은하게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처지와 형편에 떠밀려 자존심마저 갖다버린다면, 오랫동안 이어왔던 나의 잔재주가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릴 테니까요.
*메데이아(Medea):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영웅이자 공주, 마녀. 로도스의 아폴로니오스의 《아르고나우티카》의 등장인물이자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메데이아》의 주인공. 고전 발음으로 메데이아, 코이네 발음으로는 메디아(Media)로 미디어의 어원이 되기도 하였다. 어원은 '계획자, 음모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