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은 없고 나는 너무 낡았다.
위로가 됐던 것들을 헤아려보면 늘 그랬지. 아주 거창한 무엇이 아닌 아주 사소하거나 그저 소박한 것들이 위로가 됐던 적이 많았다. 어차피 칙칙할 수밖에 없는 하루살이였고, 그럭저럭 좋은 일이 생겨 기쁘더라도 어느새 뒤집어져 거꾸로 매달리기 일쑤였던 일상 아래. 위로가 됐던 것들은 언제나 그런 것들이었다.
아주 사소하거나
그저 소박한 것들만이 위로로
작동하곤 했었다.
머물러 쉴 곳이 마땅찮아 지친 걸음을 이끌고 털레털레 돌아오던 귀갓길. 골목 어귀에 둥글둥글하게 앉아선 꾸벅꾸벅 졸고 있는 고양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됐던 적이 있었고. 내가 처한 처지가 어떠하든 간에 이미 추억된 어느 계절과 같은 온도로 머물러주는 너를 보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아졌던 적이 많았다.
나를 위한다는 말과 글이나, 힘이 됐으면 좋겠다며 건네주는 선물로도 봉합되질 않던 마음은: 아주 거창한 무엇이 아닌 아주 사소하거나 그저 소박한 것들이면 충분했었다. 어차피 칙칙할 수밖에 없는 하루살이였고, 그럭저럭 좋은 일이 생겨 기쁘더라도 어느새 뒤집어져 거꾸로 매달리기 일쑤였던 일상 아래. 이럭저럭 위로가 됐던 것들은 나를 위해 마련된 것들이 아니었다.
나의 상태가 어떠하든
달라지지 않는 것들이거나
너무나도 흔해빠진 탓에
익숙해져버리고 만 것들이었다.
위로가 됐던 것들을 헤아려보면 늘 그랬다. 머물러 쉴 곳이 마땅찮아 지친 걸음을 이끌고 털레털레 돌아오던 귀갓길. 골목 어귀에 둥글둥글하게 앉아있다, 이내 떠나가는 고양이의 뒷모습으로도 위로가 됐던 적이 있었고. 내가 처한 처지가 어떠하든 간에 이미 추억된 어느 계절과 같은 온도로 머물러주는 너를 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꼈던 적이 많았다.
나를 위해 마련된 것들로는
도무지 봉합되질 않던 마음은:
늘 그랬었다.
아주 사소하거나
그저 소박한 것들이면 충분했었다.
준비를 마치면 책장 앞에
우두커니 서서 외출에 어울려줄
책을 고른다.
제일 상단의 왼쪽에서부터 한 권씩 두 권씩, 책등에 쓰인 제목을 읽어가면서 고르는데 요즘에는: 이 시간이 과거 어느 때보다 길어졌음을 안다. 아마도 업데이트가 시원찮아진 책장이라 그런 거겠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새로운 책을 구매해, 가지런히 꽂아뒀던 어떤 날의 기억이 아련하게 재생됐다.
제일 최근에 사 왔던 책들은 이미 다 읽었으니까, 슬슬 새로운 책을 사 올 때가 됐다고 생각은 곧잘 하는데_ 어쩌다 들른 서점에서 책장 사이를 한참 동안 헤매도, 인터넷 서점의 목록을 죽죽 내려도 딱히 끌리는 책이 없는 요즘이다. 이쯤에선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대부분이, 이미 고인이 된 사람들이란 게 어지간히도 텁텁하게만 느껴지지.
아직 살아있는 작가들 중에 그나마 마음에 드는 책을 엮었던 사람들은: 저술활동이 뜸해지다 못해 은퇴라도 한 걸까 싶어 졌고. 오롯이 변덕으로 설정된 내 기준을 바꿔보자니, 그건 그거대로 석연찮기만 하다.
덕분에 책장 앞에 우두커니 서서, 외출에 어울려줄 책을 고르는 시간이 날마다 길어진다. 제일 상단의 왼쪽에서부터 한 권씩 세 권씩, 책등에 쓰인 제목과 작가를 읽어가면서 고르는 시간이 너무 길어졌다. 차례차례 읽어가면서 한 칸씩 밑으로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나는, 오른쪽 하단에 쪼그린 채 다신 펼칠 리 없는 전공책의 제목까지 읽고 있지.
고민이 길어지면 사람은, 꽤나 우스꽝스런 꼬락서니가 돼버리곤 한다. 하여튼 이젠 정말로 새로운 책을 사 올 때가 됐다고 생각하면서 어젯밤에도 읽었던 책 두 권을 챙겨 가방에 넣는다.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선善의 연구*
그러고 보면 나는 다독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한 권을 읽더라도 아주 느리게 읽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독서량을 전시해 둔 누군가의 SNS를 보면 좀 초라해질 정도였지. 이 사람은 한 달에 열한 권씩이나 읽는다는데, 정작 문장을 짓고 산다는 나란 사람은: 1년에 열두 권이나 읽긴 하는 걸까. 이제는 꽤나 오래된 기억이 된 고등학교 시절부터 늘 이런 식이었다.
두께가 얇은 시집이었든 두꺼운 양장본이었든 간에 소모되는 시간은 늘 비슷비슷했다. 나답지 않게 금방 읽어버리는 책들 또한 있었지만, 금방 읽어버리게 되면 어째선지 아쉬운 기분이 들어 몇 번씩 다시 읽었던 적도 많았고. 나란 사람은 애초부터 다독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았지. 요즘에는 그마저도 시원찮아져서 읽었던 책만 또 읽는다.
어젯밤에도 읽었던 얇은 시집을 펼쳐둔 조용한 카페의 창가자리. 빨간색 파란색의 밑줄과 구깃구깃 접힌 자국이 선명한 낡은 책들. 흥미보다는 익숙함으로 머무는 문장과 단어를 바라보며, 이미 지나간 시간들의 분량을 체감해 본다. 아무래도 이제는 정말로 새로운 책을 사 올 때가 됐다고 생각은 하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새로움은 없고 나는 너무 낡았다.
불꽃놀이가 끝난 뒤의 아쉬움과 탄내가 떠오르는 일상이다. 입안에 머금은 말들은 꽝꽝 얼어붙은 탓인지 여태 녹질 않았고, 시선은 끊임없이 다음을 찾고 있지만 하나하나 시원찮기만 하지.
물거품처럼 떠오르는 것들은 모두 기억보다는 추억에 가까워서, 마냥 새로워도 모자랄 내일이 벌써부터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는 중. 언젠가 나눴던 약속도 떠오르는 것들 사이에 끼어있지만, 어차피 이행될 리가 없단 걸 깨단하자마자 푹 꺼져버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는 것들이 으레 그랬다. 내가 그러하다고 해서 너 또한 그러했던 적은 없었지. 제아무리 마음이 통한다고 한들, 뿌리가 될 경험이라든가 생각 따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짐작했다. 얼른 다음으로 넘어가야만 할 것 같았다.
끊임없이 시선을 옮겨대며
머무를 다음을 강구했는데 이거면
좋겠다는 다음은 보이질 않았다.
이러는 사이에도 마음에 나있는 구멍은 더 커지는 중이지. 필요 이상으로 봉합의 필요성을 체감했지만 내게는 재료도 재주도 없었다.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던 탓이겠지. 불꽃놀이가 끝난 뒤의 아쉬움과 탄내가 떠오르는 일상이다. 입안에 머금고 있던 말들을 꽤 오랫동안 굴려댔거늘 아직도 녹지 않았다. 끊임없이 애쓰는 시선의 노력도 그 결실이 시원찮았고, 나는 추억에 조금 더 친숙한 사람으로 변해버리고 말았지.
마냥 새로워도 모자랄 내일이
벌써부터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는 중.
언젠가 나눴던 약속이 또다시 떠올랐는데 어차피 이행될 리 없단 걸 너무나도 잘 안다. 이번에는 직접 내 손으로 꺼트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 으레 그러한 것이라고 해도, 기다려온 사람에게 언제나 무례했단 사실을 방금 깨단했다. 뿌리가 될 경험이라든가 생각 따위가 다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말을 냉동해 둔 채 머금었고, 근거도 빈약하기만 한 약속일지라도 믿어보자면서 기다렸는데_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는 것들이 으레 그랬지. 내가 그러하다고 해서 너 또한 그러했던 적은 없었다. 덕분에 내 일상은 조금 더 볼품없어졌다. 불꽃놀이가 끝난 뒤의 아쉬움과 탄내 말고는, 이러저러하게 떠오르는 것도 없이 지긋지긋하기만 한 일상이 됐다.
*진이정 시집,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니시다 기타로, 선의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