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절가웃:

이러다 언젠가 다시 마주치겠죠*

by 서리달

그 계절의 가운데엔 우리가 있었고,


내 목소리로 불러도 괜찮은 이름이 곁에 있음에 계절의 이름 따윈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하염없이 정다웠다고는 못할 우리였고, 그렇게나 꽃다웠던 모양도 아녔겠지만 그런 만큼 평범했다. 흔히들 일컫는 ‘친구’라는 단어에 부합하는 무리였다. 함께 어울리는 이유는 어지간히도 소박했다. 덧붙여 어울리는 이유 같은 것쯤은 사실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 계절의 가운데에 머무는 우리는 그랬다. 이유 따윈 얼마든지 소박해도 괜찮았다. 설령 그게 없더라도 곁을 내어줄 수 있었다. 우리 머무는 계절의 이름 따위도 중요한 게 아니었다. 흔히들 일컫는 친구라는 단어에 부합하는 무리가 우리였는데, 헤아리기를 포기할 만큼의 날씨와 계절을 거듭한 끝에 다다른 오늘에 우리는: 무소식을 다행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각자가 됐다. 요즘의 나는 그들의 거취를 모르고 산다.


나 이렇게 된 만큼 그들도

나의 요즘을 모르고 살겠지.


이런 탓에 그 계절의 가운데에 우리가 있었다는 게 쉽게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어떤 날엔 내 기억의 어느 즈음에, 그런 추억이 있단 사실이 어지간히도 낯설게만 느껴지곤 한다. 아마도 이런 감각은 그때의 우리가 완벽한 각자가 됐단 증거겠지. 그때 그 계절의 가운데에 머무는 우리는 그랬는데 이렇게 됐다.


그때의 우리는 이유 따윈 얼마든지 소박해도 괜찮았다. 설령 그게 없더라도 곁을 내어줄 수 있었다. 그땐 머무는 계절의 이름 따위도 중요한 게 아니었다. 흔히들 일컫는 친구라는 단어에 부합하는 우리였는데, 헤아리기를 포기할 만큼의 날씨와 계절을 거듭한 끝에 다다른 오늘에 우리는:


무소식을 다행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각자가 됐다.

요즘의 나는 그들의 거취를 모르고 산다.

나 이렇게 된 만큼 그들도 나의 요즘을 모르고 살겠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말도 뭐랄까, 언제부턴가 시원찮은 변명처럼 느껴지게 됐지. 뜻도 없이 문득 ‘소원’을 떠올려보면 원하는 것보다 서먹서먹해진 전부를 떠올리게 된 만큼, 나의 무지를 탓하는 것도 이젠 부질없는 짓거리만 같아졌다.


이런 탓에 요즘엔 변명이 줄었다.


정직해졌다는 말이 될 수 없다. 이렇게 돼버린 만큼 말이 줄어버린 것일 뿐이니, 서먹서먹해진 관계밖에 없는 일상 아래 마주하는 시간의 대부분은 혼자이게 됐으니까. 이렇게 돼버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네. 하여튼 이렇게 산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말이 그저 시원찮은 변명처럼 느껴져서 무지를 탓하지 않는 사람이 됐긴 됐는데, 그냥 과묵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이야기라는 것도 누군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성립되는 것일진대, 사람이라곤 나 하나밖에 머물지 않는 일상 아래 그게 가능한 일이겠나.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도 없거니와 한 번쯤 불러볼 이름도 없는 요즘의 나는: 이렇게 산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말이 그저 시원찮은 변명처럼 느껴져서 무지를 탓하지 않는 사람이 됐다. 사실 전부 헛소리다.


그냥 혼자 노는 처지가 됐을 뿐이다.


누군가와 함께 어울렸던 기억일랑 분명 존재하는데 어째선지 나의 오늘엔 부재만 빼곡해졌다. 많은 일이 있었다, 라는 식으로 오늘을 해석하려는 것도 어렵다. 정말로 많은 일이 있었는지 잠자코 돌아보면 생각보다 별다른 일이 없었으니까. 원흉이라고 짚어볼 다툼도 없었고 대단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많은 일이 있었다, 라는 식으로 오늘을 해석하지도 못한다.


그저 시간에 희석된 끝에 아무것도 아닌 사이가 돼버렸을 뿐이니, 나의 무지를 탓하는 것조차도 시원찮아진 것도 같지. 이런 탓에 뜻도 없이 ‘소원’을 떠올릴 때마다 원하는 것보다 서먹서먹해진 전부를 떠올리게 된 듯하다.


무소식을 다행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각자가 돼버린 오늘.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도 없거니와 한 번쯤 불러볼 이름도 없는 요즘의 나는: 이렇게 산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말이 그저 시원찮은 변명처럼 느껴져서 무지를 탓하지 않는 사람이 됐다. 사실 전부 헛소리다.


그냥 혼자 노는

처지가 됐을 뿐이다.






더 해줄 말이 없어 했던 말을 또 써내며

그렇게나마 한 줄 채워보는 편지 같은 요즘입니다.


어떻게든 늘려둔 분량으로 대충 구색만 갖춰보는 중이라고 해야겠네요. 했던 말이 아니라면 비슷비슷한 말만 반복하는 편지 같아졌습니다. 어제도 했던 짓을 오늘도 거듭하고 어제도 했던 생각을 오늘도 거듭할 뿐입니다. 이런 식으로 살아도 괜찮은 건가, 싶은 의문이 지난달보다 더 깊어졌다고 말해봅니다.


거기서 거기인 것들로 채워내는 나절이 사실 좀 지겹긴 합니다만, 다른 것으로 채워볼까 생각해 보면 그건 그거대로 막연합니다. 익숙해진 것을 내팽개치고서 익숙하지 않은 것을 붙들어야 된단 뜻일 텐데, 그러면 이제야 겨우 익숙해진 자전이 아쉬울 테니까요.


그래서일까 새롭지 못한 일상의 해로움을 알면서도 반복하게 됩니다. 놓인 그대로 도는 법이 능숙해졌습니다. 드디어 저는 지겹다는 감정조차 무참히 무시할 수 있는 지경이 된 겁니다. 근데 이런 지경을 두고 좋은 일이라고는 영 못하겠습니다.


더 해줄 말이 없어 했던 말을 또 써내며

그렇게나마 한 줄

채워보는 편지 같은 요즘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편지는 진심이 없으면 못 쓴다고 했던가요. 한 줄의 진심조차 없으면 채워나갈 수 없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했던 말을 자꾸만 반복하는 편지는 무엇이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먼 어떤 날에 써봤던 편지를 기신기신 떠올려보면 그때에도 저는 했던 말을 두 번이었나, 세 번인가 반복하곤 했었습니다.


그때의 내 진심은 너무나도

간단하고 추레해서 그랬던 걸까요.


아니면 진심이 전해지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던 걸까요. 지금에 나는 그때의 나를 알 길이 없습니다. 그때 썼던 그 편지와 편지의 수신인도 부재중이니 알 길이 없습니다.


지금에 알 수 있는 건 딱 하나입니다. 더 해줄 말이 없어 했던 말을 또 써내며 그렇게나마 한 줄 채워보는 편지 같은 요즘이라는 사실뿐입니다. 어떻게든 늘려둔 분량으로 대충 구색만 갖춰보는 중이라고 해야겠네요. 이미 했던 말이 아니라면 비슷비슷한 말만 반복하는 편지 같아졌습니다. 어제도 했던 짓을 오늘도 거듭하고 어제도 했던 생각을 오늘도 거듭할 뿐입니다.


이런 식으로 살아도 괜찮은 건가,

싶은 의문이 지난달보다 더 깊어졌다고

말해봅니다.



_2025.07.16作


*나절가웃:

1. 하룻낮의 4분의 3쯤 되는 동안.

2. '반나절' 의 잘못.


*에픽하이 - Love Love Love (Feat. 융진 of Casker)中

월, 금 연재